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어
안녕, 잘 지내?
언젠가 한번은 너에게 글을 쓰고 싶었어. 어떤 말을 꺼내야할지 몰라 계속 마음에 묻어만 두고 있었는데 벌써 이렇게나 시간이 많이 흘러버렸네. 내가 너에게 괜찮냐고, 보고싶다고 마지막으로 연락한지도 이제 6년이나 지났으니까 말이야. 가끔씩 칠판 앞에서 뜬금없이, 왈칵, 하고 네 생각이 날 때가 있는데, 그런 마음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어서 다시 눌러 담아버리곤 해.
요즘 너랑 같이 공부했던 도립 도서관 앞을 거쳐 산책을 하는데, 그 앞에 세워진 자전거들을 볼 때면 네 생각이 많이 나. 우리가 임용 시험을 준비할 때 일주일에 두 번은 같이 공부했잖아. 한 번은 내가 너희 집 앞 도서관으로 가고, 한 번은 네가 이쪽으로 와서. 넌 매번 자전거를 타고 와서, 네가 자전거 자물쇠를 푸는 동안 그 옆에서 잡다한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이번에 임용 티오가 너무 적어서 걱정이라는 어두운 이야기부터, 이번에 붙으면 뭘 할까, 발령은 어디로 나면 좋을까, 하는 막연하고 들뜬 이야기까지. 수능을 코앞에 둔 고3처럼 걱정과 들뜸이 교차되는 이야기를 늘어놨던 기억이 나.
나는 아침 잠이 많고, 많이 게을러서 우리 집 앞 도서관이라도 열시나 열한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겨우 도착했는데, 넌 우리 집 앞으로 올 때에도 늘 나보다 몇 시간씩 일찍 와서 날 긴장하게 했잖아. 그때는 내가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서 나보다 훨씬 앞서 있는 너를 보며 쓸데없이 걱정만 키웠었는데, 그때 네가 내 앞자리에 앉아있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새벽마다 수영을 하고, 도시락에는 늘 신선한 야채를 정갈하게 담아 다니던 밝고 건강했던 너. 대학 다닐 때에는 친하게 지내지 않았지만,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의기투합해서 같이 열심히 공부했었지. 그때 솔직히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공부량이 월등히 앞서던 널 보면서 주눅도 많이 들었어. 그런데 그런 내 마음이 더 못나 보이게 너는 시험 전날 해맑게 웃으면서 ‘우리 꼭 같이 합격하자’,는 포스트잇을 내 책에 떡하니 붙여주었지. 그리고 너의 응원대로, 우리는 그 길고 숨막히던 1차, 2차, 3차 시험을 함께 통과해 같은 해에 교사가 됐어. 지금 말하니까 굉장히 빠르게 그 시절이 지나간 것 같지만, 중간에 점수도 알려주지 않고, 붙을지 떨어질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계속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했던 그 때에는 정말 매일 밤이 두려웠어. 친구들은 다 붙는데, 나만 떨어지면 어쩌지. 나만 떨어졌을 때 어떤 표정으로 축하해줘야할까. 별생각이 다 들었지. 다음 단계 준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답은 맞추지 말자고 해놓고, 어쩌다가 답을 맞추게 되면, 온종일 안 좋은 생각만 들었던 그때가 아직도 생각나. 그래서 모두가 들떠있던 크리스마스 날에도 혼자 궁상맞게 울면서 수업 실연을 준비했잖아.
교사가 되면 자주 만날 줄 알았는데, 우리는 각자 배정받은 학교에 적응하느라 한동안 못 봤지. 우리의 수험생활이 너무 고되고 힘들었던 탓도 있었고, 우리가 속이야기나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털어놓으며 지냈던 건 아니었으니. 가끔 한 번씩 우연히 마주치기는 했지만, 그리고 언제 한번 보자는 말을 주고받았지만, 결국 그 한번을 보지는 못했네.
마지막으로 너에게 연락한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지. 그날은 나도 반 애들을 데리고 수련회를 가는 길이었어. 그런데 버스 텔레비전에 너희 학교가 나오더라고. 처음엔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탑승한 배가 기울어져 가라앉기 시작했는데 전원이 다 구조되었다고 나왔어. 그래서 걱정하는 마음 반, 안도하는 마음 반으로 너에게 괜찮냐고 물어봤지.
그런데 이상하게, 한참 뒤에 뉴스를 다시 보니까,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뜨더라고.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게다가 수영을 몇 년이나 배웠던 네가 배안에 갇혀 구출되지 못했다는 이야기였어. 그리고 아침에 보낸 내 물음에 넌 끝내 답이 없었어.
뉴스엔 칠판 앞에서 환하게 웃는 네 사진이 나오고, 구명조끼도 입지 못한 채로, 마지막까지 학생들을 구하다가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어.
그리고 그 날로부터 수십일이 지나 장례식장에서 너희 아버지를 뵙는데, 나를 알아보시곤 울컥하시더라고. 아무 말 없으셨지만, 아버지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셨을지 알 것 같아서 더 속상했어.
너랑 누구보다 자주 보고, 이야기 나누었던 일 년이 있었는데, 나는 왜 그 일 년의 소중함을 이렇게 뒤늦게 알아챈 걸까. 하루의 시간을 못 낼 만큼 바빴던 것도 아니었으면서, 먼저 만나자고 말할 걸. 그리고 네가 아니었다면 내가 그 시험을 감히 통과할 수 있었겠냐고, 고마웠다고 진작 말할 걸. 그때나 지금이나 게으른 나는 이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너에게 글을 써.
가끔 학교에서 고민되는 상황이 생길 때, 너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해. 조용하고 소외되는 아이들에게도 꼭 작은 역할을 주고 싶다고 말했던 너처럼, 나도 그런 교사가 되고 싶어.
너무 늦은 편지지만, 이해해줘. 그리고 꼭 편히 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