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에세이] 내얘기듣고있나요
한 번도 그렇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항상 그녀를 불안해하며 조바심 내는 그에게,
그녀는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깊은 사랑은, 딱 한 번뿐이었던 것 같아.
그 후로도 몇 번.. 널 만나기 전에, 연애, 비슷한 걸 하긴 했어.
그런 적 있어?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발이 닿지 않는, 깊은 물까지 들어가게 된 거야..
누군가가 구해줄 때까지 물속에서 허우적대다가,
겨우 물 밖으로 나온 경험을 했던 아이는,
어른이 된 후에도, 쉽게 바닷물 깊은 곳까지 들어가진 않아.
바다 근처에 아주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가 봤자, 고작 파도가 슬쩍 밀려들어오는 모래사장에 앉아서,
첨벙첨벙, 발로 물장구를 치거나, 손끝에 살짝, 물을 적시기만 하지.
시간이 오래 흘러서, 어린 아이였을 때의 표정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게 되더라도-
혹시 어쩌다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깊은 바다로 들어가게 되더라도,
온 몸의 세포가 그 때 그 순간을 기억하는 거야.
‘이건 아니야. 이렇게 깊은 곳까지 들어오면, 넌 죽을지도 몰라’
한 번 깊은 바다에 빠져, 죽을 뻔한 경험을 했던 사람은,
그게 겨울이었는지, 여름이었는지,
내가 세 살 때였는지, 네 살 때였는지를 기억하진 못해도,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온 몸으로 기억해.
그래서 다신, 그 근처에 가지 않아.”
그녀는, 그가 이 말을, 이해해주길 바랬다.
이것이 바로, 내가 너와 <연인>이라는 이름을 공유하면서도,
너에게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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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그가, 그녀의 용기 있는 솔직함에 대한, 대답을 들려줄 차례였다.
“솔직히 그랬어. 나는... 우리가 공식적으로 사귀는 사이여도,
여전히 내가, 너를 짝사랑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 기분, 알지? / 어쩌다, 입고 나온 옷이 마음에 안 드는 날...
괜히 사람들이 다 나만 쳐다보는 것 같고-
그렇다고 무슨 구멍 난 옷을 입고 나온 것도 아닌데, 괜히 자신도 없어지고-
내가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인 것 같고, 그런 기분.../
너랑 있을 때, 그런 기분이 종종 들곤 했어.
아, 그러니까 내 말은...
어쩌면 내가 널 자신 없게 하는, 그런 옷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내가 니 옆에 바짝 붙어서, 가끔 어깨에 손도 올리고 하는 걸,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게 볼 거라는 생각./
내가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
그래도 나는, 아직 이게 짝사랑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괜찮았어.
어차피 넌 날 좋아하지 않는데, 내가 귀찮게 구는 거다-
니가 나를 좀 쌀쌀맞게 대해도, 그건 정당한 거다-
왜냐하면, 이건 짝사랑이니까./
그런데, 이제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네.
니가 싫어하는 건, 내가 아니었어.
그냥 넌, 나를 더 많이 좋아하게 될까봐, 그게 두려웠던 거지.
난 이게 짝사랑이라고 생각해서,
널 더 깊은 바다 속으로 끌어들이지 않기로 했던 건데,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되겠다.”
사실 깊은 바다 속이 두려운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누구 한 사람이라도 더 큰 용기를 내지 않으면,
그보다 더 깊은 바다도 있다는 걸, 영원히 모를 수도 있는 일이었다.
나를 무한대로 용감하게 만드는 힘,
거기가 어디든, 함께라면 깊은 바다속 쯤은 하나도 두렵지 않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