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성파파 Sep 14. 2024

6. 여러분의 꿈을 팝니다(2)

꿈항아리를 검색하라

   다음날 오후. 고민정 팀장이 뭔가를 들고 수다스럽게 꽝하며 등장했다. 급한 성격이다 보니 가끔씩 발로 문을 걷어차기도 한다.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안대표는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놀란 토끼눈으로 쳐다볼 수밖에. 오늘도 역시나 커피 잔이 입에 물려있었다. 혹시 뜨거운 커피는 아닐까?


   “대표님, 어제 메모 전달해 드린 다음에 좀 더 법률적인 관점에서 꿈항아리를 검토해 봤는데요. 결론적으로는 꿈항아리의 마케팅 기법이 과대광고나 허위광고의 범주 내에 들지 않는 이상 법적인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고팀장은 늘 똑 부러진 두괄식 표현을 좋아했다. 오늘도 결론 먼저 내리고 안대표의 표정을 살폈다. 방금 전 놀란 가슴에 큰 눈으로 응시하는 고팀장을 가만히 바라보는 안대표. 계속 듣고 있다는데 확신을 가진 고팀장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요. 일단은 우리가 복권이나 로또를 사듯이 확률게임 하는 거하고 비슷해서... 다만 확률이 문제 이긴 한데, 어차피 로또 1등은 대부분 안 되잖아요. 그렇지만 대학을 가고 고시나 공무원시험에 합격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가능성 높은 확률이어서... 설사 안된다 해도 크게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여지도 적고요. 그리고 우리 심리나 정서상 무언가 100% 확신이 있을 때 물건을 구매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냉장고나 차는 그 기능이 100%이어야 하지만, 확률이 개입된 모든 상품은 수백만 분의 1이든 수백 분의 1이든 실패할 확률이 더 크기 때문에 판매자를 비난하기보다는 자신의 불운을 타박하니까요.”


   안대표는 논리 정연한 고팀장의 말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나마 머릿속에서는 저번에 보냈던 ^^표시가 저 눈동자에 그려져 있는 것은 아닌지 관찰했다. 워낙 또박또박한 목소리와 기차 화통 같은 목청 때문에 어떤 문장이나 단어 하나도 놓치기 어렵다는 것도 고팀장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럴 것 같네요. 아니, 그러네요. 마케팅에는 당연히 소비자를 현혹시키고 유혹해서 제품을 구매하게끔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그게 마케팅기법의 생명이죠. 더욱이 어떤 경우의 수이든 확률이 있는 경우에는 소비자 자신의 과오로 인식할 수밖에 없죠.”


   “역시나 우리 대표님은 똑똑하시다니깐요. 그래서 꿈항아리도 구매 자체로 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행동을 통해서만이 성취 가능성이 높다고 홍보를 하고 있거든요. 우리 제품과 마찬가지로 자체 앱을 통해서 소비자들에게 동기나 욕구를 부여하고 있죠.... 근데 이런 방식이 우리랑 너무 비슷해서 문제가 된다면....”


   고팀장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고 안대표가 무슨 얘기를 꺼낼까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대표의 눈동자에서 말할 거리가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속마음을 잘 숨기지 못하고 표정으로 드러내는 안대표의 특성이었다.


  안대표는 전화를 들어 기획팀장을 호출했다. 기획팀장인 김도윤은 들어서자마자 두 사람에게 중대한 발견을 했다는 듯 유레카를 외쳤다. ‘유레카’는 무언가 큰 발견을 하고서 외치는 구호가 아니던가!


   “어제 대표님 말씀을 듣고... 저희 팀에서 꿈항아리 제품을 몇 개 구매하고 홈페이지와 앱의 구동 방식을 살펴봤습니다. 그 결과 100% 확실한 것은 아니만, 제품에서 내보내는 메시지 전달방식이 우리 제품들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디지털 사인과 소스코드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우리가 제품을 설계할 때 부여하는 코드방식과 거의 유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개발팀의 확인 작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모든 게 암호화되어 있어서 이것은 어디까지 추측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우리 제품을 다른 전문가들이 보더라도 그렇게 볼 수밖에 없듯이요....”


