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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피차 Jan 05. 2022

27.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팟캐스트 "소덕소덕" 스크립트

이번주는 박완서 작가 특집입니다. 매우 많은 작품이 있고 또 교과서에 필수로 다뤄지는 작가라서 많은 분들이 자신도 모른 사이에 접했을 겁니다. 저는 그 중에서 대중들에게 제일 익숙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2021년 5판(개정판), 1992년 초판)>를 골라보았습니다.


작가, 작품소개

박완서씨는 1931년 지금의 황해북도 개풍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결혼, 출산 이후 1970년에 <나목>으로 등단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한국전쟁-산업화 시대를 겪으면서 자전적 내용과 시대상을 잘 다루었고 많은 작품을 노년기까지 집필한 것으로도 유명하며 2011년에 별세하였습니다.

<그 많던 싱아는…>는 아동용 소설로 기획된 자전적 소설입니다. 이 책이 처음 나온 90년대는 오래전 힘들었을 때 이야기들을 읽는 것이 익숙했는데 지금 디지털 세대의 어린이들은 어떤 느낌을 받을 지 궁금하네요. 작가가 노년에 쓴 이야기라 이제 생각보면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식의 코멘트를 읽는 것이 이 소설의 백미입니다. 이 책은 작가의 미취학 아동 시절부터 1950년 대학입학하고 6.25가 일어난 때 까지를 다루고 있고 이후에 결혼하는 1953년까지의 이야기는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줄거리

제목인 싱아는 작가의 고향에서 많이 나서 동네 어린이들이 심심할 때 따먹던 식물의 이름입니다. 90년대쯤까지만해도 철쭉이나 진달래의 꿀을 따먹기도 했죠. 작가는 박적골이라는 집성촌에서 자랐는데 할아버지는 집안과 동네의 유식한 어른이었고 엄마 역시 동네 아줌마들의 편지를 읽어주는 일을 도맡아 할만큼 나름 배운 집안이었습니다. 남편을 일찍 보낸 엄마는 오빠의 입신양명을 위해 서울로 유학을 보내고 딸인 작가도 보내어 일가족이 서울살이를 시작하게 됩니다. 자식이 많은 숙부는 면서기를 하고 있었고 자식이 없어 자신 형제들을 아끼던 작은 숙부네는 엄마를 따라 서울에서 장사를 시작합니다.

이 집안에서 유일한 손녀딸인 작가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고 샘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살갑거나 약은 성격은 아닙니다. 할아버지도 선비인 척은 다 하지만 그렇다고 민족주의 애국자인 것도 아니면서 창씨개명은 반대하는 복합적인 인물입니다. 엄마도 자식의 영달을 위해서 왠만한 극성을 부리면서도 자식이 하는 말은 또 철석같이 믿는 독특한 성격입니다. 어렸을 때야 본인 또래나 어른들의 이런 양면성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 어른이 된 지도 오래된 작가는 적당한 이유를 제시해서 독자들의 갈증을 어느 정도 풀어줍니다. 그리고 자신의 친인척임에도 가차없는 평가를 마다하지 않아 사이다같은 재미를 안겨줍니다. 이 말들이 구차하지도 장황하지도 않으면서 딱 필요한 말을 적확하게 하는데 "아 이게 진짜 잘 쓴 글맛이다" 싶은 느낌이 몇 페이지마다 확확 듭니다.

가족이나 주변 인물 묘사가 세밀하고 가차없는 데 비해 나를 그림에 있어서는 모호하게 얼버무리거나 생략한 부분이 많았다. 그게 바로 자신에게 정직하기가 가장 어려웠던 흔적이라고 생각했다. (작가의 말)
부끄럽지만 할아버지도 양반 타령만 유별났지 민족적 자부심이나 역사의식이 있는 분은 못 되셨다. (아득한 서울)
서울 아이들이 알기나 할까, 쫙 깔린 달개비의꽃의 남색이 얼마나 영롱하다는 걸. 그리고 달개비 이파리엔 얼마나 고운 소리가 숨어 있다는 것을. (동무 없는 아이)
소학교 다니는 동안 동무 없이도 심각한 불행감 없이 그 외톨이 상태를 거의 즐기다시피 했는데 그건 내 머릿속에 잔뜩 들어 있는 이야기가 나에게 그런 건방진 능력을 준 것이 아니었을까. (동무 없는 아이)
오빠처럼 이상주의적인 얼치기 빨갱이에겐 보도연맹이라는 퇴로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 전날 밤의 평화)


엄마의 영향을 기록하는 여성들

여자들을 개성 시내에도, 밭에도 내보내지 않을 만큼 고지식한 시아버지댁에 시집온 엄마는 아들딸 식사 차별도 안하고 서울유학에 열정적일 만큼은 개방적이지만 또 자식들이 비행하지 않게 꽁꽁 싸매놓는 부분은 한편 고리타분한 인물이었습니다. 아마 남편이 젊을 때 죽어서이기 때문일텐데요, 이점은 이전에 다루었던 양귀자씨의 <모순>을 떠올리는 가족사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로웠던 집안 분위기, 그렇게까지 영향력이 크지 않았던 남자형제의 존재, 상식/비상식이 혼재해 있던 예측불가능한 시대상황들... 할아버지-아버지가 있는 집안과는 또다른 새로운 가정 안에서 특별난 딸로서의 길을 걸었던 두 인물이 떠오릅니다. <모순>의 문체도 화자 스스로에게 날카로웠던 느낌이고 실질적인 주인공이 엄마였던 점을 생각하면 딱 한세대 정도의 차이를 둔 어머니들의, 딸들의 감정과 시대적 배경을 비교해가며 즐길 수 있는 두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박완서씨는 아예 <엄마의 말뚝>이라는 단편집이 있어 함께 즐기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엄마는 아니지만 할머니의 삶의 다루고 있는(?) 컨텐츠 유튜브 '박막례할머니' 채널과 에세이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수 없다>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책 앞부분은 1947년생 박막례씨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는데 전라도에서 서울.경기로 올라와 홀몸으로 세 남매를 키우기 위해 여러 직업을 거치면서 고생했던 이야기입니다. 박막례씨의 입담은 거침이 없으면서도 쿨하고 힙하고 감동적입니다. "희망을 버렸으면 다시 주워"라는 말이 수 많은 고생을 거치고도 여러번 다시 일어난 박막례씨의 입을 거쳐 나올 때 우리에게 느껴지는 희망과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할머니를 스타로 발굴해 내고 초반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좋은 컨텐츠를 만들고 있는 손녀 김유라PD의 안목 역시 훌륭합니다. 특이한 점은 외할머니가 아니라 친할머니라는 사실인데요, 할머니인 박막례씨와 고모, 김유라씨 세 분이 함께 나오는 영상은 유독 인기가 많습니다.

할머니, 어머니들 역시 힘든 현대사를 겪었고 훌륭한 선택으로 집안을 일으키고 사회를 유지해 나갔지만, 뚜렸한 직업이 없다는 이유로 역사에서 외면받아왔고 그나마 자식들을 통해 그 전설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힘들게 산 엄마와 할머니의 뜻을 이해하면서도 새롭게 자신의 인생을 일군 여성 창작자들이 있어 인류는 그래도 온기있는 삶을 유지시켜 나가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렇게 거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게 아닌데 이렇게 됐네욯ㅎㅎ)


인물상, 시대상도 그렇고 지역적 특징도 상세하게 묘사한 점이 또 백미인데요, 직접 혹은 지도로 동네나 건물을 살펴보는 것도 재밌는 감상법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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