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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May 11. 2020

<레이니 데이 인 뉴욕>: 낭만에 흠뻑 젖어들다.

봄비, 재즈, 로맨스를 좋아한다면

 

 내 인생 영화 중 하나가 바로 우디 앨런의 <카페 소사이어티>이다. 수많은 구설수로 인해 주저되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그의 영화는 매력적이다.

 아련한 새벽녘의 배경에서 주인공 ‘바비(제시 아이젠버그)’와 ‘보니(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대화를 나누던 마지막 장면과 현실과 꿈을 오가는 듯한 느낌이 가득했던 이 영화는 마치 한 여름 밤의 꿈같았다. 특히 마지막 대사인 “우리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는 긴 여운처럼 한 동안 내 마음 속에 머물렀다.


카페 소사이어티의 마지막 장면


  <카페 소사이어티>를 보고 우디 앨런이라는 감독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과거에 대한 아련함,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향수를 제대로 담아낼 줄 아는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절이 좋지 않아 <작은 아씨들> 이후로 영화를 한동안 못 보았는데, 우디 앨런의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영화관에 갔다. 영화 제목처럼 그 날은 갑자기 비가 왔고, <작은 아씨들>에 나왔던 배우 ‘티모시 샬라메’가 주인공으로 나와서 더 반가웠다.


작은 아씨들의 한 장면

 여담이지만 나는 티모시 샬라메가 나온 <미스 스티븐슨>, <작은 아씨들>을 정말 재미있게 봤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많은 이들이 꼽는 인생 영화이니, 그가 영화를 고르는 안목이 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올해 개봉할 예정인 <프렌치 디스패치>에도 그가 나올 예정인데, 감독인 웨스 앤더슨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최고의 영상미로 영화 예술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감독 중 한 명인데, 그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문라이즈 킹덤>으로 유명하다. <프렌치 디스패치>의 공식 트레일러 영상을 보면서 개봉일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번 작품도 영상미가 엄청날 것 같다.


  

 <레이니 데이 인 뉴욕>, 비에 젖은 뉴욕이라니 제목만으로도 낭만이 가득하다. 뉴욕은 우디 앨런의 고장이다. 뉴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그려내는 뉴욕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헐리웃의 핫한 스타들(티모시 샬라메, 엘르 패닝, 셀레나 고메즈)을 전면에 내세워 세련되고 촉촉한 뉴욕의 감성을 그려낸다.


  이야기의 시작은 뉴욕 생활에 실증을 느껴 타지에서 대학 생활 중인 개츠비(티모시 샬라메)가 그의 사랑하는 여자친구 애슐리(엘르 패닝)를 따라 뉴욕으로의 여행을 계획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애리조나 출신인 애슐리는 은행을 여러 채 소유하고 있는 부잣집 딸로, 영화 예술을 사랑하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순진한 여대생으로 등장한다. 반면 뉴요커 개츠비는 학업에는 큰 관심이 없다. 반항적인 느낌이 가득해 보이지만 애슐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는 도박으로 용돈을 벌고, 우아한 클래식보다는 재즈를 사랑한다.



  서로 다르지만, 서로를 사랑하는 개츠비와 애슐리는 한껏 기대를 품고 뉴욕으로 향한다. 개츠비는 애슐리를 위해 뉴욕의 핫플레이스들을 중심으로 일정을 짜고, 센트럴 파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호텔을 예약해 두었다. 하지만 애슐리의 머릿속엔 자신이 인터뷰해야 하는 유명 영화 감독 롤란 폴라드만 가득하다. 어떻게 하면 이 유명한 영화 감독과의 인터뷰를 잘 해낼 수 있을지만 고민하는 그녀에게 개츠비는 일정을 읊어주지만, 애슐리는 그런 개츠비의 이야기를 흘려듣기만 한다.


 뉴욕에 도착한 뒤, 애슐리는 롤란 폴라드와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유명 각본가인 테드(주드 로), 유명 배우인 프란시스코 베가를 우연히 만나면서 개츠비와의 약속을 모두 어기고 만다. 유명한 감독과 각본가, 배우를 만나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개츠비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기 시작하는 애슐리. 그녀의 젊고 아름다움을 탐닉하는 감독과 각본가, 배우의 수작에 너무 쉽게 넘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나중엔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개츠비를 내버려두고 특종만 찾아 헤매는 그녀도 마냥 순진하다기보다는 자기 나름대로의 욕망을 좇고 있었던 거니까 말이다. 정신적, 감정적, 육체적으로 자신을 필요로 하는 그들에게 결국 애슐리는 특별한 존재이고 싶어했을 뿐이었다.

 특종을 좇느라 연락도 안 되는 애슐리에 의해 개츠비는 계획에 없던 일정들을 하나씩 추가하게 된다.

 혼자 뉴욕의 거리를 거닐던 개츠비는 옛 여자친구의 동생인 챈(셀레나 고메즈)을 만나 우연히 영화를 찍는다. 챈은 자신과 키스신을 찍는 동안 계속 애슐리에 대한 생각에만 빠져있는 개츠비에게 짜증을 내고 헤어지는데, 이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내린 비로 인해 개츠비는 챈을 다시 만나 그녀의 집에 가게 되고, 함께 미술관을 돌아보며, 서로를 알아간다. 그저 옛 여자친구의 예쁜 동생 정도였던 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멋있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챈과 개츠비의 대화는 톡톡 튕기면서도 낭만적이었다. 다시 이 영화를 본다면 이들의 대화에 조금 더 집중해 보고 싶다. 특히 개츠비와 챈이 나누었던 대화에 이어지는 영화의 마지막 신은 정말 최고였다.


 ‘비 내리는 날, 저녁 여섯 시, 시계 탑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한 남자. 그리고 … (결말은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쉿!)’


 이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는 개츠비가 자신의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개츠비가 교양있는 체 하고 가식적인 사람들이 가득한 뉴욕에서의 삶을 싫어했던 데에는 엄마의 엉향이 컸다. 상류층의 삶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상류 사회에 맞는 삶을 살도록 강요했던 그의 엄마. 그녀는 애슐리를 대신해 창녀를 데려온 아들에게 네가 그런 반항적인 삶을 살게된 데에는 자신의 영향이 큰 것 같다며 숨겨왔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개츠비는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이 부분 역시 스포가 될 수 있어서 자세한 이야기는 아낀다.) 이 부분이 개츠비가 회색의 뉴욕을 선택하게 되는 장면과 연결되는 결정적인 장면이 아니었을까.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개츠비와 애슐리의 대화가 얼마나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는지 실감하게 된다. 우디 앨런의 영화엔 대사가 많은 편인데, 그 대사 안에는 인간과 인생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담겨있다.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대화들은 그의 영화가 가진 매력 중 하나다.


  비가 내려 더 아름다운 뉴욕의 배경과 핫한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중간 중간 곁들여지는 아름다운 재즈와 대화들. 이 영화를 보면서 정말 뉴욕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원래도 올해 미국에 여행가고 싶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뉴요커의 감성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해졌다. 날카로우면서도 유머러스하고, 씁쓸하면서도 낭만적이었던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역시 우디 앨런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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