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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러댄 Sep 05. 2019

명품이 대수야? 명품이 대수 맞더라

내 생에 첫 명품 일시불 구입


사실 명품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지금도 많은 편은 아니지만. 어느덧 27살을 먹고,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 명품에 관심을 가질 때에도 변함없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마인드였다. 어쩌면 비싸고 다가가기 힘든, 정말 나와는 전혀 관련 없는 어른들만의 리그가 아니었을까. 명품이란.


최근에 이 '명품'에 대해서 인식이 살짝 바뀌게 된 계기가 있다. 바로 드라마 때문인데, 임수정이 주연을 맡은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의 한 장면을 보고 나서다. 어리고 경력이 미숙한 신입사원과 함께 미팅 자리에 나가게 된 타미(임수정). 계약을 따와야 하는 자리에서 그 사람은 신입사원의 옷차림과 가방 등을 지적하면서 일이나 제대로 하겠냐고 무시한다.


출처ㅣnaver


미팅이 끝난 후 한숨 쉬는 신입사원에게 다가가 그녀의 가방과 자신의 가방을 바꾸는 타미. 그러고선 그 가방을 사원에게 주며 말한다. "20대는 돈이 없잖아요. 그런데도 왜 사회 초년생들이 무리해서 명품백을 사는 줄 알아요?"



무리해서 명품을 사는 이유


가진 게 많을 땐 감춰야 하고, 가진 게 없을 땐 과시해야 해요. 직급도, 경력도 가진 게 없을 땐 몸집을 불려야 하는 거예요. 투쟁할 수 없으면 타협해요. 그 뒤에 이어진 말이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방 안을 둘러보니 나도 그 신입사원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엄마가 물려준 명품백이 하나 있긴 하지만. 어차피 내가 입고 다니는 옷과 어울리지 않고 겉도는 느낌이라 거의 들지 않는 그 가방 하나를 빼고선.


난 27살의 나이로 많은 거래처나 업체와 미팅을 갖는다. 항상 만나면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건네는 것이 그 미팅 자리의 시작이었다. 간혹 어떤 업체 사람은 나에게 그런 말도 했다. 마케팅 혼자 담당하고 계신다고 해서 팀장급이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리시네요? 그럼 난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럴 수도 있죠 뭐. 취업을 빨리해서요~


은근히 나를 깔보며 가르치려 드는 사람도 수도 없이 보았다. 사실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나도 사람으로서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내가 나이가 어리면, 옷차림이 수수하면, 능력까지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지금 지갑은 이름 없는 3만 원짜리 카드지갑. 이전에 쓰던 지갑도 A-LAND에서 그냥 급하게 구입했던 회색 가죽지갑이었다. 4년을 사용했고, 요즘엔 카드만 간단히 들고 다닐 요량으로 카드지갑을 이용 중이다. 저렴한 가죽 소재라 때가 많이 타고 바래져있었다. 가만히 보다가 결심했다. 그래, 지갑을 사자! 명품으로!


명품백은 아직 크게 관심도 없고, 지갑 하나 좋은 걸로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련의 일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꽤 명목 있고 똑똑한 소비가 될 것 같았다. 제대로 된 지갑을 하나 사서, 몇 년이고 열심히 쓰면 되지 않겠냐는 명목. 미팅 자리도 많으니, 명함 꺼내서 보여줄 때 나름 있어 보이기도 할 것이다.(웃음)


열심히 찾고 찾아 유행을 타지 않을 디자인이면서도 내 마음에 쏙 드는 지갑을 정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가격은 60만 원 후반. 한 번에 큰 지출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평소 소비 패턴이 다소 부질없는 시발비용이 많은 편이었기에 이 참에 좀 아끼고 모아서 사기로 했다.

(*시발비용: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을 뜻하는 신조어)



내 생에 첫 내돈내산 명품


날 좋은 날, 반차를 쓰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사람이 많이 없는 시간이라 더 좋았다. 예전엔 모르겠지만, 간혹 명품관에 가면 직원이 불친절하게 응대한다거나 하는 이상한 갑질도 없었다. 이미 봐 둔 지갑을 실제로 꼼꼼히 따져보고, 구입하겠다고 말했다.


직원이 웃으며 할부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했다. 일시불이요. 덤덤하게 대답했지만 속으로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 가격 일시불로 사본 거 처음이야! 할부로 샀더라면 당장에 큰 부담 없이 나눠서 내도 되니 편했겠지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부턴 쉽게 명품에 돈을 지를 것 같아 일시불로 계산했다.


구입 후 아주 만족하면서 잘 쓰고 있는 지갑. 명품은 과하게 사면 사치가 되지만, 때에 맞게 소비하면 최고의 물건이 된다. 첫 입사 후 6년을 내리 달려온 나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 같은 느낌도 있달까. 10주년엔, 백 하나 장만해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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