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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길숙 Mar 20. 2024

춘분(春分), 인동차(忍冬茶) 한잔

- 정지용 시집 백록담(白鹿潭) 기민근대시선 34p

지용 선생님! 

계신 곳은 어떠신가요? 편안하신가요?  

여긴요 봄은 왔는데 아직 진짜 봄은 아니랍니다.      

제가 혁명 중이거든요 


세상을 살다 보면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지요      


셰익스피어는 

이 중에 무엇을 기억하느냐에 따라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고, 

불행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했는데요      

저는 슬픈 일들만 기억하렵니다. 

우리의 봄이 오기 전까지는요 

슬픈 일을 잊으면 바보거든요      


오늘이 춘분(春分),  

지용 선생님께서 삼동(三冬) 내내 우려내신 

인동차(忍冬茶) 한잔에 

저의 오장육부를 담그렵니다.     


천지가 흔들리는 

3월의 눈바람을 뚫고 

진짜 봄이 오기까지는 

온몸 온 마음을 슬픔에 담그렵니다.  


인동차(忍冬茶) - 정지용      


노주인(老主人)의 장벽(腸壁)에     

무시(無時)로 인동(忍冬) 삶긴 물이 내린다      


자작나무 덩그럭 불이     

도로 피어 붉고      


구석에 그늘 지어     

무가 순 돋아 파릇하고      


흙냄새 훈훈히 김도 사리다가     

바깥 풍설(風雪) 소리에 잠착하다      


산중(山中)에 책력(冊曆)도 없이     

삼동(三冬)이 하이얗다


덩그럭 불 : 잉그럭 불, 장작의 다 타지 않은 덩어리에 붙은 불

잠착(潛着)하다 : 어떤 한 가지 일에만 마음을 골돌히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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