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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ney Nov 22. 2021

철학을 경험하고 싶다면

[번역을 마치고] '생각이란 무엇인가'의 전대호

[편집자 주] 이른바 '신실재론'으로 주목받고 있는 독일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신작 <생각이란 무엇인가>가 번역돼 나왔다. <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 <나는 뇌가 아니다>에 이은 그의 3부작 완결 편이다. 두 번째 책에 이어 이번 책도 우리말로 옮긴 전대호 번역가와의 책 인터뷰를 싣는다. 등단 시인이자 독자적인 철학서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출판계에서도 믿고 맡길 만한 번역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다양한 책 이야기뿐 아니라 번역가로서의 삶과 생각에 관한 답변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손님에게 <생각이란 무엇인가>를 권하신다면 어떻게 소개하시겠습니까?     


고전적인 철학에 대한 충실한 이해를 바탕에 깔고 현재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책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20세기 후반 프랑스의 파격적인 철학들이 인기를 끄는 듯하다.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인데, 이 책은 그 흐름을 비판하고 제한함으로써 지식 생태계의 균형을 잡는 요긴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저자는 대중도 알기 쉽게 풀어쓴 언어로 독일의 신중한 철학을 충분히 경험하게 해 준다.     


-특히 어떤 독자에게 권하고 싶으신가요?     


근대적 보편주의와 인본주의를 빛바랜 과거의 유물로 취급하는 것을 수준 높은 통찰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우리 주위에 꽤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분위기에 의문이나 반감을 품으면서, 우리 사회에는 더 많은 근대성, 더 많은 보편주의, 더 많은 인본주의가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품어온 분이라면 이 책을 비롯한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인본주의 3부작이 무척 반가울 것이다. 근대는 빛바래지 않는다.


철학을 접해보려 하는 젊은이들에게도 권한다. 철학은 일반인의 생각을 훌쩍 뛰어넘는 천재의 작품이 아니라, 평범한 상식과 맥이 통하는, 인간의 보편적 활동이라는 소중한 교훈을 준다.


-첫 번째 국내 독자로서 이번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나 가장 인상 깊게 보신 내용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머리말의 첫 문장 “인간은 동물이 아니기를 의지하는 동물이다”였다. ‘동물이 아니기로 작심한 동물’이라고 표현해도 좋겠다. 이 한마디 문구 안에 인간의 불안정한 본질이 담겼고 철학의 근본 문제가 담겼다고 느낀다. 물론 이를 새로운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우리 모두가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사는 동안 최소한 암묵적으로 늘 느끼는 사실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철학이라는 것이 흔히 이렇다. 철학은 이미 아는 바를 새삼 되새기는 작업일 때가 많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3부작 중에서 <나는 뇌가 아니다>와 이번 책까지 두 권을 맡아 번역하셨습니다. 3부작을 관통하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무엇이며, 지금 국내 독자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저자는 자신의 존재론을 “신실재론”(영어로 New Realism)으로 명명하는데, 이것이 3부작을 관통하는 핵심 주장이다. 이 주장의 기반에는 우리가 늘 실재와 접촉하고 있다는 상식적인 믿음이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을 비롯한 여러 요인 때문에 오늘날 적잖은 사람들이 이른바 “실재로부터의 소외”를 느낀다. 내 삶이 공중에 붕 떠 있다는 느낌, 나를 비롯한 세계 전체가 신이나 외계인이 제작한 시뮬레이션일지도 모른다는 상상, 나를 비롯한 모든 인간은 진짜 진실에 접근할 수 없으며 단지 제각각 지어낸 허구를 진실로 믿으며 산다는 생각 등을 “실재로부터의 소외”가 낳는 증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창백하고 무기력한 탁상공론의 대척점에 신실재론이 있다. 신실재론이 말하는 실재는 우리가 삶을 꾸려갈 때 늘 마주치는 걸림돌들에 가깝다. 실재는 우리의 견해를 수정할 것을 명령한다. 실재가 있으므로 우리는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수정할 수 있다. 방금 걸림돌이라고 했지만, 실재는 디딤돌, 기반, 기댈 언덕이기도 하다. 요컨대 실재는 우리와 더불어 우리의 삶을 지어가는 공동작가라고 할 만하다. 신실재론은 그런 실재를 주목한다.


