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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혜 Nov 09. 2023

Day 2 (2/2)아주 오래된 도서관과 재즈 동굴

바로크 시대 도서관 클레멘티눔 투어와 재즈 공연

(여행하며 생각한 자잘한 것들까지 다 쓰기 때문에 분량이 많을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

도서관이란 공간은 참 특별한 곳이다. 건물 안에 수많은 책 속 이야기들이 보석상자처럼 숨죽이고 있다가 읽어내는 사람에게 전해지는 거니까. 체코 프라하에 바로크 시대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도서관이 있다고 해서 투어를 신청했다. 가이드 투어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고 서 신청했건만 영어/체코어 투어밖에 없기 때문에 그나마 영어 투어로. 영어 듣기 훈련인가...


가던 길에 만난 풍경들
쇼핑몰이랍니다
킁킁 무릎 조사중

  

투어 입구 찾는데만도 한참 걸렸다. 투어로만 오픈 되는 옛 도서관 부분이 있고 지금도  국립도서관으로 시민 개방되고 있는 곳이 같이 있어서 그렇다. 한 20명 가량이 모여서 투어 시작. 이지적으로 생긴 여자 가이드 분이 스웨터 유니폼을  입고 설명해주셨다. 너무 말이 빨라서...구글 대화 번역기로 시도하다가 구글이 말하는 스피드를 못 쫓아가길래 그냥 내려놓고 따라만 가자 싶어서 꺼버렸다. 대충 눈치로 알아듣지 뭐.

클레멘티눔이란 얀 후스를 따르던 후스파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로마 가톨릭 쪽에서 예수교를 끌어들여 신학교와 도서관과 여러 문화 공간을 만든 거였단다. 그러니까 체코 버전의 복합문화교육공간 정도 되지 않을까. 우리는 가이드 선생님을 따라 좁은 계단을 계속 올라갔다. 고대하던 그 도서관 공간 앞에 섰는데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딱 15분 정도만 오픈해줄 것이며 워낙 오래된 고서들(19세기)과 가구, 천장 프레스코 그림들을 보존해야 하기 때문에 세이프 라인 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170여 개 계단을 뱅글뱅글 올라감
차원의 문 오픈 10초 전

드디어 문을 열자 익숙한 책 냄새들이 확 풍겼다. 이 것은...헌책방에 들어가면 맡을 수 있는 오래된 종이 냄새 ^^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공간은 딱 거기만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았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도서관 같기도.
지구본 멋져
천장 그림도 너무 아름답다. 그리느라 얼마나 허리 아팠을까.
오래된 이야기들이 잠들어있네


그 옛날에 저렇게 지구본을 만들고 세계에 관심이 많았구나. 한국이란 나라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천장은 또 어찌나 아름다운지 이런 데서 책을 보고 공부했던 그 시대 사람들은 참 좋았겠다.

그리고 재밌었던 건 2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아무도 서로 먼저 보겠다고 밀치지도 않고 사이좋게 돌아가며 앞 자리를 양보했다. 앞 줄에 서서 보다가도 적당히 봤다 생각되면 나와주니까 모두가 의좋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역시 도서관 보러 온 사람들의 품격이 느껴지는군.  책들이 겨울잠 자는걸 깨우지 않으려 말도 소근소근했다. 워낙 저 공간이 풍기는 위엄이 함부로 떠들지 못하게 하는 것도 같다.  


질서를 지키는 세계문화시민들

아쉽게 도서관 구경에 허락된 시간이 끝나고 차원의 문은 다시 닫혔다.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은 저 공간을 도서관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책을 볼 수 있어야 도서관이지. 19세기에는 도서관이었으나 지금은 수장고? 서고? 보존 공간이 되어버렸구나.  저 안에 잠자고 있는 책들은 참 답답하겠다. 아무도 속 장을 봐주지 않으니까 말이다.


도서관 부분이 끝나고도 계속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제는 천문 타워로 가는 길. 체코는 옛날부터 기상 관측, 천문 관측에 관심을 기울이고 기술을 발전시켜왔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체코 도서관을 검색했을 때 항상 과학 도서관이 따로 운영되고 있었다.


깜깜한 공간에 다다랐는데, 여기는 시계가 없던 옛날에 햇빛의 위치를 보고 정오, 12시를 측정하던 곳이었단다. 카메라 옵스큐라 라고 하는데 여기가 정오가 되는 순간 딱 깜깜해지고 햇빛이 표시가된다고 했다. 계절마다 조금씩 관측하는 공간은 달라지지만, 여기 클레멘티눔에서 정오를 맞추면 종을 울리거나 대포를 쏘거나 해서 지역 사람들도 지금이 정오 라는 것을 알게 했단다.  

정오 측정 암실

맨 꼭대기까지 올라가니 옛 체코 사람들이 기상 관측하던 공간이 나왔다. 매일 매일 날씨를 관측하고 기록해서 최장기 기록도 세웠다고. 이 사람들 참 꾸준하구만. 체코판 장영실의 작업장인가.

관측 망원경?

가이드 분의 설명이 끝나고 옥상 같은 공간으로 우리를 올려보냈다. 성 꼭 대기 올라온 것처럼 프라하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파노라마뷰가 펼쳐졌다! 이런 곳이면 기상 관측 할 만하네. 붉은 빛을 띄는 갈색 지붕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가 간혹 거대한 성당과 탑들이 점점이 박혀 있고.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다들 신나게 사진들을 찍으신다. 나는 찍어줄 사람이 없으니 짧은 팔을 뻗어 셀피만 찍어본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도 되긴 한데 폰 분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잘 못 맡기겠다.

