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무탈하게
얼마 전 공원을 돌 때였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문장이 떠올랐다. ‘하루를 무탈하게’ 무심코 떠올린 문장이었는데 마음에 들었다. 지금껏 인생 모토라고 할 만한 거창한 무언가는 없었지만 나의 지금까지의 마음가짐과 비슷한 결처럼 느껴졌달까? 옛날부터 난 우리 집안에서 무사안일주의 대명사로 불렸다. 집안이라고 해봐야 네 식구일 뿐인 단촐한 집이었지만 그 네 명 중에서 걱정 없기는 분명 1등이었다.
그런 내가 아빠는 심히 걱정이 되셨나 보다. 나갔다 하면 깨져오는 무릎은 기본에 종종 옵션으로 달아오는 얼굴에 상처들까지… 이래라저래라 잔소리에 꾸중도 많이 하셨다. 아마, 지금의 나였더라도 어린 시절의 나를 보고는 한 소리 하지 않고는 못 배겼을 테다. 하지만 당시 그런 아빠의 잔소리에도 굴하지 않은 난, 꿋꿋이 대들며 말했다.
‘그럴 수 도 있지, 웬 쓸데없는 걱정이야.’
그런 나와 아빠는 물과 기름처럼 꽤 오랜 기간 사이가 좋지 못했다. 굳이 따지자면 아빠의 외사랑을 내가 밀어냈달까? 어린 시절 우리 동네 꼬마들은 엄마를 따라 ‘여탕’을 다녔다. 나도 그런 꼬마들 중 하나로, 당당히 ‘여탕’을 오가는 일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찾아왔다. 엄마의 손을 잡고 목욕탕 입장권을 사려는데 카운터를 보시던 이모님이 나를 훑어보시고는 한 소리 하셨다.
“저기요, 얘는 이제 여탕 안돼요.”
내 나이 8살 무렵 당연하게도 더는 ‘여탕’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때는 억울함 가득한 채로 그저, 아빠와 목욕탕을 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다. 지긋지긋한 잔소리. 아빠와 대화다운 대화도 없던 시절이니 2시간의 목욕은 어린 나에게 형벌과도 같았을 거다. 그래서 한동안 목욕탕에 가지 않겠다고 떼도 참 많이 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바나나 우유라는 달콤한 유혹에 나는 그곳에 다시 발을 들이고 말았다. 욕탕에 도착한 난, 당연스럽게도 유혹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전보다 지루하고 무료한 시간이라는 대가. 누나도 없고 엄마도 없는 심심한 목욕탕에서 나는 상상 속 수중 전투를 벌였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시던 아빠는 무심히 붉은 등 아래 몸을 뉘이셨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몸의 때가 적당히 불려질 쯤이면 아빠의 부름과 함께 나는 욕탕 옆 좌석에 누워 이태리타월 형(刑)을 겸허히 받아야만 했다.
이후, 그렇게 몇 년을 아빠와 욕탕에 다니다 보니 어느새 나도 붉은 등을 찾아 자연스럽게 눕기 시작했다. 그곳은 이제 우리 부자에게 있어 물리치료실이자 한의원이었다. 그렇게 조명의 손길을 받은 우리는 사이좋게 ‘나 한 번 아빠 한 번’ 때도 밀었다.
그러길 십수 년, 이제는 나도 어린 시절 아빠의 모습을 제법 닮아가고 있다.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던 나는 아빠보다 먼저 가족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어른이 되었다. ‘밥은? 단백질은 챙겨 드셨고?’. ‘단거 자꾸 드시면 안 된다니까’. 그저, 부모님의 하루하루가 무탈하길 바라며 하는 갖가지 잔소리들. 아빠도 같았을 테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조금은 서글퍼진다. 나아질 내일보다 점차 걱정해야 할 내일이 늘어가는 요즘. 간절히 바라본다. 부디, 모두의 하루가 늘 무탈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