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를 시작했다.
사실 시작한 지 1년이 된 요가이지만 그간은 하고 있다고 하기 민망한 수준인지라 어디 말할 수 도 없었다. 그런데 새삼 요가를 시작했다 말하는 까닭은 이제야 요가를 조금이나마 할 수 있게 되어서다.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란 걸 느낀 1년이었다. 원체 몸이 뻣뻣하기도 했지만 요가에는 참 난해한 동작들이 많았다. 어린 나였다면 할 수 있었을까? 어느 날 옆에서 낑낑대던 중학생을 보고선 그 생각도 접었다.
몸의 어디를, 어떻게 움직이라는 건지 말로 설명하기에도 참 어려운 요가지만 그런 요가를 하는 게 어쩐지 즐거웠다. 그래서 일 년을 낑낑대며 ‘그냥‘ 했다. 여기서 '그냥'이란 되든 안 되는 1시간의 수업을 꼬박 채웠다는 말이다. 그렇게 1년을 하고 보니 이제는 어찌 저찌 땜질식이라도 동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부족한 실력이지만 요가 수업을 이제 막 시작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지금은 '요기(yogi)' 발톱의 때 정도는 된 수준이랄까?
처음 요가를 접했던 3개월은 주위를 둘러보기에 바빴었다.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만 듣고는 어떤 동작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다음 3개월은 동작은 눈에 익었지만 몸이 따라주질 않아 힘든 시간이었다. 그렇게 6개월을 지났을 무렵 조금씩 마음엔 오기가 생겨났다. 가지껏 용을 써가며 힘주어 동작을 취하려고도 해보았다. 하지만 이후 3개월간 느끼기로 단 한 치도 나아지는 것 같지가 않았다. 종종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결재 후 비어버린 통장을 보며 다시금 용기가 났다. '그래, 까짓 거 1년은 채워보자' 마지막 3개월은 반 포기의 심정으로 '그냥'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조금씩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에 손이 등을 돌아 가부좌한 발목에 닿고 있었다. 그리고 엎드려 엉덩이를 치켜올리는 '다운독' 자세에서 분명 평소라면 떠있었어야 할 뒤꿈치가 바닥에 떡하니 붙는 것이 아닌가. 안되던 동작들이 하나둘씩 되어 가는 지금의 상황이 마냥 기쁘다고 하기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어 그냥 좋았다고 할까? 오히려 안도감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나도, 요가를 할 수 있구나' 하는 안도감. 그동안 말은 못 했지만 혹여 1년을 낭비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애초에 요가를 할 수 있는 몸이 아니라서 괜한 헛수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마음 한구석을 메우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직장 생활할 때가 생각났다. 실수를 하고, 누군가로부터 꾸중을 듣고 나로 인해 누군가 피해를 보는 것 같은 상황들. '나는 어쩌면 이 직장이 맞지 않을 수 도 있겠다.'하고 생각하던 때였다. 내가 걸어온 길이 잘못된 것만 같고 지금까지의 노력이 다 헛수고로만 느껴지던 순간 나는 온전히 내 탓을 하며 자책했다. 왜 그랬을까? 그때 그렇게 하지 말 걸, 지금이라도 길을 바꿔야 하나? 조금씩 다가오는 압박감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오죽하면 금요일이 제일 싫었다. 금요일이 끝나는 순간 조금씩 월요일로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와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땐 차라리 월요일이 나았다. 일주일이 시작되었으니까. 그리고 다시 금요일까지 차차 줄어가는 타이머를 온몸으로 느끼는 일상. 지옥이었다.
어느 순간엔 일을 마치면 자연스럽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친구와 간단하게 한 잔, 힘들었으니까 동료와 한 잔, 어느 날은 부장님과의 회식 핑계는 갖가지였다. 술을 잘 마시는 편이 아니라 진탕 마시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그게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그 한 해가 끝나갈 때, 도망 아닌 도망을 가게 되었다. 사실, 도망은 아니었다. 정당한 이유는 있었고 나름의 책무를 다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도망이 맞았다. 그 홀가분함. 짐을 던져버리고 난 뒤의 나는 어느 때보다 개운했다.
이렇게 모든 걸 던지고 포기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다음엔 '그냥' 하는 법을 배웠다. 돌아보고, 익히고, 애쓰고, 포기하고 거기에 더해 '그럼에도 불구하고'까지. 최근 요가가 조금씩 늘면서 선생님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는데 꼭 수업 중 설명해주시는 동작과 관련된 그런 이야기들 뿐만이 아니라 마치고서 하시는 말씀이 차차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나는 이미 온전합니다.' 내 거친 숨소리에 가려져 들리지 않던 그 말들이 조금씩 들려왔다. 그랬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고 이미 온전한 사람이었다. '온전한 나', '괜찮은 나'이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는 것들'과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나누어 보며 나는 차근차근 '내가 해나갈 수 있는 것들'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금씩 여유가 났다. '그때 어쩔 수 없었다' 했던 것들도 '언젠간 할 수 있는 것들'이 되어 있었다. 다행이었다. 나는 그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난 그 순간 조금은 자랐다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