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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나 Pina Nov 29. 2022

어쩌다 내가 그들이 되어보는 덕질


 곧 12월이 될 테고 그것은 곧 내가 커버댄스를 배운지 만 1년을 채웠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많은 운동 중에서도 댄스인지, 그리고 그 댄스의 방향을 하필 케이팝 커버댄스로 틀었는지는 이유가 있다.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이 결단의 시작은 팬심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가 무섭게 퍼져나가 바깥출입을 자제하던 즈음 나는 뜻하지 않게 어떤 그룹의 팬이 되고 말았다. 덕질에 1년 반을 넘게 매진하던 작년 이맘때쯤의 나는, 콘서트 티켓팅에 허무하게 실패하고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한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다 결국 내가 그들이 되어보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 즈음 내가 몰두한 일은 집에 무언가를 들이지 않고 덕질할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발매된 음원을 듣거나 뮤비, 음방을 챙겨보는 것에서 머무르지는 않았다. 마음은 돈으로 보여야 하니까, 온라인 콘서트를 비롯한 영상들을 결제해서 보았고 플랫폼의 유료 소통을 구독했다. 이전보다 다양한 방법이 있었지만 날이 갈수록 체감한 점은 내 방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일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었다. 손에 잡히든 어떤 것이든 에너지와 비용을 쏟을 대상이 필요했다.


 점차 나는 덕질을 한다는 것이 필연적으로 내 공간을 관련된 물건들에 내줘야 한다는 뜻임을 깨닫게 되었다. 우선 소극적으로 앨범만 산다고 가정했을 때 내가 감당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다. 하나의 앨범이 나오면 최소 세 버전 이상은 나올 테고, 버전마다 원하는 멤버의 포카를 뽑을 확률은 멤버  만큼 불어난 확률로 적어진다. 포카 모으는 것은 애초에 포기하고 버전 별로 하나씩만 사더라도 내가 가진 책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잠식당할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공식 굿즈, 멤버의 화보가 담긴 매거진, 광고하는 옷, 일일이 열거하기도 복잡한 것들을 모두 끼고 사는 모습을 상상해 봤지만 물건을 들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절대 닿지 못할 경지가 확실해 보였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돌연 더 이상 앨범을 모으지 않겠다 선언해버리는 순간 지금까지 모았던 것들은 자동적으로 정리해야 할 폐기물이 되는데, 정성스레 만들어진 결과물이 한낱 부피 큰 종이와 플라스틱 쓰레기가 되어 소각장을 떠돌 운명이라는 것이다. 고이 모셔둘 것들을 중복으로 사야 하는 구조. 아무리 소속사에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작성하고, 프레젠테이션을 한들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였다. 결국 몇 가지 버전이 나오든 두 장씩만 산다는 규칙을 정하기에 이르렀지만 탄소 배출에 일조했다는 죄책감을 지우기는 힘들다.


 기꺼이 쓰고 버릴 것의 소비, 최대한 물건을 들이지 않는 패턴을 이어가던 와중 전해진 반가운 콘서트 소식. 돈과 시간을 들이면서도 손에 쥐어지는 것은 없는 만족스러운 기회였다. 함성이 허락되지 않는 콘서트나마 기대에 부풀었던 나는 티켓팅에 실패하고는 크게 낙담하고 말았다. 앞으로 또 언제 열릴지, 열려도 내 자리가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무엇이든 좌절감을 잊기 위해 반복해 보던 댄스 영상에 더욱 집중했는데 문득, 앞으로의 할 일을 찾아냈다. 



 레슨 선생님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한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덕분에 댄스를 배우려는 사람도, 가르쳐주는 사람도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나는 선생님께 원하는 곡의 1절만 안무 커버를 부탁해 조금씩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덕질로 쓸 수 있는 정도의 비용을 지출하는 정도를 레슨에 쓰기 시작했는데 그 덕분인지 굿즈에 대한 욕심까지 사라진 것 같다. 비록 얼마 되지 않을, 소속사로 가야 할 내 돈은 더욱 줄었을테지만 분명 미미하기 그지없을 테니 그들도 이해해 줄 거라 믿는 중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연말, 연습실을 드나든 지도 1년이 되었다. 매번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며 자책에 스트레스도 많았지만, '내가 무슨 데뷔할 것도 아닌데!'라며 마음을 추스르기를 반복하다 맞게 된 기념할 만한 순간.



 또한 올해도 변함없이 시그(시즌 그리팅 굿즈)가 나왔다. 시그의 구성을 보는 순간 나는 이것을 아무런 저항 없이 사게 될 거라는 걸 알았다. 1년에 한 번 나오는 것이고, 연말 특유의 분위기도 함께 누려야 하고, 어차피 나는 다이어리를 사지 않는 사람이니 당연히 사도 될 굿즈 목록에 포함시켜 놓았던 것. 지금껏 사지 않기를 노력해왔으니 시그만큼은 예외로 두고 싶었다. 그러니까 내년에도 어떤 굿즈든 모셔두지 않고 제 역할을 다하게끔 쓰자,를 목표로 나는 변함없이 연습실 문을 열어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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