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하나가 된 지금까지도 벗어나지 못하는
나는 왜 서른이라는 숫자에 이리도 집착해왔을까. 어릴 적부터 막연히 그려온 인생 계획에 있어 '나이 서른'은 스스로가 세운 상징적인 이정표 중 하나였다. 아니 어쩌면 일종의 결승선이었을 수도 있다. 힘겹게 골인하면, 그 뒤엔 내가 뭐라도 되어 있을 거라 기대했던 것이겠지. 스물여덟이 지나기 전에 하겠노라고 공공연하게 떠들어왔던 결혼관이라던지, 내가 지니게 될 사회적 평판 같은 것들. 아른한 누군가는 내게 그것이 삶의 목적처럼 보인다며 꾸짖기도 했다. 크게 화를 내며 부정했지만 사실 틀린 말은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다만 스스로 최면을 걸어왔을 뿐. 나는 분명 다를 거라고.
대학에 진학 한 이후 12월 31일엔 어김없이 보신각에 나가 제야의 종소리를 들었다. 타종을 기다리는 동안 근처 카페에서 내년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정리하기도 하고 또 지키지 못한 많은 걸 반성하는 게, 꼭 무슨 의식을 치르는 것 마냥 엄숙했다. 누가 봐도 계획적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먼 내가, 한 해 중 가장 건설적인 삶을 사는 하루였다.
그런데 서른을 앞둔 작년은 달랐다. 일찌감치 취기에 올랐다. 술도 못 마시는 내가 맥주 네 캔을 순식간에 비워냈다. 그래도 카운트다운은 해야겠다며 점퍼 하나만 걸쳐 입고 집 앞에 나가 이웃들과 롯데월드타워 조명을 함께 바라봤다. 생각해보니 그때, 내가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한 해의 계획을 세우고 또 다가올 십 년, 이십 년의 미래를 그렸다면 오늘의 나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별 일 없다면 올해의 마지막 31일은 조용한 음악과 함께 마무리 짓게 되겠지. 서른 하나를 맞이할 공연의 셋 리스트엔 이왕이면 사랑노래가 조금 더 많이 담겨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