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언젠가부터 감정의 소비가 참 쉬워졌다 느낀다. 누군가는 감정에 ‘소비’라는 명칭을 함께 붙인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겠지만, 사실 일상 속 숱하게 마주하는 감정소비는 얼마나 많은지 헤아릴 수 없다.
아마 핸드폰으로 문자가 가능했을 때부터 이 증상은 내게도 시작되고 있었다. 마음이라는 걸 전하는데 드는 공과 시간이 편리란 이름으로 단축되고, 애쓰지 않아도 겉으로 보기엔 충분하고 온전하게 전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아졌는지 모른다.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비롯한 SNS와 선물하기 시스템은 편리함을 제공했고, 관계를 위한 애씀을 더는데 기여했다고 하면 좀, 많이, 기만일까?
기만일 수도 있다. 되려 덕분에 더 넓은 폭의 사람을 챙길 수 있게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아함의 정도를 연락의 빈도나 말투 등으로 확인하고, 생일날 카카오톡 기프티콘으로 선물을 보내는지로 가까움의 정도를 파악하는 마음이 어쩌면 사랑받고 싶은 인간 본연의 니즈인진 몰라도, 정작 그것을 물밀듯 행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썩 멋지거나 기특하지 않다. 유지하고픈 간소한 바람조차 들지 않는 후-진 모습일 뿐.
물론 빠르고, 민첩하게 전달해야 하는 마음들도 있을 것이다. 혼자 애타는 마음으로 오랜 시간 보내며 소설 한 편을 뚝딱 짓는 일 보단, 원활한 소통을 통해 오해하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게 필요할 때도 있으니까. 모든 것에 장단이 존재한다는 걸 알지만, 소비조차 쉬워진 요즘의 사랑법은 아무래도 맘에 걸리는 99년생 MZ… (나… MZ에서 빼주세요)
하지만 그렇기에 되려 잘 전달되는 마음도 있다. 꾹꾹 눌러쓴 손편지나, 직접 만들어서 나눠주는 빵이나, 어딘가를 지나가다가 생각나서 사 온 선물이나. 나는 평소 손 편지를 참 좋아하는데, 손 편지를 쓰는 그 과정이 상상돼서 좋아하곤 한다. 생각보다 사람은 진심을 전하는데 미숙하지만, 그 날 것의 마음과 문장이 마음을 더 움직이게 한다고도 생각하기에. 이 아날로그적 감성이 내 DNA에 심겨있다는 것.. 누구의 잘못도 아닐 테다..
사실 여전히 사랑에 정답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뒤늦게 알고 보니, 스쳐 지나고 보니 ‘그것은… 사랑이었다…’하는 순간들도 있었을 테고, 어쩌면 앞으로도 있겠지만. 결론을 내려고 하면 어이없을 만큼 간단해진다. 그저 현재의 마음에 충실할 것. 전하고 싶은 마음은 잘 전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늘 그렇게도 간단하고 당연한 것들이 가장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