1990년대쯤 전 세계적 유행에 발맞춰 우리 사회에서도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이 인기를 누렸으며, 그 여파는 지금도 뚜렷이 감지된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이 “탈근대적 구성주의”로 칭하는 그 사상적 흐름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전통이 중시해온 모든 것, 이를테면 실재, 선(善), 인간, 이성 등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심지어 악한 의도에 종사하는 허수아비쯤으로 격하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긍정적인 기여가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이런 포스트모더니즘은 우리 각자에게 단 하나뿐인 절실한 삶을 외면하고 엄연한 인간의 책임을 방기하는, 철없고 창백한 발랄함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탈근대적 “구성주의는 틀렸다”라고 단언하는 이 책은 여전히 포스트모더니즘 안에 갇혀있는 이 땅의 일부 교양인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일깨울 수 있을 것이다.     


-저자나 저자가 전개하는 신실재론이 현재 학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나 평가는 어떠한지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21세기가 꽤 진행된 지금, 포스트모더니즘을 비롯한 20세기의 다양한 “구성주의”에 대한 반발로 실재론이 득세하는 것은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유럽에서 새로운 실재론을 대표하는 철학자로는 프랑스의 퀑탱 메이야수(사변적 실재론)와 이 책의 저자(신실재론)를 꼽을 만하다.


아울러 영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철학자 장하석의 “능동적 실재주의Active Realism”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장하석은 과학철학자여서 실재론 논쟁의 중심에서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부분적으로 윌리엄 제임스를 비롯한 고전적 미국 철학자들의 영향 아래에서 발전한 것으로 보이는 그의 능동적 실재주의는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신실재론과 닮은 구석이 놀랄 만큼 많다.


예컨대 “실재는 우리의 견해를 수정한다”라는 문장은 두 철학자 모두에게 실재의 정의라고 할 만하다. 더 나아가 장하석은 우리가 실재와의 접촉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고 촉구한다. 더 많이 틀리고, 더 많이 수정하라고 권하는 셈인데,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이 조언에 전적으로 동의할 것이다.


가브리엘이 학계에서 받는 평가에 대해서는, 그가 서른도 안 된 나이에 본 대학교의 정교수로 임명되었다는 사실을 짚어두는 것으로 충분할 듯하다. 본 대학교는 철학과 신학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번역하시면서 가장 힘들었거나 고민했던 부분을 이야기하신다면?     


독일어 Sinn이 가장 애를 먹였다. 영어 sense에 해당하는 단어인데, ‘뜻’을 의미하기도 하고 ‘감각’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라틴어 sensus에서 유래한 단어여서, 때로는 ‘방향’이나 ‘길’을 뜻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저자가 이 단어의 풍부한 다의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이다. 그런 대목에서는 번역의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여러 저자의 많은 책들을 번역해 오셨습니다. 저자로서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특징이라면?     


가브리엘은 주요 용어를 그때그때의 논의 맥락에 맞게 명쾌하게 정의하고 핵심 주장을 명확한 문장으로 정리하기를 좋아하는 저자다. 이런 면에서는 독창적이고 심오한 작가라기보다 꼼꼼한 선생에 가깝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여러 나라의 텔레비전 시리즈, 영화, 소설을 예로 들 때가 많다. 그 많은 시리즈를 언제 다 봤을까, 의문이 들 정도다. 이런 면에서 가브리엘은 풍부한 이야기꾼, 독일 철학계에서는 꽤 드문 경우다.


-그동안 과학과 철학 분야의 비교적 어려운 책들을 많이 번역해 오셨습니다. 서점에서 '전대호 번역서 특별전'을 열면서 다섯 권 정도를 요청한다면 어떤 책을 꼽으시겠습니까?


