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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나 Pina May 12. 2023

오늘의 투당근


 따릉이를 타는 퇴근길, 중랑천을 달리다 송정제방길로 빠지다보면 코너 시작점에서 반사경을 하나 볼 수 있다. 나는 안장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기 전 반사경을 보면서 얼굴과 옷에 붙은 날벌레를 털어버리고 옷차림을 종종 사진으로 찍어두고 있다. 오늘의 출근룩에 대한 인증이지만 실은 더 자세히는 그날 입은 옷에 당근이나 중고로 산 옷이 한 개인지 두 개인지 기록해두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이전에도 쓴 적이 있듯, 나는 가급적 새옷을 사지 않는 방침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 지난 겨울에 새 코트와 니트 하나씩을 산 것 외에는, 또 다시 새 옷 사지를 않기 5개월 째 지키고 있다. 딱히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하다보니 쇼핑을 귀찮아하는 나에게 잘 맞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한편으로는 꽤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 맘 먹고 샀던 새 옷의 만족도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5개월간 옷이 아무것도 안 생기지는 않았다. 그 동안 당근으로 산 봄 아우터, 볼캡, 얻어 입은 연습용 티셔츠 같은 옷이 생겼는데 모셔두지 않고 더 열심히 입게 되는 것이 신기하다. 동료가 유독 잘 어울린다고 칭찬하거나 디테일이 독특하다 할 때 사실은 당근마켓 사만원, 당근마켓 만칠천원이라고 대답하는 재미도 있다. 싸게 산 옷을 잘 입고다니는 것으로 괜히 이득을 본 느낌에, 주변 사람들과 일상에 대해 나눌 때 가벼운 이야기 주제가 되어주기도 했다.


저 날의 모자와 조거팬츠로 투당근


 중고로 옷을 사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필요한 아이템이 생기면 관심목록으로 후보를 추렸다가, 구매한 뒤, 그것을 이리저리 매치해 입어보는 재미. 산 옷들은 택이 그대로 달렸거나 한눈에 봐도 착용 횟수가 적은 옷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런 새것과 다름 없는 옷이 결국 나에게 보내져 쓰임을 다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기분을 좋아지게 했다. 한 가지 단점이라면 사람이 거지가 된 것이 아닐까 가끔 울적해지기도 한다는 정도. 나의 재정 상태는 가격과 상관없이 시즌별로 옷을 턱턱 살 수 없는 상태가 맞기 때문에 반박할 구실도 떠오르지 않지만. 그것 빼고는 모두 좋다.


 몇 번의 거래를 통해 쌓은 노하우도 있다. 당연한 소리 같지만, 중고로 옷을 살 때는 최대한 안전한 스타일의 노선을 유지했다. 사진으로만 본 옷으로 괜히 새로운 시도를 해봤다가는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돈 주고 떠맡은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작은 평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브랜드, 혹은 피팅해 본 경험이 많은 브랜드 위주 후보를 찾은 다음, 내가 갖고 있는 옷과 어떻게 입으면 될 지 적어도 3가지 착장이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옷을 골랐다. 오래입지 못할 퀄리티, 한 눈에 봐도 세탁하면 금세 망가질 옷들을 피했다. SPA, 생소하지만 패스트 패션 브랜드로 짐작되는 옷을 제외하는 것이 약간의 안전장치가 되기도. 저렴하고 쉽게 산 옷일 수록 쉽게 잊혀졌다.


 나에겐 여전히 옷차림에 신경써야 할 모임이나 주변인이 없다.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고,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그러니 굳이 헌옷을 사서 입고 있다고 광고하지 않는 이상 다른 눈으로 나를 보거나 나의 옷이 새 옷인지 아닌 지 검증할 일도 없다. 가끔 슬퍼지는 것쯤은 한 순간 곧 다른 기분에 휩쓸리면 그만일 뿐. 무심하게 투당근을 달성하고 집으로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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