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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ney Jan 13. 2022

왜 죽음 너머를 생각할까

시한부 판정받은 신경과학자의 단상


[편집자 주] 데이비드 린든은 미국의 출중한 신경과학자다. 존스홉킨스 의대 교수이면서 호평받은 여러 책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무엇 하나 남부러울 것 없던 그가 6개월 전 심장암 판정을 받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다. 6-18개월 시한부 삶을 앞에 두고 쓴 에세이를 애틀랜틱에 기고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준비하며 자신의 전문인 정신(뇌)에 관해 새로 깨닫게 된 것들을 담담히 써내려 갔다. 발췌했다.


내가 깨닫게 된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우리 정신은 겉보기에 상호 모순적인 두 가지 상태가 동시에 공존할 수 있다. 나는 내게 닥친 치명적 암에 격분하면서도 삶이 내게 준 모든 것에 깊이 감사한다. 그전까지 신경과학은 뇌가 한 번에 한 가지 상태만 가능하다고 봤다. 그렇지 않다. 우리 뇌는 그보다 미묘하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심지어 서로 충돌하는 인지적 감정적 상태를 모두 쉽게 수용할 수 있다.


둘째, 인간 존재의 깊은 진실은 객관적인 경험이란 없다는 것이다. 우리 뇌는 어떤 것이든 절대적 가치를 측정하기 위해 설계되어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지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은 자신의 기대와 비교 그리고 그때 환경에 의해 착색된다. 친구와의 30분과 대기 줄 속의 30분이 다르고, 연인의 터치와 낯선 이의 접촉은 같을 수 없다.


셋째, 내가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고 그에 대한 준비를 아무리 철저히 한다고 해도 나는 죽음의 전모나, 내가 죽고 난 후의 세상을 상상할 수는 없다. 이것은 어찌할 수 없는 우리 뇌의 한계다. 그전까지 신경과학은 우리 뇌를 수동적 반응적으로 이해했다. 지금은 뇌가 세계에 반응만 하는 데 아니라 적극적으로 미래 예측에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예측은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며, 그 결과 우리 뇌는 늘 가까운 미래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우리가 사망의 전모를 상상할 수 없는 이유다. 또한 동서양의 거의 모든 종교가 내세를 이야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뇌는 늘 예측할 미래를 찾고, 자신의 의식은 지속될 걸로 믿는다.


나는 신앙의 사람은 아니지만 지금은 종교의 내세에 대한 믿음과 그 신경학적 뿌리를 다시 생각한다. 그런 믿음은 인간 인지의 특장일까 결함일까. 결함이라 해도 이제는 공감한다. 내가 떠난 후에도 사랑하는 가족을 다시 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얼마나 큰 기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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