원래 물리학과 수학을 중심으로 자연과학 분야를 주로 번역해왔지만, 최근 들어 철학에 주력하고 있다. 지금까지 낸 번역서는 제각각의 이유로 모두 소중하면서 또 아쉽다. 대표적으로 다섯 권을 꼽으라면 1) <유클리드의 창> 2) <로지코믹스> 3) <위대한 설계> 4) <물은 H2O인가?> 5) <생각이란 무엇인가>를 대겠다.

1) <유클리드의 창>은 본격적인 번역 경력의 첫 결실이었다. 꽤 오래전에 나온 책인데도 여전히 건재해서 뿌듯하다.

2) <로지코믹스>는 내가 번역한 유일무이한 만화책이다. 20세기 초반 논리학과 수학의 풍경을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을 중심으로 묘사한 작품인데, 재미와 깊이를 겸비했을 뿐 아니라 철학적 숙고를 유도하는 힘도 강하다.

3) <위대한 설계>는 가장 많이 팔린 나의 번역서일 것이다. 저자 스티븐 호킹이 워낙 유명한 인물이어서일 텐데, 나로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간략한 번역서 목록을 적을 때면, 맨 먼저 이 책을 적곤 한다.

4) <물은 H2O인가?>는 올해 나의 가장 큰 번역 성과일뿐더러 내 경력을 통틀어서도 주요 성과다. 저자 장하석 교수의 친절한 도움을 받으며 번역했는데, 그 과정에서 번역가로서, 또 철학자로서 많은 것을 배웠다.

5) <생각이란 무엇인가>는 지금까지 번역한 철학책 중에 으뜸으로 꼽을 만하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작품을 앞으로도 몇 권 더 번역할 것 같은데, 그의 글을 번역하는 일은 나 자신을 위한 철학 공부의 성격이 강하다. 일하면서 공부도 하는 것은 참 고마운 혜택이다.     


-번역 작업 중의 오랜 습관이나 수칙, 모토 같은 것이 있으신가요?     


일관된 원칙이라면, 정확한 의미 전달을 가장 중시하는 것을 꼽겠다. 문학이나 대중서가 아니라 과학책이 경력의 기반이기 때문에 몸에 밴 원칙일 것이다. 술술 읽히는 문장보다 원문의 의미를 되도록 고스란히 담은 문장을 추구한다.


나이를 먹고 경력이 꽤 쌓이면서 달라진 점도 있다. 노동 시간, 번역량, 수입은 당연히 줄었고, 세세한 문구를 둘러싼 편집자와의 충돌은 거의 사라졌으며, 경제적 보상보다는 사회적 보람을 추구하는 경향이 더 강해졌다.


-현재 집필 내지는 번역 작업 중이거나 계획 중인 책이 있으신가요?     


4년 전부터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나의 번역으로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이어왔다. 누구나 원하면 참여할 수 있다.(*아래 미주 참조) 그 강독회의 결실로 나의 번역과 저술을 엮어서 <정신현상학 강독 1>과 <정신현상학 강독 2 자기의식 편: 다름이 함께 있음>을 출판했다. 이 <정신현상학 강독> 시리즈를 계속 쓰는 중이다.

번역은 생업이니 늘 하는데, 지금은 이 시대의 도덕적 진보를 논하는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책과 뇌 속 뉴런들이 주고받는 ‘스파이크’를 다루는 신경과학책을 번역하고 있다. 전자는 독일어, 후자는 영어다. 오전에 가브리엘을 번역하고, 오후에 망막, 시각피질, 관자엽 등을 훑는다. 양쪽 다 재미있다.     


-꼭 번역해보고 싶은 저자나 책이 있으신가요?     


단연 헤겔의 <정신현상학>이다. 이 책을 다 번역하는 것은 내가 번역가로서 또 철학자로서 스스로 짊어진 사명이다. 지금까지 절반쯤 번역했는데, 작업을 서두를 생각은 없다. 강독회를 이어가면서 차근차근 해나갈 것이다.


