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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Zhu Feb 02. 2024

우리는 모두 경계에 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리뷰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겠다.’

점심식사 후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무심히 뱉었던 혼잣말이었다. 오래전이고 특별한 사건이 있던 날이 아닌데 저 말이 발화된 그 순간만 캡처한 것처럼 저장되어 있다. 새벽에 출근해서 자정 가까워야 귀가하는, ‘회사, 집, 회사, 집, 회사......’만 하던 때였다.


그보다 더 거슬러, 박사과정 초년 시절 스스로 교내 정신상담센터를 찾은 기억도 있다. 어찌어찌 석사는 마쳤고 나름의 결의를 다져 진학은 했는데 실패를 반복하면서 실험 방향을 잃었다. 한계가 분명해 보이니 ‘어떻게 해도 안 된다’라고 생각했고 무기력의 시작이었다. 당시 온갖 검사를 다 받았는데 직업적성검사였나, “요리를 이렇게 싫어하는데 어떻게 화학을 전공하세요?”라며 놀라던 선생님의 한마디가 의외로 돌파구가 되었다. 물질을 섞고 빼는 걸 최소화한 쪽으로 연구주제를 틀었다.


마음에 빨간불이 켜졌던 기억들이 떠오른 건 최근 본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경계에 있다’는 끝맺음 메시지에 공감했다. 약물 치료 등, 전문적인 정신과 진료로 이어진 건 아니지만 그때 나는 아픈 쪽으로 기운 경계였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지금도 정상이기보다 그저 경계구역 내에서 괜찮은 방향에 좀 더 가까울 뿐이다. 이렇게 메시지가 ‘나’에게 바로 적용될 수 있는 건 마지막 회에 오기까지 회차별 개개 에피소드와 주인공 정다은(박보영)의 이야기를 허투루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환자들의 면면이 별로 유별나지 않아 시청자와 거리를 좁힌다. 현대사회에 흔한 공시생, 워킹맘, 등이다. 다은은 무려 정신병동 간호사였는데 우울이 왔다. 그런데 발병으로 넘어가는 어떤 지점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여 납득이 된다. 치료하면서 경계를 오가는 것도 잘 보여준다. 망상이 치료되어 퇴원한 김서완(노재원)은 옥상에서 다시 망상에 사로잡히며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 또 환자들이 모두 좋은 결과를 맞는 것은 아닌데 그럼에도 희망적인 시각은 놓지 않는다. 다은도 자살 시도를 했지만 치료를 통해 회복으로 돌아선다.


다양한 정신질환에 대해 관찰자 시점이 아닌 전지적 환자 시점으로 시각화해 준 것은 이해를 돕는다. 유찬(장동윤)은 공황을 겪을 때 서서히 물이 차올라 턱 끝까지 닿고 결국 숨을 쉴 수가 없다. 우울증인 다은은 앞으로 발을 내딛으려 하지만 오히려 바닥아래로 삼켜졌다. 그런 사람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한다면, 숟가락을 들라고 하는 것도 폭력이라는 황여환(장율)의 말에 바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전문가들의 태도를 엿볼 수 있었던 것도 도움이 됐다. 다은의 정신병동 입원 이력을 알게 됐을 때 의사, 간호사 동료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점에서 환자 보호자들과 차별된다. 또 여환이 민들레(이이담)에게 ‘엄마를 버려요’라고 처방하는 장면에서 ‘의사는 다르구나!’라고 감탄했었다.


본 드라마에 거슬리는 점도 있긴 했다. 두 커플의 로맨스가 그랬다. 먼저 다은과 동고윤(연우진), 서로를 좋아하게 되는 개연성이 잘 안 보였다. 둘의 멜로가 주된 서사가 아닌 작품이라 세세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굳이 필요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여환과 들레는 마음의 병을 다루는 드라마에서 다룰 만한 커플이긴 했다. 들레가 인지하지 못하는 점을 여환이 일깨우는 지점이 많다. 다만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아니니 문제적이다. 들레가 여러 번 거절함에도 집요한 여환의 구애는 그 의중을 알아도 폭력적으로 보였다.


오점이 없지 않지만 앞서 말했듯 상당히 감정이 동하는, 최근 봤던 드라마 중에서 손에 꼽게 좋은 작품이었다. 실제와 싱크로율이 얼마일지 잘 모르지만 정신과가 다분히 폐쇄적인데 대중매체를 통해 이만큼 내보이고 공감대를 만드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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