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모토 하지메 <가난뱅이 자립 대작전>
자립이란 단어를 풀어 써보면 다음과 같다. ‘스스로 자(自)’. ‘설 립(立)’-대지 위에 선 사람을 본뜬 상형문자로부터 기원했다고 한다. 혼자 서있는 사람에 ‘스스로’라는 의미를 덧댄 ‘자립(自立)’에는 독립적인 힘이 두 번 강조되어 있는 셈이다.
이 세계의 ‘자립’은 자본을 전제로 한다. 소설가 폴오스터는 에세이 <고독의 발명>에서 돈이 인간을 고독하게 만든다고 말한 바 있는데, 서 있기 전에, 달리고 추월하는 법부터 배우는 걸 보면,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우뚝이 아닌 우두커니 서 있는 모양새로 자립하게 되는 건, 자립보다 자본에 집착하기 때문은 아닐까. 일종의 주객전도다.
<가난뱅이 자립 대작전>은 경쟁사회, 극자본주의, 민족주의, 차별 등 요지경의 세상에서 자본의 논리를 거슬러 ‘자립’을 도모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작은따옴표 안에 단어를 가둔 이유는, 이들의 자립에는 ‘함께’의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자립을 위한 첫 번째 작전은 ‘뜻이 같은 동료 만들기’다. ‘가난뱅이들’은 공동의 가게와 공간을 운영함으로써 발 디딜 곳을 마련하는데, 책에는 그 방법이 무척 상세하게 적혀있어 실용서를 읽는 듯한 기분까지 든다.
“세계 경제도 아주 예전에 성장이 멈춰버렸어. 그 덕인지 돈, 지위, 권력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지루한 인생에서 이탈한 녀석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더니 그들끼리 바보 같은 자립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어. 그 녀석들이 교류를 늘려갈수록 더 재미있어질 거야.”
실제로 작가는 재활용품 가게, 이벤트 공간, 음식점, 숙박업소를 동료들과 운영하며 사업 수완을 발휘하지만, 그 목표를 ‘수익’이 아닌 ‘재미’에 둔다. 무엇이든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 이들의 영업 비결인 것이다.
심지어는 세계 가난뱅이 네트워크를 결성해, 독자적인 여권과 화폐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동시다발적인 시위도 벌인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들의 자립은 ‘연대’를 통해 가능해진다.
자립(自立)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스스로’란 의미가 강조된 것은 어쩌면 자립의 과정에서 자신을 잃지 말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좁은 땅이라도 중심을 잡고 디딜 수 있어야 한다는 말로 환언해볼 수도 있겠다. 두 발로 설 힘이 생길 때까진 기댔다가 업혔다가. 그렇게 엉겨 붙어 서 있는 모양새가 이 시대의 이상적인 자립의 형태일지도.
퇴근 후 집에 돌아온 나를, 매일 다른 사람이 맞아주는 건 어떤 기분일까. 철물점이 가득한 골목에 자리하고 있는 ‘Bolt House’는 이 엉뚱한 상상이 실현되는 공간이다. 숙박 플랫폼 ‘카우치서핑’과 ‘웜샤워’를 통해 여행자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이곳은, 호스트 커플의 실제 거주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 역시 책에 소개된 공간들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에서 벗어난 새로운 방식으로 운영된다. 호스트가 무료로 공간을 베푸는 대신, 게스트는 자기 나라의 언어나 문화, 경험 등을 공유하는 식이다.
“우리도 어렵게 문을 열어줬고, 숙박객도 그 많은 호스트 중 우리를 찾아 자기소개 글도 보낸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복잡하고 신기한 과정을 거쳐서 만난 건데,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잖아요.”
- Direct Magazine 인터뷰 中 -
그러나 모르는 사람의 공간에 머문다는 건 여성에게 큰 두려움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Bolt House’는 이들을 위해 공간이 시간별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 지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고 한다. 금전적 여유의 부족이 모두에게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는 점. 평등해 보이는 ‘가난뱅이’ 사회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