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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ep Oct 31. 2022

03. 엄마의 한 마디

 옛날부터 난 불만이 별로 없었다.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바뀌면 바뀐 대로 괜찮겠거니 했다. 그리고 지나고 보면 진짜 그랬다. 어쩌면 마음에 별로 담아두는 성격이 아니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떨 땐 오해를 받기도 했다. 왜 힘들 때 힘들다고 하지 않는지, 속마음은 뭔지 알고 싶은데 이야길 하지 않으니 서운하다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런데 잠시 잠깐의 힘듦이었을뿐 정말 속에 담아둔 이야기가 없어서 할 말이 없었을 뿐인데… 돌이켜 보니 조금 억울한 마음이 뒤늦게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성격 탓인지 오랜 친구가 많지는 않다. 관계에서 어느 정도 솔직한 감정을 나누는 게 좋다고들 하는데 막상 그런 이야기를 하자니 할 말도 딱히 없고 닭살이 돋는 것 같아 포기했다. 그렇다고 일상적인 상황에서 말이 없는 편은 또 아니라서 아내와의 대화는 끝도 없다. 어떨 땐 서로 할 말만 한다 싶을 때도 있을 만큼 참 말이 많다. 매일 붙어 함께 걷고, 운동하며 이 카페 저 카페로 다니면서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 가는지 모른다.

아내와의 대화는 항상 즐겁다

 어릴 때엔 이런 내 성격에 조금 고민도 했었다. 무언가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고 싶고 속에 담아둔 진솔한 이야기도 나누고 싶은데 막상 친구와 만나면 별다른 이야기가 떠오르질 않으니 기억력이 나쁜 건가 싶기도 했다. (지금 옆에 있는 아내는 그게 맞다고 하지만..) 그런데 또 직장을 다니고서는 그런 성격의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다. 웬만한 힘든 일은 그냥 쉽게 잊어버리다 보니 퇴근하고 몸이 피곤할지언정 정신적으로 괴로웠던 적은 많지 않았다. 물론, 정말 힘들 수밖에 없는 일이야 종종 있었지만 이런 성격이 결국 그런 일들도 이겨낼 수 있게 해 준 한 축이 돼주었던 것 같다.


 한 번은 어디서 이런 성격이 튀어나왔나 왔을까 하고 봤더니 우리 어머니와의 대화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어머니랑 대화하다 보면 종종 듣게 되는 말이 있는데 바로 ”지롤“이다. 특유의 경상도 말투로 웬만한 일은 ”지롤“ 이 말 한마디로 퉁쳐버리시는데 그걸 보는 순간 난 머리를 탁 쳤다. ‘여기구나!’  생각해보면 어머님은 오랫동안 여러 일터를 전전하시면서 한 번도 큰 불만을 이야기하신 적이 없었다. 늘, 그러려니 하시며 하루하루 일과를 묵묵히 하시는 편이었고 집에 오면 티브이를 보든 우리 이야기를 듣던 일터에서의 일과 관계없이 나름의 하루를 즐기셨다.


 어머니의 그런 성격은 천성적이기도 하지만 평소 믿으시는 종교의 탓도 있을 터였다. 어머니는 내가 어릴 적부터 성당을 정말 열심히 다니셨다. 나도 그런 어머니를 따라 자연스럽게 성당에 발을 들이게 되었는데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거나 ‘걱정하지 말라 ‘라는 성경 말씀들을 나는 꼭 성경을 읽지 않더라도 어머님의 삶 속에서 자연스레 익힐 수 있었다. 이러고 보면 어머니로부터 받는 게 꼭 사랑만은 아니란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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