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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Apr 14. 2022

담기와 짓기

사라진 사람들

'건축은 사람의 삶을 담는 그릇'

건축을 공부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았을 수식어다.

그렇다면 '건설은 그릇을 부수고 옹벽을 쌓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한국에서 20여 년간 내가 보아온 건설은 그랬다.

학문적으로는 건축이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이라면, 건설은 디자인된 공간을 현실화시키는 행위라 설명한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서의 건설은 사업이고, 좋은 집을 짓는 것보다 비싼 집을 파는 것에 집중한다.

한국의 건축, 건설업은 사람의 삶을 담는 그릇, 집들을 부수고 그 안에 있던 삶의 틀을 파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새롭게 쌓인 옹벽 안에서 사람들은 말한다.

"아파트 주민 외 외부인 출입을 금합니다."

삶의 그릇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사람들은 떠났고, 오래된 가구들만 재개발지에 쌓여 나뒹군다.

당장이라도 스러질 듯 아슬하지만 80년 넘게 누군가의 삶을 담아온 집을 허물고,

사실상 80%쯤 은행 소유라 할 수 있는 아파트가 들어선다.

사람의 삶을 담는 그릇을 만들어 보고 싶고,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서 건축을 전공했다.

그렇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건축회사에서 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건축이라는 이상과 건설이라는 현실 사이에 끼어 갈 곳을 잃은 나는 둘 중 어느 길도 가지 않는 길을 선택했다.


20220208 머리가 복잡해서 지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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