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해야겠다. 누군가가 명품백을 가지고 있다면 부러움을 넘어 나의 신세한탄까지 했다는 사실을. 내가 남을 보듯 남에게 보일 나의 외모에 대해 심하게 생각했음을(내 흔들리고 부족한 자아와 영혼은 의식하지도 못하고). 결국은 소심하고 연약한 내면의 모습을 숨기고 싶어서 옷이라는 방패를 삼았음을. 내면이 허약한 나는 세상과 세상 속의 사람들을 상대하기 버거워서 온 몸으로 한 껏 방패를 들고 있었음을. 옷이라는 갑옷으로 나를 위장해서 천하무적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무도 나를 무시하기 못하게 하고 싶은 내 욕망 때문이었음을.
누가 들으면 정말 내가 엄청나게 많은 옷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말 옷이 많은 사람들에 비할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물론 한 계절 내에 한 번도 안 입고 그다음 해로 넘어가는 옷들이 꽤 되긴 하다.) 그래도 신발과 가방 등 기본적인 구색은 갖추어야 하지 않나. 기본 템은 있어야 출근룩 코디를 할 수 있지 않나 하는 그런 나만의 합리화로 나도 모르게 사모은 옷들이 옷장에 가득하다.
이젠 좀 덜 사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내게 남편이 보여줄 게 있다고 했다. 2016년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미니멀리즘: 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인간이 물건을 사모는 것은 거의 본능 수준에 가깝지만 그러한 본능이 소비를 부추기는 지금의 현대 사회와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얻고 있는 듯했다. 많은 기업들은 매일 우리로 하여금 옷을 사지 않으면 패션에 뒤쳐지는 것처럼 부추기고 유튜브와 기타 다양한 SNS는 우리의 욕망에 더욱 기름칠을 하고 있다. 지난겨울 스키장엘 갔는데 스키장 입구에 대문짝만 하게 쇼핑 사이트 광고가 걸려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생각난다면 그건 사야 해!' 광고글을 보고 웃었지만 사야 할 물건이 머릿속에 있었다면 나도 설득당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방송에 나온 미니멀리스트는 한때는 대기업에 다녔다. 하지만 더 많은 소비를 위해 더 많이 벌고자 애쓰느라고 피곤해졌고 인생은 스트레스로 가득 찼다고 말했다. 우리는 쓰기 위해 버는지도 모르겠다. 방송에서는 본인이 가져야 할 물건의 개수를 줄이고 비움으로서 얻어지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심지어 집도 사이즈를 줄이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무엇이든 필요 이상의 것을 소유하는 것은 돈과 에너지를 낭비하기 십상이다. 나 역시도 쇼핑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쪼들리면서 정작 돈을 들여야 할 내 가족과 친구들에게 들어갈 돈을 줄이느라 정신적으로 더 풍요로운 생활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방송을 보고 남편에게 나도 1년간 옷 안 사기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라고. 그러려면 미리 옷 좀 사놔야겠다고 말했을 때 남편은 내게 '그건 미리 사기잖아. 그냥 평소처럼 살아!'하고 말했다. 아, 역시 그런가. 1년 동안 정말 아무것도 안 살 수 있을까? 벌써부터 자신이 없다.
포기하기엔 너무 늦었다. 마음 변하기 전에 옷장문을 펼친다. 내 옷장을 한꺼번에 전부 버리기는 어려우니 일단 333 프로젝트라도?
333 프로젝트는 2010년 미국 미니멀 리스트들로부터 시작되었는데 3개월 동안 33개의 패션 아이템(신발과 가방 및 액세서리 포함)만으로 생활하는 것으로 캡슐 옷장이라고 부른다. 곧 겨울이 다가올 텐데 그러면 코트와 패딩 등 옷의 변화의 폭이 너무 커지므로 일단 가을 10월부터 11월까지 2개월 동안 22개의 아이템으로만 생활해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나만의 222 프로젝트! 를 시작하기로 한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버릴 수 없는 나 같은 사람은 하나씩 점진적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은 시도가 아닐까.
나의 어마어마한 옷장에서 우선 자주 사용하는 옷과 패션 아이템을 고르기 위해서 미리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평소 자신이 어떤 옷차람을 자주 하는지, 어떤 룩을 선호하는지(어떻게 남들에게 비치고 싶은지) 혹은 어떤 스타일이 내게 잘 어울리는지를 미리 잘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입고 싶은 옷들과 자주 입는 옷 스타일이 일치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다르다면 구매하는 옷 따로, 즐겨 입는 옷 따로가 되고 이는 옷 값이 두배가 되는 지름길이다.