   고민정은 갑자기 눈을 가느다랗게 치켜뜨고 안대표를 흘겨봤다. 아니, 벌써 이런 부분까지 신경 써서 살피고 있었다니... 역시 안대표님은 똑똑하다니까. 자신에게는 마케팅 기법과 법률적 문제를 살피게 하고, 기획팀장에게는 기술적 문제를 탐구하게 하다니. 개발팀장한테는 무엇을 맡겼으려나. 의혹의 눈 흘김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안대표가 기획팀장에게 방금 전의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조용히 말했다.


   “김팀장님, 거의 비슷할 수밖에 없는 게요. 그 회사 대표가 한상훈이니까요.”


   고팀장은 깜짝 놀란 표정을 하고 있는 기획팀장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러면 김팀장님도 이 회사의 대표가 누군지 모르고 계셨나요?”


   “그렇죠. 저 같은 컴퓨터 공학도에게는 그 회사의 대표가 누군지 크게 관심이 없거든요. 근데 한상훈 그 친구는 뜻밖인데요. 아하, 그러고 보니 이제 앞뒤 인과관계 퍼즐이 맞춰지는 거 같네요. 왜 그 회사의 전달메커니즘이 우리랑 비슷한지... 저도 우리 회사 초창기 멤버라 그 친구에 대해서는 알만큼 알거든요. 대표님, 그럼 혹시...”


   두 손을 들고 어깨를 으쓱하는 고팀장을 위해 안대표는 한상훈과 얽힌 지난 옛이야기를 꺼냈다. 창밖에는 멀리서 햇살을 삼키며 슬금슬금 다가오는 시커먼 먹구름이 있었다. 비가 오려나. 층층이 쌓이는 크고 작은 구름 아래로 거리는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이미 선정릉에는 뿌옇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내리는 소낙비 때문에 비를 피해 허둥지둥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간간히 번개가 창문 안으로 들어왔고, 멀리서 천둥소리가 메아리로 들려왔다. 긴 얘기가 끝나자 고팀장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창밖에 세찬 비가 옆으로 내렸다. 소낙비 치고는 하도 장하게 내린 까닭에 사람들을 긴장케 했다. 오늘 저녁 약속은 어쩌나? 어쩔, 구라청의 일기예보는 또 틀린 거야! 편의점 우산을 또 사야 하나... 다양한 불평불만이 비 맞은 중 중얼거리듯 진화하고 있었다. 비는 내려도 욕을 먹고 내리지 않으면 욕을 더 먹는 이상한 본질을 가지고 있었다.


   때마침 오늘은 단태 가족의 저녁모임 있는 날. 가족 모임의 메인메뉴는 그날 날씨나 기분에 따라 가족 중 누군가가 당기는 음식으로 정했다. 비 내리는 오늘은 막걸리에 보쌈 파전이라고... 어머니가 정했다. 역시나 술 마시며 문학과 철학 이야기를 좋아하는 가족들이다. 가족 모두가 바쁘게 살다 보니 음식준비를 집에서 할 수는 없는 법. 오늘 저녁장소는 아버지가 추천하는 사모주막(思慕酒幕)이었다. 입구에 조치훈의 '사모'라는 시가 걸려있었다.


   철학하는 교수들과 유명한 작가들이 자주 온다는 유명한 막걸리 집이다. 남도식 반찬과 손두부와 각종 전, 수육이 맛있다고 소문나 있다. 특히나 홍어삼합은 서울에서 제일이라는 평이 있다. 전국의 다양한 막걸리를 마실 수 있어서 연중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최근 막걸리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다양한 토속 막걸리가 개발되면서 막걸리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유산균이 풍부하고 부담감이 적은 도수 때문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즐기는 술이 되었다. 특히나 사모주막은 팔도 막걸리를 보유하고 조용한 방이 여러 개 있어서 점잖은 분들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저녁 6시 40분. 여전히 비는 사선으로 내리다 옆으로 쏟아붓다가 바람 부는 대로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이런 비에는 바지가 젖지 않을 수 없는 법. 커다란 장우산을 쓰고 주막에 제일 먼저 도착한 안대표. 삭힌 홍어냄새와 기름진 전 냄새가 먼저 반겼다. 둘러보니 빈자리가 없었다. 예약을 하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예약해 둔 방에서 우산을 정리하며 메뉴판에서 뭐가 맛날까를 훑어보았다. 단태네 가족은 약속시간 하나는 칼같이 지키는 것을 전통으로 생각한다. 오늘 저녁 모임시간은 7시. 아직 여유 있는 시간이다. 잠시 시간이 난 안태표는 핸드폰으로 꿈항아리 앱을 다운을 받고 여기저기 탐색을 시작했다.


