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시 서울 지하철 9호선 급행열차 안은 비교적 한산했다. 오전 출근 시간대 숨도 못 쉴 만큼 사람에 치여서인지 드문 드문 빈자리가 상대적으로 더 넓게 느껴졌다. 모두 공평하게 앉아서 갈 수 있는 이 시간에 한 남자가 출입문쪽 기둥에 위태롭게 기대어 서 있었다. 서른 후반이나 마흔 초반쯤 되었을까? 후줄근한 운동복 호주머니 안에 손을 넣었다 빼었다 하다가 왼손을 꺼내 미간을 꽤 오래 깊게 누른다. 얼핏 비치는 눈물과 눈물을 다시 거두려는 몸부림이 애달팠다. 지하철이 곡선 구간을 지나며 갑자기 흔들렸다. 양발을 꼬고 섰던 남자가 하마터면 넘어질뻔했다. 앞으로 꼬꾸라질까 봐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남자를 안 보려고 시선을 돌렸는데도 다 보였다. 남자는 재빨리 꼬았던 발을 풀어 중심을 잡았다. 아! 낮술을 마신 건 아니구나. 맨 정신에 백주대낮 지하철 안에서 티 나게 온몸으로 울음을 거두려 애쓰는 까닭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 남자의 모습에서 내 아들이 떠올랐다. 비슷한 또래이니 비슷한 아픔이 없으리란 법 없다. 자영업을 하면서 메르스와 코로나 철퇴를 맞고 뼈도 못 추리고 기어 나온 아들이 자정이 한참 넘은 시간에 찾아와 "배고파 밥 좀 줘" 했던 날. 아들은 된장찌개를 퍼올리다 숟가락을 허공에 둔 채 꺼이꺼이 통곡했다. '울어라 다 쏟아라 그리고 넘어진 그 자리를 짚고 일어서라' 마음 속에 있는 말 꺼내주는 대신 큰 수건을 손에 쥐어줬다. 어쩌면 그 남자도 내 아들과 같이 순식간에 처참한 지경에 훅! 떠밀렸을지도 모른다. 내 아들처럼 아직 철 모른 어린 두 딸이 아비의 손을 무작정 끌고 키즈카페를 가자거나 겨울딸기를 사달라고 떼를 쓸지도 모른다. 어린 자식들이 보챌 때 무일푼의 아버지 눈에서는 보이지 않은 피눈물이 흐른다는 걸 나는 안다. 오장육부에서 간 쓸개가 모두 빠져나가는 것도 나는 안다.
그 남자는 어쩌면 자신의 오늘이 이렇게 되라는 걸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으리라. 절벽이 코 앞에 있다는 것도 짐작조차 못했을 것이리라. 남자가 가양역에서 내렸다. 한걸음 내딛는 발길이 천근만근 무겁다. 비통한 억울함이 등에 다 뭉쳤는지 등을 곧추 세우지 못했다. 그 남자는 계단을 올랐고 지하철은 김포공항역을 향해 출발했다. 잠시 내 맘에 머물렀다가 사라진 남자여. 내 아들처럼 어린 남자여. 어디서든 누구 앞에서든 슬픔 감추지 말고 '울어라 다 쏟아라 그리고 넘어진 그 자리를 짚고 일어서라. 소금밭을 어루만지는 바람 수건 너 다 줄 테니 실컷 울고 부디 잘 살아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