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줍은 고양이 김진주 키우기
안녕하세요. 제 딸 '김진주'양을 소개합니다. 물론 가명입니다. 김진주의 허락을 받지 않고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죠. 혹시라도 나중에 김진주가 알게 되면 '엄마는 왜 허락 없이 내 얘기를 해애~?'하고 따질 것 같아서요. 만약 그렇게 말하면 '이건 엄밀히 네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란다. 엄마의 관점, 엄마의 걱정이니까. 넌 내 삶에 들어와 있는 사람일 뿐이지...' 그리 말해주려 합니다. 김진주는 저희 집에서 부르는 애칭입니다. 저는 '김하트'고요, 저희 남편은 '손멋쟁이'입니다. 원래는 '손'씨인데 엄마 성을 따라서 '김진주'라고 불러달래요.
(그림 설명 : 김진주가 네 살일 때 어린이집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그려보았습니다. 보라색 체크무늬 옷이 김진주예요.)
김진주는 2017년생, 올해 일곱 살입니다. 12월생이라서 또래들보다 키가 작아요. 이 나이대 아이들은 같은 해에 태어났어도 1월생과 12월생이 머리 하나 정도 차이가 납니다. 우리 아이는 분명 쑥쑥 잘 크고 있는데 무리에 섞여 있으면 하나도 안 크는 것 같아요. 김진주가 1cm 크면 다른 아이들도 1cm 커있거든요.
가끔 김진주는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2-3살 꼬마를 만나면 슬그머니 옆에 가서 키를 재봅니다.
"엄마, 누가 더 커?"
"...."
"누가 더 크냐고?"
";;;;;"
어이가 없습니다만, 답은 정해져 있기에 '당연히 너지'라고 말해줍니다. 말을 못 해 그렇지, 2살 꼬마아이는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요.
김진주는 겁이 많아요. 아이들은 놀이터를 보면 물 만난 고기처럼 달려가는데, 김진주는 망부석처럼 서있어요. 어린이집에서 야외놀이를 할 때면 선생님 손만 꼭 붙잡고 있죠. 계속 지켜보는 거예요. 어떻게 노나, 그네가 어떻게 움직이나, 친구들의 표정, 몸짓, 반응을 계속 관찰해요. '같이 한번 해볼까?' 어르고 달래고, 틈만 나면 놀이터로 내보내고 '이야~ 정말 재밌다' 몸을 구겨 넣어 미끄럼틀 타는 것을 보여 주고. 열 번 설득하고 스무 번쯤 부모가 먼저 시범을 보이면, 그제야 김진주는 안심하고 움직입니다. 조금씩 변화는 있더라고요. 다만, 이미 다른 애들은 놀이터를 제 집처럼 아우르면서 지붕 위로 올라가기도 하고 뒤로 구르기도 하면서 '지들만의 게임'을 하는데, 김진주 양은 구름다리를 '완주'했다고 좋아하네요. 속도의 차이겠죠.
구름다리를 혼자 건널 수 있게 되면서 제법 자신감이 붙었지만, 여전히 행동은 굼떠요. 구름다리 앞에서 미적거리고 있으면, 잽싼 아이들은 김진주를 밀치고 나갑니다. 몇 번 밀쳐지니, 그다음부터는 뒤에 아이들이 있으면 근처에 가지 않아요. 아이들이 다 타고 흥미를 잃어버릴 때까지 기다리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면 한 걸음 한 걸음 살얼음 걷듯이 걷습니다. 어찌나 조심스러운지 곁에서 지켜보면 복장이 터집니다만, 터진 복장을 부여잡고 그냥 지켜봤더니, 구름다리를 혼자 무사히 건넌 아이의 '뿌듯한 얼굴'이 보였습니다. 이게 뭐라고, 눈물 날 뻔했습니다. '그냥 해~ 이게 뭐가 무서워!'하고 윽박지르려던 걸 참아내길 잘했어요. 일곱 살 김진주 양의 복숭아 같은 미소를 볼 수 있었으니까요.