   ‘흐음, 이것도 제법 잘 만들어져 있네. 역시나 요새 앱들은 이미지나 구동방식이 다채롭기도 하고 유저 인터페이스가 탁월해. 가시성도 높고 딱 필요한 기능 위주로 화면을 구성하고 있어서 괜찮은데...’


   머릿속으로 생각나무의 앱과 비교했다. 생각나무는 현재 두 가지 앱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명상과 수면 프로그램, 다른 하나는 생각나무. 터치스크린을 기반으로 하는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강조해서 이용자들이 궁금해하는 면이 없게 하려는 안대표의 의중이 많이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명상과 수면 앱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했고, 생각나무의 매출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때 빗물에 바지를 몽땅 적시고 구시렁구시렁거리며 니채가 등장했다. 이놈의 비가 땅에서도 내리네! 된장... 최신 유행하는 헤어스타일을 고수하고 명품으로 보이는 비싼 안경을 끼고 있는 니채. 강남 멋쟁이가 따로 없었다.


   “어, 형이 먼저 왔네. 근데 비에 안 젖었어? 나는 홀딱인데... 큰 우산이 불편해서 자동 삼단우산을 썼더니만... 물에 빠진 생쥐가 따로 없네... 허허허”


   “흐흣... 그러네. 그러게 요렇게 비 오는 날 그런 좋은 옷을 입고 다니랬니. 어허, 그 옷은 비에 젖으면 안 되는 캐시미어 재질 아닌가? 비싸 보이는데....”


   “어떻게 알았데. 전번에 피렌체하고 로마 출장 갔을 때 큰맘 먹고 현지에서 두어 벌 사 와서... 오늘 엄마한테 자랑하려고 입었더니만. 가는 날이 장날이네... 흐흐흐”


   “그건 그렇고, 너 혹시 동창 한상훈이 소식 알고 있니? 전에 우리 회사에서 일하다가 나간 네 친구 말이야.”


   “아! 상훈이... 아마 내가 직접 본거는 한참 전이고. 친구들 말에 의하면 코인하고 주식해서 돈도 많이 벌고, 사이버보안회사 운영한다고 그러던데. 그렇게 능력이 많은 친구인지를 몰랐지만... 근데 상훈이는 왜”


   단태는 동생에게 꿈항아리 관련해서 일어난 최근의 사단을 주저리주저리 얘기했다. 얘기를 듣고 있던 니채의 눈동자가 커졌다. 물을 따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상훈이 그 자식이. 재주도 좋네. 그런 사업까지 하고 있었네. 근데 그쪽이 자기 전공하고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별 이상한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왜 형네 회사하고 무슨 말 못 할 사정이라도?”


   “우리 기술팀에 따르면. 그쪽 상품의 전달경로와 효과가 우리 회사랑 비슷해서 말이야. 정확히는 살펴보기 어렵지만 그런 상품을 홍보하는 방식으로 구현하려면 현재 전 세계에서는 우리가 유일하니까... 그 점이 살짝 의심스럽단 말이야”


   “음... 전달 방식이라. 그거는 형이 만들어낸 특허가 아직까지는 유일무이한 국제특허 아닌가! 그때 특허기술이 뭐였지?”


   “응, 뇌회로에 전달되는 무형자극의 메커니즘... 이거 하나 하고 인공지능의 사고능력 관련한 거 여러 개지.... 그런데 이 기술들 아니면 저런 방식으로 구동할 수 없거든. 그러니까 이게 신통하다는 말이지.”


   형제가 진지한 논의를 하는 사이사이좋게도 부모들이 동시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커다란 골프우산을 들고 있었다. 엄마는 가족모임을 위해서 미용실이라도 다녀온 모양새였다. 의대교수이기도 한 엄마는 비 오는 날의 패션도 어느 연예인처럼 섬세했다. 레인코트와 발목 장화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았다. 단태는 엄마의 화사한 레인코트를 옷걸이에 걸었다.