또 하나는 그저 막연한 그리움 같은 것이지만, 멋진 독일어 시(詩)를 번역해보고 싶다. 괴테도 좋고, 횔덜린이나 릴케, 헤세, 브레히트도 좋다. 아마 가까운 장래에 실현되기는 어려운 희망일 것이다.


-등단 시인이시기도 합니다. 저자로서의 뜻이나 계획은?     


나를 시인으로 기억해줘서 정말 고맙다. 1997년에 둘째 시집을 낸 후로 작품 활동을 사실상 중단한 상태였는데, 기쁘게도 몇 해 전부터 다시 시를 쓴다. 내년 초에 <지천명의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셋째 시집을 낼 것이다. 필요한 작업은 이미 끝났다.


고등학교 때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다짐했던 것이 있다. “내가 옛날에 시 썼었어”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말자! 그러니까 시인이었던 시절을 아예 묻어버리거나 아니면 시인으로서 종신(終身)하겠다는 다짐이었다. 괜찮은 시를 썼다고 느낄 때의 뿌듯함은 철학적 저술이나 번역의 보람과는 차원이 다르다. 더 이상의 말은 삼가겠다. 시인은 시로 말하는 것이 옳다.     


-현재 한국에서 번역가로 살면서 겪는 즐거움이라면? 괴로움은?     


번역은 지식과 사회적 인정에 가치를 두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직업인데, 다행히 내 가치관이 그러한 듯하다. 일하면서 공부도 할 수 있는 직업, 가만히 있어도 언론이 나서서 일의 성과를 보도해주는 직업이 어디 흔한가? 번역은 지식인에게 매력적인 사업이다. 특히 창작과 비교할 때 번역은 꾸준한 노동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내 경험으로 창작은 심하게 출렁거려서 꾸준하기 어렵다. 정말로 꼼꼼히 책을 읽고 이해한 독자가 좋아하고 심지어 고마워할 때, 번역가로서 가장 즐겁다.


괴로움이 있다면, 그 원인은 결국 경제적 보상의 빈약함일 것이다. 번역으로 가족의 살림을 지탱하려면, 정말 많이 일해야 하고, 번역량을 늘리려 애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지식과 전문성을 추구하는 번역가는 생계의 문제에 직면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같은 원인에서 비롯된 구조적 괴로움도 있다. 출판계 전반이 경제적 보상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대중을 끌어들이기로 작정하고 기획한, 변변치 않은 책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 것을 볼 때, 힘이 쭉 빠지곤 한다. 경제적 가치 이외의 가치를 추구하는 번역가는 출판시장에서 종종 괴롭다.


-번역가의 삶은 권할 만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직업으로서 번역의 장점을 하나 더 꼽자면, 지루하지 않다는 점을 댈 수 있다. 두세 달마다 일을 매듭짓고 결실을 손에 쥘 수 있으며, 늘 새로운 분야의 새로운 목소리를 접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적 보상이 빈약하다는 치명적 단점 때문에, 번역가의 삶을 많은 분께 권할 수는 없을 듯하다. 하지만 번역가 두 명이 함께 살림을 꾸린다면, 경제적 지속가능성과 경쟁력도 어느 정도 갖출 수 있다. 공부가 좋은 사람, 사람들이 알아주고 존중해주는 것이 좋은 사람에게는 번역이 썩 괜찮은 직업이다.


관심 있는 분들께는, 번역은 언어를 다루는 일이라기보다 지식을 다루는 일이라는 말을 해드리고 싶다. 내가 번역가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면, 그것은 주로 과학 및 철학에 대한 지식 덕분이지, 영어 및 독일어 구사 능력이나 유려한 글솜씨 덕분이 아니다. 번역가는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한 지식과 호기심이 풍부해야 한다. 거기에다 개떡 같은 글을 읽고도 찰떡 같이 알아먹는 눈치까지 갖추면 금상첨화다.     