나는 패션을 따로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패션에 아주 조예가 깊거나 옷을 보는 안목이 높은 사람도 아니다. 그야말로 평범한 직장맘이다. 그럼에도 옷을 일단 줄이기로 마음먹으니 평소 편해서 자주 입는 스타일과 좋아하는 스타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예를 들면 재킷 + 원피스라던가, 재킷+ 슬랙스, 맨투맨 + 스커트, 니트 + 슬랙스, 블라우스 + 청바지(혹은 슬랙스), 카디건 + 원피스처럼 평소에 잘 입는 옷의 조합을 생각하고 아이템을 추려봤다. 이번 나의 2개월 프로젝트에서 가방과 신발은 제외했다.
- 아우터 3개 (검정 울 재킷 1, 브라운 울 재킷 1, 가죽재킷 1)
- 상의 10 개 (맨투맨 1, 니트 1, 블라우스 8)
- 치마 3 (검정 1, 브라운 1, 하늘색 스커트 1)
- 바지 3 (검정 슬랙스 2, 청바지 1)
- 원피스 1 (플라워 원피스 1)
- 카디건 2 (이너로도 입는 얇은 것으로 베이지 1, 검정 1)
자주 신는 운동화 2개와 가방을 제외했는데도 22개가 금세 걸러졌다. 슬랙스나 청바지 어디에도 잘 어울리는 블라우스 상의를 많이 고르게 되었다. 최애템을 걸렀으면 옷장에 이것만 두고 나머지는 일단 안 보이는 곳으로 치운다.(공간이 부족해서 안 보이는 곳으로 치울 수는 없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옷장만 따로 분리했다.) 그리하여 내가 제안하는 나와 같은 패. 알. 못인 분들에게 옷을 덜 사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생각해낸 방법을 소개하자면,
1. 나의 시그니처 룩 생각해보기
- 좋아하는 스타일이 꼭 한 가지일 필요는 없다. 나의 경우는 원피스처럼 여성스러운 스타일이나 슬랙스 차림의 시크한 룩도 좋아한다. 직장인이라면 사무실 분위기도 고려하면 좋겠다. 평소 자주 신는 신발과의 코디를 생각해서 자주 입는 아이템을 결정한다.
2. 나만의 룩북 만들기
- 유튜브의 많은 패션 고수들의 영상을 참고 허거나 Pinterest를 참고하면 내가 가진 아이템만으로 어떤 코디가 가능한 여러 가지 스타일을 캡처해두고 코디할 때 참고해본다. 계절별로 폴더를 만들어서 계절이 지날 때 같이 보면 좋다. 의외로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3. 매일 출근룩 찍어 관리해보기
- 계절이 바뀔 때 작년에 뭐 입었지? 작년엔 가방은 뭐 들고 다녔나? 하고 생각이 안 날 때가 많다. 계절별로 만들어진 폴더에 매일 출근 직전 사진을 찍어 보관해본다. 그러면 자신이 즐겨 입는 스타일도 한눈에 알 수 있고 해가 지나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새 옷을 살 때도 집에 어떤 옷이 있는지 생각해서 어울리는 아이템을 고를 수 있다. 예쁘다고 무턱대고 지갑을 였었지만 잘 입어지지 않는 옷도 있으니.
4. 회사에 여벌 옷 두기
- 겨울에는 레이어드 룩이 유행이다. 출근할 때는 추워서 덥게 입었다가 사무실에서는 너무 더워서 힘든 경우가 많은데 얇은 옷을 껴입고 더울 때는 벗어버리는 것도 좋지만 나는 껴입는 게 싫다. 점점 날씨가 추워지고 있지만 사무실은 여전히 따뜻하다.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여러 겹 껴입으면 답답해서 생각해낸 방법은 회사에 블라우스 2장 정도 비치하는 것이다. 자주 입는 청바지나 슬랙스에 무난하게 어울리는 것으로 두면 출근할 때는 따뜻하게 두꺼운 니트를 입고 왔다가 갈아입으면 된다. 의외로 해보면 편하다.
5. 트렌디한 아이템을 살 때는 자신이 주로 입는 스타일인지 한번 더 생각해본다.
- 어글리 슈즈나 가죽스커트 제품은 아직 손이 가지 않는 편이다. 와이드 팬츠도 아직 내겐 넘사벽이다. 쇼핑몰에서 예쁘다고 무턱대로 사놓고 나와 스타일이 맞지 않아 은근히 잘 입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나를 잘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줄어든 선택지는 아침마다 옷을 고르는 시간을 줄어들게 해 줄 것이다. 이제 실천만이 남았다. 아자!
<가을룩을 책임질 22개의 나의 아이템>
사진출처 : 네이버, 넷플릭스 '미니멀리즘 ; 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