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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Dec 31. 2019

돌아보기의 힘 2

2회차_ 담벼락이 없는 마을

 동인천탐험단에 다녀오고 두 달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시험과 일상에 치여 바쁜 와중에도 이 글은 꼭 쓰고야 말겠다고 생각했고, 2019년의 마지막 날인 오늘 2회차 탐험기를 올린다.


2회차_ 담벼락이 없는 마을


 2019년 11월 9일 동인천탐험단 2회차는 한양대학교 건축학부의 도미이 마사노리 교수님과 함께했다. 도미이 마사노리 교수님은 동아시아의 역사유적, 건축양식에 대해 연구해오셨다. 한국에서는 군산과 인천의 내항, 강화도 등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역사 흔적에 대해서 연구하고 알리고자 하신다. 2017년 책 『모던인천시리즈1 (조감도와 사진으로 보는 1930년대)』를 펴내기도 하셨다.


 하얀 머리, 하얀 수염의 도미이 교수님은 첫인상부터 남달랐다. 자기소개를 하시며 ‘도미 찌개’를 먹는 모션을 취하시고는, 그렇게 이름을 기억해달라고 하셨다. 나보다 몇 곱절은 더 나이 드신 교수님의 농담이 ‘교수님’을 만난다는 마음에 굳어진 내 긴장을 단숨에 풀어주었다. 재미의 여부를 떠나, 처음 보는 이들의 긴장과 어색함을 풀어주려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따뜻한 자기소개였다. 2회차 탐험은 1회차와 비슷한 코스로, 율목도서관에서 시작해 신흥동의 주택들을 돌아보았다. 1회차 보다는 짧은 코스였지만, 교수님의 자세한 건축적 견해와 일본인 건축가로서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직접 그림을 그리며 설명해주시는 도미이 교수님의 손

 율목도서관 마당에서 우리는 마당과 정원의 차이에서 시작해 지붕 구조와 공간의 규모, 일본과 한국의 공간 구성 방식 등에 대해 한참 이야기했다. 우선, 마당과 정원의 차이는 그 ‘규모와 쓰임의 차이’에서 온다. 한국의 집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마당’은 정원보다는 작은 규모로, 식물을 심기보다는 비워져 있는 경우가 많다. 농사를 짓거나 밭을 일구는 경우가 많았던 예전에는, 쌀겨를 털어내거나 작물을 손질하는 등 마당에서 많은 일들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비교적 큰 규모이면서, 다양한 식물을 심고 가꾸는 공간을 ‘정원’이라고 한다. 이 ‘정원’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차이도 재미있다. 한국은 주로 정원이나 집 안에서 집 근처 산이나 자연을 바라보기를 좋아한다. 때문에 일부러 식물을 많이 심기보다는 기존에 그 땅에서 자라던 식물을 보전하고 그 식물과 어우러지는 형태로 집을 지었다. 반면에 일본은 그런 자연 속에 있는 아름다운 돌과 식물을 자신의 정원에 들여놓기를 좋아한다. 자연의 세계를 하나의 한정된 공간 속에 응축하여 담아둔다. 이러한 양상은 수백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온 흐름이다.

어린이도서관은 지붕 구조체를 볼 수 있게 해두었다. 구불구불한 나무를 깎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보들이 아이들의 공간을 더 멋지게 받쳐준다.

 그 다음으로 교수님은 지붕의 구조에 따라서 달라지는 공간의 규모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다. 건물을 지을 때, 기둥과 기둥 사이를 연결하며 가로로 놓이는 구조체를 ‘보’라고 한다. 이 ‘보’는 건물에 오는 무게를 분산시키고 견뎌내는 중요한 구조체로, 단단하고 긴 나무를 깎아 만든다. 이 ‘보’와 지붕, 기둥을 연결하는 구조의 차이에 따라 공간의 규모가 달라진다. 한국은 길고 곧게 자라기보다는 굽어 자라는 소나무가 많다. 때문에 길고 곧은 보를 만들기 위한 나무가 매우 귀했다. 이에 자연스럽게 집들이 칸칸이 방을 붙여 만드는 양식을 띤다. 각 방마다 기둥과 보를 짧게 짧게 만들어 연결하는 방식이므로, 길고 굵은 나무를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반면에 일본주택은 긴 보를 지붕과 연결하여 내부에 기둥이 적은 양상을 띄었다. 먼저 큰 공간을 만들고, 그 안을 벽으로 나누는 방식인 것이다. 한국은 작은 공간을 모아 큰 한 채를, 일본은 큰 한 채를 나눠 여러 공간을 만들었다. 가깝고도 먼 두 나라의 차이가 새삼 신기하고 재미있게 다가왔다. 강의를 들으며 외우기만 했던 지붕 양식과 보, 기둥의 관계에 대해서 눈으로 보고 설명을 들으니 더 뇌리에 박혔다. 설명해주는 교수님도, 함께 듣는 탐험단 분들도 얼굴에 미소를 띄고 있었다. 그렇게 여러 차례 질문과 설명이 오가고, 다음 장소로 발걸음을 떼면서도 교수님께서는 금방 발길을 멈추고 새로운 이야기를 해주셨다.