-과학과 철학 분야의 추천할 만한 책 3권 정도를 고르신다면?     


이것은 나의 단점인데, 책을 추천하라면 내가 쓰거나 번역한 책만 떠오른다.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철학에서는 나의 저서인 <철학은 뿔이다>를 권한다. 현존하는 한국 철학자들을 비판하면서 저자의 고유한 철학을 그려나가는, 독특하고 쓸 만한 작품이라고 자부한다. 과학에서는 기억에 관한 신경과학의 역사를 서술한 <기억을 찾아서>, 과학사에서는 1800년경의 영국 과학을 다룬 <경이의 시대>를 추천한다.     

-분야 막론하고 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책으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일본의 굴레>를 인상 깊게 읽었다. 평소에도 일본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어떻게 하면 일본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우리에게 절실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특별히 가까이에 두고 아끼는 책이 있으신가요?


리영희 선생이 생의 막바지에 임헌영과 나눈 대화를 엮은 책 <대화>(리영희, 임헌영 저)를 참 좋아한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도 잘 모셔두고 가끔 펼친다. 독일어로 된 브레히트의 시 전집과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도 아끼는 책이다.

-생사를 불문하고 한 명의 저자/학자/기타 인물과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듣고 (혹은 무엇을 묻고) 싶으신가요?


1806년에 하숙방에서 <정신현상학>을 쓰느라 여념이 없는 헤겔과 만나고 싶다. 칸트가 위대한 철학자라면, 헤겔은 경이로운 철학자다. 허름한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가만히 앉아있고 싶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굳이 말을 걸어야 한다면, “밥은 먹고 다니십니까?”라는, 실없고 다정한 인사말이나 건네겠다.     


-<생각이란 무엇인가>에서 특별히 낭독해 주고 싶은 단락을 몇 개 골라주시겠습니까?


‘인간은 동물이 아니기를 의지하는 동물이다.’ 이 주요 문장은 오늘날 탈인본주의와 초인본주의 깃발 아래 널리 퍼진 혼란을 해명해 준다. 탈인본주의와 초인본주의의 기초는 인간과의 결별, 그리고 동물적-인간적 요소와 기술적 요소로 구성된 사이보그에 대한 환영이다. /29-30쪽

     

‘인간은 자유로운 정신적 생물이다.’ 즉, 우리 인간은 우리의 인간상을 스스로 수정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의 정신적 자유는 인간의 삶꼴Lebensform이 스스로 자신을 규정한다는 점에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인간임Menschsein을 정의하고, 그 정의에 기초하여 도덕적 가치들을 찾아내며, 우리의 행위를 그 가치들에 맞춘다. /32~33쪽


많은 이들은 문어나 비둘기의 지능보다 스마트폰의 지능을 더 기꺼이 인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미신이다. 하지만 이것은 오류일뿐더러 치명적인 도덕적 귀결들을 가진다. 인간에게, 기타 생물들에게, 또한 우리의 환경에 치명적인 귀결들을 말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과학허구를 통해 일그러진 방식이 아니라 실재론의 방식으로, 우리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생각감각과의 접촉을 긴급히 재건할 때다. /44쪽


*내년 초부터 오프라인에 기반을 두고 온라인 참여도 열어놓는 방식으로 모임을 재개하여 격주로 이어갈 예정입니다.

시간: 내년 1월부터 격주 수요일 오후 7시 - 9시30분(첫 모임 날짜는 아직 미정)

장소: 종로 보건소 앞 책카페 <문화공간 길담>(온라인 참여 가능)

네이버 카페 <문화공간 길담>을 방문하셔서 <헤겔정신현상학강독> 코너에 게재된 제 글을 보면 강독회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강독회에 관한 세부 문의는 제 이메일주소 daehojohn@hanmail.net로 주시면 답변드리겠습니다.

참여 의사를 밝히는 분들께는 나중에 강독회가 재개될 즈음에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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