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부터 Z까지
이틀을 연이어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로 저녁 대신 배를 채웠다. 퇴근 후 꼬박 두 시간을 들이켜고 잠에 들면, 고작 열한 시가 되기 전에 눈이 떠져 깊은 새벽을 괴로워했다. 마음이 괴롭지 않으려 몸을 괴롭혔는데 의도완 다르게 몸도 정신도 피폐해졌다. 사흘째 되던 어제는 이러다 진짜 죽겠구나 싶어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원짜리 몇 장과 이어폰만 집어 들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다 돌면 1km 남짓 되는 동네 어귀를 한 바퀴 걷다,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음료수 하나를 집었다. 목이 마르거나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선반 위에 가지런히 붙어있는 가격표를 정독하며 가장 알맞은 천이백 원짜리 음료수를 하나 골라집었다.
“잔돈은 모두 백 원짜리로 주세요.”
라는 나의 요구가 무색하게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와 오십 원짜리 동전 네 개를 손에 쥐었다. 이런 것 하나 내 맘대로 되지 않는구나 또 한 번 실망하며 다시 목적 없는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나 지나지 않아 보이는 공중전화박스에 들어가 가지고 있던 오십 원짜리 동전을 모두 털어 넣었다. 핸드폰을 가지고 나왔지만 지금의 나에겐 소용이 없는 물건이었다. 손에 익은 열 한자리 번호를 고민 없이 눌렀다. 마지막 번호 6은 차마 누르지 못할 줄 알았는데 요상하게 크게 망설임이 없었다. 사실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러나 내가 누른 번호는 그 아무개의 전화번호가 아니었다. 결국 나를 좀먹는 건 나 자신의 선택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