일본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과실나무와, 축대를 사용하지 않고 경사로를 따라 집을 짓는 한국 양식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신흥동의 집들을 보면, 1, 2층 규모의 주택들이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나란히 자리해있다. 서로 눈은 마주칠 수 있을 정도 높이의 담벼락을 두고 다닥다닥 붙은 집들. 1900년대에 지어진 집들은 대부분 그런 형태일 것이다. 그리고 요즘은 이런 담벼락조차 무색하게 층층이 나눠져 높게 지어진 집들, 빌라와 아파트가 주로 지어진다. 한 건물에 사는 사는 사람과 마주치는 것조차 꺼려하는 요즘이다. 이런 현재를 이야기하며, 도미이 교수님께서는 ‘담벼락이 없는 마을’ 이야기를 해주셨다. 건강한 마을,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담벼락을 모두 허물어야 한다’고. 너의 땅과 나의 땅을 나누는 경계를 허물고, 누구든 작은 골목 사이를 누비며 서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런 관계 맺기가 이뤄질 수 있는 마을이 곧 좋은 마을이다. 이상적이기만 한 이야기 같지만, 멀지 않은 과거에 인간은 그렇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다.

이 집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집을 떠났을까? 지금 이 모습을 보면 어떤 마음일까?

 철거가 진행되는 집들은 붉은 스프레이로 ‘철거’ 표시를 한다. 그렇게 철거 표시된 집들은 한동안 방치되고, 각종 업자들에 의해 생선살 발라먹듯 뜯겨져 나중에는 앙상하게 가시만 남는다. 가장 먼저 철문과 창틀부터 시작해 집안의 각종 가구와 시설들이 하나, 둘 사라진다고 한다. 이렇게 점점 허물어지는 집들 사이에서 도미이 교수님과 탐험단은 ‘철거’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낡을 대로 낡고 관리되지 못한 집들은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 집이 지긋지긋하게 싫었을 수도 있겠다.’ 라는 탐험단 일행의 말이 떠오른다. 그렇다. 누군가는 기록하고, 남기고 싶어하는 지금 이 집이 누군가에게는 지독하게 뼈아픈 기억, 사라지는 것이 마땅한 공간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재개발, 철거 현장을 기록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철거되는 집들 사이에서 발견된 부윤관사(현재 개인 소유지), 역사유적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철거 대상에서 해지되었다.

 그렇기에 더욱 우리는 주위를 돌아봐야 한다. 도미이 교수님께서는 ‘남겨야 할 것과 없앨 것, 기록해야만 하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을 들으며 ‘돌아보기’가 필요한 이유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다. 우리가 무심코 살아가는 공간에서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지 잊고 살아갈 때가 많다.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에 어떤 역사가 있는지, 그 역사가 우리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아직도 그 역사를 담고 있는 흔적들이 존재하는지 알지 못한 채 쉽게 그 흔적들을 지우고 허물어버린다. 그런 역사들이 가진 가치에 대해 들여다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이 땅과 지역의 가치가 살아나는 것은 아닐까? ‘지역성’, 지역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그런 과거와 현재의 흔적을 잘 돌아볼 때 살아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나고 자란 인천은 어떤 도시보다도 그런 잠재력이 충만한 도시이다.

이 길을 기준으로 왼편의 집들은 모두 허물어지고 29층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한다. 색색의 아름다운 단풍 나무가 사라지고, 맞은편 집들에는 그늘이 드리울 예정이다.

  탐험을 끝마치고 도미이 교수님께 한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이유를 여쭤봤다. ‘한국 학생들의 열정이 좋아서요. 아, 그리고 음식이 입에 맞아서.’ 라고 웃으며 대답해주셨다. 나는 그런 교수님의 열정이 좋았다. 하얀 머리 하얀 수염의 교수님께서 신흥동을 함께 걸으며 보여주신 눈빛과 손짓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2019년의 마지막 날, 그래서 나는 이 글을 꼭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2020년 새해에도 주변의 더 깊은 곳들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워낙 게으르고 느린 사람이지만, 하나하나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며 여러분께 내가 보는 세상 이야기를 꾸준히 전하고 싶다. 이런 마음을 먹게 된 데에는 동인천탐험단 ’신흥동’ 의 경험이 가장 큰 보탬이 되었다. 동인천탐험단’신흥동’의 기록은 1월 중순 경에 출판될 예정이며, 건축재생공방, 복숭아꽃 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소식을 받아볼 수 있다. 신흥동을 걸을 때의 그 기분을 책을 읽으며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photo by. 진진


*글에 표현된 대부분의 지식은 도미이 마사노리 교수님, 이의중 건축가님의 설명을 바탕으로, 제가 적은 메모를 통해 재구성되었음을 알립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

느리지만 꾸준히 제가 보는 세상을 글로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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