   니채는 얼른 일어서서 엄마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자신은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아버지는 앉자마자 첫 번째 막걸리로 탄산이 많이 함유된 복순도가를 주문했다. 가느다란 샴페인 잔이 세팅되고 함께 주문한 소고기육전과 두부 요리가 상위에 깔렸다. 니채는 조심스럽게 술을 따랐다. 육전은 한눈에 봐도 먹음직스럽게 기름기가 좔좔 흐르고 막걸리에서 나오는 뽀르르 기포가 입맛을 돋우었다. 가족들은 함께 잔을 부딪쳐 건배를 하고, 광주송정의 진미인 소고기 육전을 우걱우걱 씹기 시작했다. 가족들의 입가와 눈가에 미소가 달리기 시작했다. 만족한 얼굴이 보여주는 행복감. 아버지가 원샷으로 쭉 들이켠 다음 한마디를 보냈다.


   “야! 이거 정말 맛있네. 올 때마다 먹어도 질리지도 않고, 비싸도 계속 먹을 수밖에 없는 마력이 있단 말이지. 니채 엄마도 크게 한입 드셔봐!”


   평소에도 사이가 좋은 부부로 소문난 단태의 부모. 이 자리에서도 역시나 젓가락으로 상대방에게 음식을 권하며 먹여주고 있었다. 니채가 눈꼴사납다는 듯 세모꼴 눈 모양을 해 보였지만, 따뜻한 미소가 절로 흘러나왔다. 두 분은 함께 건배를 하고, 아버지는 최고의 애송시 조지훈의 사모를 암송했다. 사랑을 다하여 사랑하였노라고 할 말이 다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단태는 아버지의 빈 술잔에 다시 산미 가득한 막걸리를 가득 부었다. 잔 아래로부터 작고 섬세한 기포가 경쟁하듯 올라왔다. 안교수는 막걸리와 맥주, 와인 애호가였다. 양주와 소주는 거의 마시지 않았다. 이유인즉슨, 양주와 소주는 안주로 먹을 수 있는 게 한정적이고 막걸리나 맥주 와인은 어떤 음식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믿거나 말거나, 철학하는 사람들은 막걸리는 꼭 마셔야 한다는 이해 불가한 이유였다.


   두 번째 막걸리는 엄마가 선택했다. 진득하면서도 드라이한 해남의 해창막걸리 12도였다. 이 막걸리는 홍어삼합과 잘 어울리기에 함께 주문했다. 걸쭉한 것이 도수가 일반 막걸리와 달리 꽤나 높았다. 앞서 마신 산미 가득한 탄산 막걸리와는 전혀 다른 맛이었지만, 역시나 잘 익은 묵은 김치와 적절히 삭힌 홍어, 돼지고기 수육에 이리도 잘 맞을 수 없었다. 술과 안주가 천상의 궁합이니 꿀떡꿀떡 잘도 넘어갔다. 이 가족은 부모가 애주가여서 아들 둘 다 못 마시는 술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진미를 찾아 맛집 기행을 하고, 좋은 술을 찾아 술도가 투어를 즐기던 가족들이 아니던가! 오늘도 여지없이 봄꽃이 서로 다투어 피듯 안주나 술을 맛깔스럽게 비워내고 있었다. 비 내리는 날의 낭만이 맛의 향연으로 한층 고조되었다. 다른 방에서 왁자지껄한 대화소리가 화음으로 들러왔다. 이 또한 술맛과 음식 맛을 돋우는데 크게 한몫하고 있었다.


   네 번째 술병이 비워지던 차에 엄마가 갑자기 도끼눈을 뜨고 아들들을 쳐다보았다.


   “근데, 우리 집 아들들은 결혼은 안 하시나? 엉, 어느 집 아들은 벌써 애들 둘씩이나 낳고 부모들한테 척척 안겨주고 그런다는데... 나도 말이야 손주들 옷도 사주고 용돈도 주고 싶은데... 으흠. 아들들...”


   오늘은 그런 말씀을 안 하시나 불안 불안했던 아들들. 좌불안석에 서로 눈치를 보며 술잔을 들어 건배했다. 어이 멋쟁이 동생, 이 안주 한번 먹어봐라. 돈 잘 버는 형, 그러네 요것이 별미네. 하나 더 시킬까... 등의 부질없는 대화를 하며 엄마의 서슬 퍼런 눈길을 피했다. 하지만 피할수록 술이 센 엄마의 눈동자는 집요하게 아들들의 시선을 좇아 움직였다. 아들들이 보기에 딱한지 아버지가 한 말씀을 거들었다.