아름다운 갈색 지붕 프라하를 마음 속에도 잘 담고 내려와보니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다. 겨울 시즌 유럽 여행이 비수기인 이유가 여기있네.  여름에는 밤 8시가 되어도 해가 안 지는 백야 현상 때문에 여행하기 편한데 겨울에는 4시반에 해가 진다. 어두우면 아무래도 여행에 제약이 있으니 하루가 빠듯해진다. 원래 어두워지면 숙소에 항상 들어오는 걸 철칙으로 하지만 오늘은 9시 재즈 공연을 보러 가기로 한 것. 다행히도 숙소에서 10분 거리라 안심이 된다.


공연 전에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한국인 사진작가님이 추천한 식당 으로 트램 타고 가다가 3번 연속 방향을 거꾸로 탔다. (=.=) 구글지도보고 트램 정거장 위치만 봤는데 반대방향 정거장도 서로 붙어있기 때문에 방향까지 체크를 안했더니 잘못 타게 된 것. 트램 세번 잘못 탔더니만 순식간에 주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갑자기 커다란 스타디움이 보이고 막 사방에서 함성이 들리고 흥분한 사람들이 어디선지 쏟아져나왔다. 이것은 부산 사직구장 롯데 경기날 분위기? 하지만 롯데팬 아재들에 익숙한 부산 여자는 쫄지 않는다.(사실 조금 무서웠다;) 그리고 패딩 입어도 코끝이 시린 추운 날 식당 밖에서 마치 여름인 것처럼 맥주를 마시며 우가우가 떠든다.

아.. 알겠다. 내가 주로 있던 관광지들에서 벗어나니 진짜 프라하 시민들이 사는 동네로 온거다.


예전의 나는 이런때 실수한 나를 자책하곤했는데 이젠 <오히려 좋아!> 전법을 쓰고 있다. 처음 계획이 어그러져도 요리조리 대처하는 것 또한 여행의 재미니까. 그렇게 체코 사람 구경을 하고 헷갈리지 않는 지하철로 돌아와 숙소 근처 일본 + 베트남요리를 파는 식당에서 쇼유라멘을 먹었다.

트램이 실어다 준 찐 프라하 로컬 동네
프라하의 사직야구장 느낌 스타디움
이렇게 창밖에서 맥주 드신다
지하철은 헷갈리지 않지
프라하에서 먹는 쇼유라멘

숙소에서 쉬다가 (사실 오늘 하루 숙소를 3번 왔다 갔다 했다. 밖에 오래 있기에 너무 추워서 몸 좀 녹일겸 화장실도 갈겸. 중심지와 가까워서 다행.)공연장 입성. 유랑(유럽 배낭여행)이라는 네이버카페에서 오늘 공연 보러 갈 거라고 같이 가자는 글을 올리셔서 나도 끼게 된 거다. 혼자 여행하지만 이렇게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참 좋다. 지하에 있는 공연장은 마치 동굴처럼 생겼다. 그런데 어두컴컴하고 무서운 동굴이 아니라 갈색 벽돌로 둘러싸여서 아늑한 맛이 있다. 체코에는 이런 아치 형태라고 해야 하나 둥그런 천장이 많은 것 같다.

음악 동굴 입성

한국 분들과 인사나누고 내 자리에 앉으니 재밌게도 같은 줄 전체가 한국인들이다. 정보통 한국인들이 찾아왔다는건 여기가 음악 맛집이란 거군. 아담트리오 라는 오늘의 연주자들은 일렉기타, 콘트라베이스, 퍼커션 드럼 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신나게 연주하는 모습이 참 보기좋았다. 그 재즈 특유의 자기 흥에 흠뻑 취한 느낌이 연주자들의 표정으로 잘 드러나서 그 표정 구경하는 것도 재미가 있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분 표정 구경이 재밌다

 

음악 들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도 했는데 한국인 일행 7명 중에 내가 제일 왕언니였다. 동안이라고 해주셔서 감사...그나마 한 살 어린 또래가  있어서 감사.. 뭐 나이는 숫자일 뿐이니까. 외국인 관객들도 다양한 연령대가 보인다. 일행 중에는 독일 베를린에서 한달 살기 하다가 짧은 여행 오신 분도 있고, 슈트트가르트에서 교환학생인 분도 있고, 로마에 사시는 분도 계셨다. 어딜가나 동포들을 만나면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안해지네. 연주는 거의 2시간 넘게 계속 되었는데, 문제는 어제 도착한 내 시차 적응 때문에 계속 졸음이 찾아와 머리를 가끔 휘청거렸다. 공연장이 작아서 관객이 너무 잘 보이니까 연주자들에게 실례일까봐 최선을 다해 정신 차렸는데 역부족이다. 그런데 공연 말미에 한 곡 연주가 끝나자 누가 코를 드르렁~! 대차게 골아서 모두 까르르 웃었다.

공연이 12시까지 이어질듯 보여서 우리 일행은 그 전에 일어났다. 밴드에서 베이스 쳤다는 한 분이 이 밴드는 연주 실력은 훌륭한데 너무 비슷비슷한 분위기의 곡들만 이어지니까 끝까지 듣고있긴 어렵다고 했다. 음, 역시 모든 것엔 기획과 구성이 필요하군.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공연의 끝까지 관객을 몰입시키려면 완급 조절과 곡의 배치까지 신경써야 하나보다.

다들 안전 여행을 서로 기원하며 숙소로 흩어지고 한밤의 재즈 가락을 품고 숙소에 돌아오니 2만 보 넘게 걸은 다리가 매우 무겁다. 방울언니가 준 파스를 발목이랑 허리에 붙여야겠다. 욕심 부리다보니 오늘 하루 많이도 다녔네. 다리야 수고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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