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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은 Jan 02. 2019

아무튼, 발레

그래도 안 힘든 척하는 게 발레다

최근 좋아하게 된 도서 시리즈. 다름 아닌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에서 함께 기획, 출간하는 <아무튼> 시리즈다.

최초 구입한 건 <아무튼, 피트니스>. 읽고 난 뒤 피트니스에 대한 의지를 다시금 다졌지만 안타깝게도 실패(작가의 문제가 아니다. 순전히 나의 게으름 문제다). <아무튼, 트위터>를 읽으면서는 근 10년간 일반인 코스프레를 해가며 가꿔 온(?) 트위터에 대한 부심을 다졌다. 그 다음으로 전혀 나와는 잇닿는 부분이 없는 <아무튼, 발레>(최민영 지음)를 고른 건 아이러니. 굳, 이, 인연을 꺼내자면 초등학생 때 발레리나가 되고 싶어 엄마한테 학원을 보내게 해 달라고 조를까 말까 망설였던 기억 정도?


신문사 기자이자 저자인 최민영의 발레를 하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다. 어쩌면 미리보기를 통해 보게 된 첫 문장 부분이 나의 상황과 꼭 같아 전자책 결제를 서둘렀던 걸로 기억한다. ‘잠이 많고 잠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정말 낮잠은 이제 지겹다’는 마음 때문에.



그러던 어느 주말, 무료하게 낮잠을 자던 중 ‘내가 잠이 많고 잠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정말 낮잠은 이제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이유는 새로운 경험보다는 반복되는 경험이 많아지기 때문이라는 이론이 있다. 꼬마 때는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친구랑 모래놀이를 해도 새록새록 새로운 경험이라 하루가 풍요롭지만, 어른은 대부분 반복되는 일상을 살기 때문에 뇌가 일일이 다 기억하지 않으니 하루하루가 단조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 일상도 그렇게 점점 재미가 없어지고 있었다. 곧 마흔 살, 청춘과는 이미 멀어진 나이이고 어차피 죽으면 썩어서 사라질 몸인데 난 참 쓸데없이 주저하는 일이 많구나, 회한이 밀려들었다.

…나이 마흔을 넘어서도 심리적 에너지 수준이 떨어지지 않으려면 어린 시절 꼭 하고 싶었던 일에 도전해보는 게 좋다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내게는 그게 발레였다.


발레를 시작하면 토슈즈니 튀튀(발레리나가 착용하는 스커트) 등 장비(!) 비용부터 어마어마하지 않을까 걱정하던 마음은 저자의 다음  설명으로 안심시킨다. 정말 생 초짜고 내가 과연 발레를 해도 되는지 의심이 들 때는 레깅스와 연습용 컨버스 천 슈즈(토슈즈와 다르다), 하의를 덮을 수 있는 긴 티 정도면 충분하다고. 오히려 학원 원장님께서 저자에게 그렇게 권했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을 땐 아 그 원장님 참 사람 마음을 잘 아는구나 싶었다. 헬스 하나 할 때도 온갖 헬스용 통기성 좋은 운동화와 언더아머 브라에 상하의까지 구비했다가 몇 번 다녀보지도 못하고 나가 떨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발레는 입문 단계에서 그리 많은 돈이 들지 않는다. 수업의 기본 복장인 레오타드, 타이즈, 스커트와 캔버스 재질의 연습용 슈즈만 구비한다면, 매달 학원비를 내는 정도다. 대신 몸으로 고생하면 된다. 권투나 레슬링과 더 가깝다.

레오타드는 팬티와 티셔츠를 하나로 결합한 형태의 옷이다. 프랑스의 곡예사 쥘 레오타르가 멋진 동작을 보여줄 때 몸에 걸리적거리지 않도록 니트 재질로 고안한 옷인데 현재는 보통명사로 통한다(프랑스에서는 묵음인 이름 끝 ‘d’를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발음하기 때문에 ‘레오타드’가 됐다).

…발레 수업에서 연습용 슈즈는 필수품이다. 캔버스 천에 가죽을 덧대서 동작할 때 충격을 줄이고 미끄럼을 방지한다. 바닥의 저항력을 높여서 발레에 필요한 근육 발달에도 도움을 준다. 초급반 때는 요가복이나 레깅스를 입어도 상관없는 학원들이 많지만 연습용 슈즈만은 안전상의 이유로 꼭 신어야 한다. 가죽으로 된 슈즈는 내구성은 좋지만 발 근육 힘이 약한 초심자들에게는 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발레는 당연히 쉬운 종목은 아니다.

겉근육을 펌핑하는 운동이 아닌 여리여리한 몸매 안에 견고하게 버틸 속근육을 다지는 운동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발레나 필라테스 같은 운동은 전에 안 쓰던 속근육이 자랄 때까지 6개월은 기다려야 하는 거야. 근육이 자라고 힘이 생기면 그때서야 동작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돼. 지금 되지 않는대서 너무 속상해할 필요는 없어."


그리고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발레리나들이 틈만 나면 두꺼운 옷과 워머를 걸치는 이유.



발레하는 사람들이 보온용 옷가지를 겹겹이 껴입는 중요한 이유는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몸을 빨리 따뜻하게 데울수록 근육과 관절이 부드러워지기 때문에 몸을 다칠 위험이 줄어든다. 타이즈 위에 다리 워머를 입고, 솜으로 된 부츠를 신고, 상의에는 티셔츠 위에 다시 솜조끼나 얇은 스웨트 셔츠를 덧입는 식이다. 몸을 빨리 데우는 게 권장되다 보니 전국 단위로 열사병 환자가 속출할 만큼의 더위가 아니라면 수업 초반에 에어컨은 잘 켜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쪄죽을 듯한 표정의 학생들이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어도 선생님이 에어컨을 흔쾌히 틀어주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러분 다 잘하셨으니까 제습 서비스 들어갑니다~”라고 인심을 쓰는 정도랄까.


발레의 아름다움의 핵심은 “어떤 동작이든 하나도 힘들지 않은 것처럼 해내는 것”이며 “우아함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격렬한 감정이나 견디기 힘든 고통을 꼭꼭 씹어서 소화한 뒤 한 단계 승화하는 것”으로 “무대 위의 발레리나는 어떤 순간에도 배역이 아닌 무용수 자신의 불안이나 통증을 날것으로 표현하지 않는다”고 한다.

책을 읽다 우리 동네에 있는 발레 학원이 있는지 검색했다. 다행히 마음에 드는 곳이 하나 있었다. 찾아가 볼 결심까지 하고 사전 조사까지 마쳤지만 아직 가보질 못했다. 지금까지 도전했던 케틀벨, 헬스, 수영, 달리기에 뒤이어 이번에 과연 발레를 할 수 있게 될지. 슬금슬금 내 안의 ‘새 술은 새 부대에’의 기운이 돋기 시작한다.


* 발레에 처음 관심을 갖는 분들을 위한 사소한 꿀팁. “무대 공연 동영상은 보지 말고 바가노바 발레학교 저학년 수업 동영상을 보셔야” 된다고. 그래서 링크를 가져와봤다. 링크가 이상하게 안 걸려서 아래 주소를 남긴다.


Vaganova Ballet Academy. Classical Dance Exam. Girls 0 class (pre-entry courses) 2011.

https://youtu.be/pKBz7c30m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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