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틀렸다면 질문을 바꿔봐
나의 내면 직면하기
근무하는 사무실에 남편과 아들에게 헌신적인 분이 있다. 과장님은 주로 인터넷 백화점몰에서 늘 최저가 옷만 구매하신다고 하셨다. 나름 백화점에서 구입한 옷이라고 자부심이 있으시지만 백화점에도 중저가 브랜드는 차고 넘친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가격을 하는 옷들이다. 과장님은 본인 옷은 최저가를 사지만 남편과 아들 옷은 늘 백화점에서 고급만 사준다는 걸 자랑스럽게 얘기하셨다. 아들이 대학입학을 위해 재수중인데 늘 공부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으셨는데 과장님은 내가 못 먹고 못 입고 저를 키웠는데 어쩜 그렇게 말을 듣지않느냐고 속상해 하시면서 하소연을 하셨다.
사람마다 다 사는 방식이 다르고 내가 사는 방식이 정답도 아니고 그분 사는 방식도 다 틀리지 않음에도 마음에 드는 옷 하나 자유롭게 사지 못하는 부분도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졌다. (서두의 과장님은 회사의 다른 친한 선배가 자기더러 옷 좀 사 입으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고 한다.) 아끼는 것도 좋지만 멋진 아들과 남편에게 어울리게 나 자신을 꾸미는 것도 어느 정도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아니 그보다는 남편과 아들보다 자기 자신을 덜 소중하게 대하는 것 같아 그게 더 안쓰러웠다.
작년과 올해 아니 어쩌면 그전부터 나는 약간 집착적으로 옷을 사모았던 것을 인정한다. 앞서 말한 과장님도 본인이야 사정이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나에게만 소홀히 해서 결국 가족 구성원이 내게 서운하게 했을 때 적어도 내가 희생했다고 생각한 부분 때문에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냐'식으로 한탄은 말아야지 생각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택배박스가 문 앞에 배달되는데 남편이 뭘 그렇게 사느냐고 돈 참 잘 쓴다고 결국 한소리를 한다. 남편은 그냥 하는 말일 텐데도 어떨 땐 괜히 속으로 뜨끔 했다. 택배 상자보다 남편의 귀가가 더 늦는 것이 기쁠 때가 많았다. 가끔 문밖의 택배 상자들이 눈치가 보이면서도 사는 것을 멈추는 게 잘 안되었다. 필요에 의한 소비보다 충동에 의한 소비가 더 많았음을 인정한다.
퇴근해서 장을 보고 집에 와서는 아이 저녁을 차려준다. 설거지하고 다음날 아이의 찬거리를 만드느라고 저녁 9시 넘어서까지 부엌에 서있을 때면 피곤과 동시에 스트레스가 올라왔다. 내 돈 벌어서 내가 쓰지도 못하나. 육아에 살림에 이 정도도 못해? 나는 그럴만한 자격이(내 품위유지에 돈을 쓸만한) 있어! 하고 생각했다. 옷을 사고 말고는 그럴 만한 자격을 따지는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 텐데 나의 낮아진 자존감이 돈을 쓸 때만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자식 걱정에 집안 살림 걱정에 최저가 옷만 고르시는 과장님만 안타깝다 여길게 아니었다. 잘못된 자기애로 뭉친 내 마음 먼저 보살필 때가 되었다.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답이 틀렸다.
이제 다시 질문을 바꿀 때가 되었다. 왜 너는 옷을 많이 사니? 아니, 정말 그 많은 옷들이 전부 다 필요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