   “글쎄, 결혼이라는 것이 혼자 애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일단 맘에 드는 여성이 있어야 되니까... 그 순서대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허허허”


   하지만 아버지의 그 하나마나한 멘트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붓거나 부채질을 하거나 둘 중 하나인 게 분명했다. 엄마의 불난 집 쌍심지는 더 커져갔고... 드디어 술잔을 털어 비우고는 자작하기에 이르렀다. 60대에 이른 부모들의 근심이란 게 이런 거였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단태는 얼른 다른 화제를 꺼냈다. 이런 얘기가 길어질 경우 엄마의 넋두리는 장편 서사물을 써 내려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시니컬하게 웃으며 잔을 들고 있는 아버지에게 최근의 꿈항아리와 관련된 사정을 여차저차 얘기했다. 아버지는 특유의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를 슬쩍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철학자의 얘기처럼. 현대인들은 외롭고 불안한 존재야. 그러다 보니 예전의 우리 조상들이 그랬듯이 주술적인 믿음에 의존하는 것도 특이한 상황은 아니지. 생각해 보면 인간의 철학은 그리스 로마시대에 태동되어서 좀 더 복잡한 개념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플라톤 이후로 더 발전된 거는 거의 없잖아. 인간의 본성이나 본능 또한 그럴 것이고. 손에 잡히는 유형적인 사물에는 과학적인 접근이 가능하지만, 무형적이거나 정신적인 분야에는 여전히 신념이나 이념 같은 추상적이면서 비과학적인 접근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지. 그런 측면에서 보면 꿈항아린가 그 회사의 생각도 나쁜 방법은 아니지. 어찌 되었건, 사람들에게 막연하게나마 희망을 주잖아. 비록 확률의 영역이라 해도 일주일 동안 말도 안 되는 달콤한 꿈을 꾸게 해주는 로또도 나쁘다고 하지는 않거든. 도덕적으로나 법률적으로도 말이지. 내 생각은 그래.”


   술잔을 연거푸 몇 잔 들이키던 엄마가 슬그머니 대화에 등장했다.


   “근데, 가만히 듣고 보니 그 회사의 방식이 단태 회사의 전달 알고리즘과 비슷하지 않을까. 더욱이 그 회사의 대표가 전에 단태네 회사에서 근무한 적도 있어서...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로 봐야 될 것 같은데. 예를 들어서 특허권이나 영업권 같은 법률적인 문제 말이야. 정확히 따져볼 문제이지만, 제삼자들이 봤을 때는 거의 비슷한 제품에 마케팅전략을 가진 걸로 보이거든. 지적소유권 문제라면 양자 간의 독자성과 유사성이 중요하니까 그걸 살펴보면 될 것이고.... 음, 흠 여보. 심심하면 한잔 따라보세요. 저걸로.”


   엄마는 다섯 번째로 주문한 느린 마을 막걸리 겨울이 맛이 있던 차라, 손가락이 그 병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빠는 엄마의 눈이 풀렸는지 살피면서 살갑게 술잔에 따랐다. 걸쭉하면서도 부드러운 액체가 졸졸졸 흘러내렸다.


   단태는 속으로 탄성을 지르며 부모를 바라봤다. 철학자와 의학자. 수학과 과학, 컴퓨터 쪽에 이해가 해박한 엄마. 사회과학이나 추론적 사고에 뛰어난 아빠. 형제가 어릴 적부터 어떤 문제에 부딪힐 때도 늘상 이런 식으로 두 분은 자신만의 생각을 얘기했다. 니채랑 나눈 대화의 결론이랑 거의 비슷한 말씀을 하시는 거로 봐서... 결국 양자가 어느 정도 유사한가의 문제를 판단하면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술이 땅겼다. 갑자기 고민정 팀장의 툭툭거리는 표정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이 정도 술에 취한 건가! 뭐지? ^^ 표시는 뭐람?


