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끝났다. 이렇게 확실하게 끝난 상황은 별다른 고민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유독 여름을 보내는 게 아쉬운 이유는 뭘까. 난 여름을 싫어하지만, 어떤 계절을 보내는 일은 매번 마음이 복잡하다. 그래도 이내 할 일을 해내야지 싶었다. 새로운 계절을 준비하는 일들이야 사실 별다를 게 없지만 적당한 타이밍에 바로 해치워야 한다는 점이 내겐 가장 중요하다. 그러니까 나는 지난 연휴 중 이틀에 걸쳐 내가 가진 옷들을 정리하는 등의 준비들을 했는데, 흘러간 시간을 체감하는 만큼 함께 변해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도 의미있었다.
이번 정리에서 가장 크게 체감한 것은 옷을 입는 스타일이 더욱 단순해지고 편한 쪽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옷장을 열어 지난여름 입지 않은 옷, 잘 입었던 옷들을 꺼내 살펴보니 느꼈던 것. 게다가 당근으로 산 연습복이 꽤 생겼고 이걸 평소에도 꽤나 많이 입었다는 것도 알았다. 자연스럽게 내년에 입을 일이 없는 옷을 버리는 데에도 과감해졌다. 내년엔 정말 입을 옷이 없겠다 싶어 벌써부터 불안해졌다.
냉장고를 확인해 보니 음식 배달이나 포장 대신 밀키트로 끼니를 자주 해결했다는 것도 알았다. 물가가 많이 오른 탓이 컸다. 요즘의 나는 직접 요리를 하기 보다 밀키트를 끓여 추가로 식재료를 넣고, 늘어난 양만큼 나눠 먹는 일이 많다. 시리얼도 참 자주 먹었는데 이번 우유 가격이 오른 일이 내게는 너무 큰 타격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난 이번 여름 새로 산 책이 하나도 없었다. 새삼 안타까운 포인트. 대신 도서관에 자주 다녔던 걸까, 기억을 더듬어 보니 책을 빌려온 일도 한 번 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이번 여름의 나는 티빙과 디즈니플러스와 유튜브와 함께했고 지면 속 텍스트는 멀리했구나, 정리할 책이 없다는 사실이 나에 대해 이렇게 잘 말해줄 줄은 몰랐다. 대신 선물 받은 물건, 약간의 굿즈와 앨범으로 책상은 한층 어수선해졌다. 서랍장은 말할 필요도 없고. 덜어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틀에 걸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더 쓰기보다는 요약해서 자신에게 집중해 소소한 영감을 얻는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나라는 사람은 좋은 쪽보다는 나쁜 쪽으로 변하기가 쉽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낀다. 잠깐 정신을 놓고 지내다 보면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떠내려가 구해내지도 못할 상황으로 전락하고 말겠지! 그러니 한동안 연휴는 없다는 현실을 의연하게 받아들여 루틴을 지키는 일에 집중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