김진주는 친구가 없어요. '너 친한 친구 있어?' '아니, 없는데' 본인이 아주 자신 있게 얘기해요. 또래보다 왜소해서, 12월생이라서, 겁 많은 성격이라 활동적인 놀이를 못해서, 그래서 친구가 없는 걸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김진주보다 키가 작은데 엄청 잘 뛰는 애가 있고, 김진주만큼이나 겁이 많은데 남자친구를 사귀는 애도 있더라고요. 그럼 부모를 닮았을까요? 엄마인 저는 '찐 내향'이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곧잘 어울리는 편이에요. 남편은 수다, 모임, 친구, 외박을 좋아하는 '찐 외향'이고요. 김진주 씨는 대체 어느 별에서 왔을까요?
어쩌면 여러 이유가 얽혀있을지도 모릅니다. 체구가 왜소하고 겁이 많으니 야외놀이 할 때 참여가 아니라 관찰만 하고, 감각에 예민한지라 친구가 '머리가 예쁘네~'하면서 만져주는 걸 불편하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어요. 키 차이가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조심스러운 김진주 양은 감히 도전하지 않죠.
놀이터에서 놀 때면 김진주가 혼자 노는 게 유독 눈에 띕니다. 김진주가 그네를 타면서 혼자 자아도취에 빠져있는데, 또래 아이가 오더니 "나랑 놀래?" 말해요. 김진주는 못 들은 척합니다. 말을 건 아이가 민망했는지 몸을 베베 틀면서 쭈뼛거려요. 김진주는 그네 속도를 멈추더니 내립니다. 못 들은 건 아닌 거죠. 그 친구를 흘깃 보더니, 타라는 듯이 그네를 멈춰주기까지 해요. 그리고 재빨리 몸을 피합니다. 심히 걱정스러운 광경이죠. 다가오는 친구에게도 거리를 두는 김진주, 쑥스러워 그런다지만 그런 행동이 상대를 밀어내는 거라는 걸, 과연 알고는 있을까요. 언젠가 깨닫기는 할까요.
친구가 없는 김진주 양을 바라보는 엄마는 고민이 많습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학교에 가도 계속되면 어떡하지,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면 어쩐다, 아주 씨게 상처 입어서 트라우마라도 남으면...? 걱정은 많은데 뾰족한 해결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건 마음을 싸매놓는 것뿐. 나의 근심걱정이 티가 나지 않게 마음을 최대한 싸매놓고 있습니다. 아이가 처음 구름다리를 '완주'했을 때처럼 그녀의 속도를 존중하면서 지켜보고 있지요. 김진주는 아주 느리고 조심스럽습니다만, 본인이 안심이 되었을 때는 움직일 줄 아는 아이니 까요. 세상이 안전한 곳이라는 걸 충분히 경험하면, 무언가를 할 때 준비하는 시간이 조금씩 단축되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그때까지 김진주가 너무 위험해지지 않도록, 세상의 속도에 치여서 크게 다치지 않도록, 곁에서 친구가 되어주려 합니다.
쉽지 않죠. 쉽지 않습니다. 정작 나는 힘든 관계를 잘도 끊어내면서, 아이만은 '누구와도 두루두루 잘 지냈으면'합니다. 나는 불편한 자리에 가면 입을 닫아버리는데, 아이가 불편해하면 '대체 너는 왜 그래?'하고 바라봅니다. '쟤도 안 그러고, 또 쟤도 안 그러는데, 왜 너만 그러니?' 하는 마음이 용솟음치죠. 나는 못 그러지만, 아이만은 어딜 가나 칭찬받고 예쁨 받고 사랑받았으면 합니다. 이율배반적인 소망. 엄마라서 그렇다고요? 나는 못 그러지만 아이만은 잘 크라는 엄마의 소망이냐고요? 아뇨. 소망보다는 '환상'일 거예요. 절대 이뤄질 리없죠. 나와 아이는 별개의 존재니까요. 다행히 그 점은 확실히 아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다 해도 마음이 들끓는 걸 막을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연재를 마음먹었습니다. 미리 고백합니다만, 이 글은 제 마음을 다스리는 용도예요. 실생활에서 터지는 복장을 꿰매고 치유하려고 씁니다. 아이를 통해 슬며시 비치는 나를 돌아보려고 씁니다. 다가서기엔 힘들고 멀어지자니 외로운, 오묘한 나의 마음을 기록하기 위해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