   애주가인 가족들은 주종을 좀 더 맑은술로 바꿨다. 막걸리가 과하면 숙취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백합조개탕과 갑오징어 숙회, 도자기회사에서 만든 40도 증류 소주와 얼음, 토닉워터를 주문했다. 소주 하이볼은 청량감뿐만 아니라 속을 진정시키는 데도 좋은 까닭이었다. 니채는 부지런히 하이볼잔 4개에 얼음을 충분히 넣고 1대 4 비율로 희석시켰다. 레몬즙과 조각 하나를 넣으니 풍미가 배가 되었다. 맑고 투명한 잔을 들고 모두 발그레한 표정으로 건배를 했다. 속이 비칠듯한 액체가 식도를 통과하자 속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족모임의 즐거움은 음식과 마시는 것에서 오는 거라는 걸 말하는 미소들이었다. 옆방에서도 무엇이 즐거운 건지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누군가 노래를 부르는 소리, 하소연하는 목소리, 정치적 공방을 하며 다투는 소리에 사모주막의 저녁은 밤으로 향했다. 주막의 기본 BGM은 대금연주가 흘러나왔다. 노래 제목이... 이문세의 옛사랑인가? 애달픈 단조였다.     



   안대표는 어젯밤의 가족모임의 여운이 남았는지, 오전에 시원한 커피와 녹차를 고함량 비타민 씨와 함께 연거푸 마셨다. 점심은 회사 근처에 바지락 갱국을 잘하는 집이 있어서 시원한 갱국밥을 먹었다. 바지락으로 만들어진 국물은 해장에 적격이었다. 시원하게 속이 풀리고 고민도 풀렸다. 비 온 뒤 하늘이 개듯 머리가 맑아졌다. 하얀 구름과 푸른 하늘이 잘 어우러진 날씨였다.


   오후에 기획팀장과 고팀장을 불러 자신이 내린 결론을 검토해 줄 것을 요청했다. 기획팀장에게는 생각나무와 꿈항아리 제품제작 기술상의 유사성이 있는지 여부를 개발팀과 협의해서 판단해 달라고 얘기했고, 고팀장에게는 중장기적으로 양자 간에 법률분쟁 발생 가능 여부를 검토해 달라고 말했다.


   지나고 보면 시간은 중립적이어서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니다. 먼저 생각하고 먼저 준비하고 먼저 행동하는 이들의 편이다. 인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수많은 고전과 역사 공부를 통해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안단태는 그 시간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늘 ‘먼저’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창밖에는 빌딩숲 사이로 서로가 닮은 구름이 나른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비 내린 뒷날이어서 시야가 맑았고, 멀리 산등성이에 솟아 나온 나무가 손에 잡힐 듯했다. 하염없는 졸음이 몰려왔다.  

    


   다음날 큰 소란이 일었다. 여러 매체에서 속보로 ‘국가 정보기관 등의 해킹 시도’라는 뉴스가 떴다. 실제 해킹을 당했는지 여부는 기관에서 밝히지 않았지만, 뉴스가 보도되자 인터넷상에서는 자신들이 했다고 하는 조직이 등장했다. 수천만 명의 개인정보와 의료정보가 유출되고 헐값에 다른 쪽으로 팔려나갔다는 출처불명의 뉴스도 여러 꼭지 올라왔다. 이색적으로 검찰에서는 이러한 사태가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경찰과 국가정보원 사이버범죄 파트에서 이들을 추적했으나 행방은 묘연하다고 알려졌다. 믿거나 말거나 소식통에 의하면 중국과 이란, 동유럽 쪽의 다양한 서버와 채널을 통한 접속으로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정도만 밝혀졌다.  


   사이버 보안에 일가견이 있는 안대표는 이러한 보도가 실제 팩트가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어차피 해킹경로는 추적하기 어려운 게 본질이다. 이 문제에 관해 동생 니채와 통화를 했다. 형제의 의견은 중요한 포인트에서 일치했다. 이번 해킹사건은 누군가의 불장난이거나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일 수 있다는 것. 니채는 그 이유로 세 가지를 지적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정부기관에서 특별한 피해가 보고되지 않았고, 최근 해커들은 시장성이 없는 이유로 개인정보를 사고파는 것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으며, 주요 언론 매체들이 거의 동일하게 검찰 측 빅 마우스를 통해 기사를 얻은 것 같다는 점. 더더욱 최근 검찰측의 주장은 신뢰성이 제로라는 점.


   니채는 여기에다 한 가지를 덧붙였다. 뭔가 타이밍이 절묘하다는 것. 더 구린 무언가를 감추기 위한 의도적이고 조작된 행동.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는 평범한 의심. 이러한 추론은 진부하지만 시간이 흘러 돌아보면 확신에 가깝다. 늘 증거로 쓰이는 숨겨진 팩트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의도에 대해 짐작은 하더라도 연계성 판단은 어렵다. 물론 정치적 이슈를 연예인 관련 이슈로 덮는 더럽고 치사한 이슈몰이는 이제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형편없는 작전이긴 하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그런 시도를 하는 것은 정치하는 이들의 사고능력이 떨어지거나 시민을 개돼지로 생각하는 그들의 저열한 의식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식의 이슈 덮기가 무심한 대중에게는 잘 먹혀들어서이지 않을까. 그런데 이번 해커소동의 진의는 뭘까?     


  이주일 뒤에는 꿈항아리 관련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가 전격 보도됐다. 아주 이례적으로 이루어진 신속한 경찰수사였고 번개 같은 수사결과 발표였다. 이 나라의 경찰과 검찰 조직이 이토록 열심히 일하는 조직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는 댓글들이 주를 이뤘다. 무서울 정도의 스피드와는 상반되게 익명의 고소인과 시민단체의 고발에 의해 시작된 경찰의 수사는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다. 꿈항아리의 제품은 과학적 근거가 확실하고 유해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게 주된 결론이었다.


  기사 말미에는 과학수사의 요람인 국과수 담당자의 인터뷰도 기사에 한 꼭지 들어있었다. 참고인으로 보이는 로또 복권의 실제 당첨자와 각종 시험합격자들이 말하기를... 자신들은 합격과 행운은 실력보다는 꿈항아리 상품이 가져다준 놀라운 기적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자신들의 인터뷰 영상을 꿈항아리 주식회사 홈페이지나 각종 홍보 유튜브에 게재한 것은 극히 자발적 동의에 의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불특정 다수인들이 의문을 제공하는 사기죄나 다른 범죄의혹은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으로 종결되었다.


  뉴스가 보도된 날 오후 고민정 팀장은 안대표에게 몇 가지 사실을 알려줬다. 한상훈의 형 한영훈은 서울중앙지검의 1차장 검사라고. 서울대 법대 출신에다 재학시절 사법시험 합격에 차기 검찰총장 감으로 떠오르는 엘리트 검사출신이라고. 고팀장은 그런 인맥과 신속하지만 무용한 수사결과가 결코 우연은 아닐 거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달지 않은 밤양갱을 씹어 먹으면서 커피까지 마시던 안대표는 그 웃음에 화답하는 다른 웃음을 선보였다.


  안대표는 고팀장의 말을 듣는 순간 저번 해커소동의 실체를 깨달았다. 이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요 언론에서는 국가기관을 해킹한 이름 모를 해커를 쫓느라 경찰력이 동원된다는 뉴스가 들리고 있었다. 인터넷 뉴스에는 그 해킹 피해가 만만치 않다는 근거 없는 소식도 매일 올라왔다. 국가기간전산망의 보안 문제가 커다란 도마 위에 올랐다. 국가기관의 대처능력은 역시나 하이에나 같은 기자들에게 의해 난도질당했다. 아마추어적 상상력이긴 하지만 제법 쓸 만했다는 생각을 했다. 국민의 눈과 귀와 호기심과 불안을 온통 그쪽으로 쏠리게 하고 있지 않은가. 개인정보 유출과 국가안보 침해라는 불편한 해킹 이슈가 제대로 다른 이슈를 덮고 있는 것이다. 어찌 되었건 연예인 마약사건이 아닌 해킹으로 이런 소란을 만든 쪽에서는 성공의 건배를 들고 있을 것이다. 안대표는 이런 현실이 의아하면서도 쓴웃음이 나왔다.


  고팀장이 돌아간 뒤 안대표는 조용히 몇까지 조치를 취했다. 생각의 원천이 가진 특별한 능력을 통해서 꿈항아리 서버를 스캔하고, 기사에서 인터뷰 한 이들의 계좌와 이메일을 살펴보고, 검사 한영훈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끌어 모았다. 그리고 대략적인 결과를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모두 안대표의 방에서 이날 오후 이루어졌다.

이전 07화 6. 여러분의 꿈을 팝니다(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