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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Oct 11. 2024

14. 마인드컨트롤 주식회사(2)

  안대표는 종이신문 두세 개를 꾸준히 구독했다. 인터넷 포털에 떠있는 뉴스는 내용이 제한적이고 가독성이 떨어져서 어떤 기사들은 종이신문이 읽기 편했다. 출근하는 날이면 오전에 신문을 뒤적거린다. 보수적 관점의 한 신문을 펴다가 1면에 나온 광고가 확 눈길을 끌었다. 푸른 하늘에 날개 돋친 말 한 마리가 비상하고 있는 배경그림이 인상적이었다.     

 

  새로운 시대의 개인과 조직문화, 마인드컨트롤이 만들어드립니다. 세계적인 경영컨설팅 업체 MBB 세 곳이 극찬한 마인드 컨트롤이 한국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저희 마인드 컨트롤 코리아 홈페이지를 방문하시면 자세한 내용을 알려드립니다. 개인과 기업, 민간단체와 정부기관, 정당과 종교단체 모두 환영합니다. 직접 상담을 원하시는 분들은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000, 마인드컨트롤 코리아를 방문해 주세요. 여러분의 새로운 내일이 기다립니다.


  아니! 이런. 우리가 며칠 전에 얘기했던 회사 광고잖아. 그때는 잠깐 검색하고 말았는데.... 흠. MBB 세 곳이라, 맥킨지와 보스턴 컨설팅, 베인 컴퍼니 이 회사들이지. 엄청난 업무량과 고연봉으로 유명한 업체들이지. 이 그룹들이 마인드컨트롤을 극찬했다고! 이 회사를 자세히 살펴봐야 하나? 안대표는 고개를 들어 창밖을 쳐다봤다. 멀리 선정릉 공원 너머 한강 쪽에서 한 무더기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공원 안에는 여기저기 산책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또 소나기가 오려나. 활짝 기지개를 켜다 보니 여러 생각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동안 사업하느라 확장하느라 이쪽 세상에 너무 무심하게 살았나. AI의 윤리적 활용에 대해 문제제기가 많은데 미국 쪽 움직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게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했다. 사내메신저로 박형철을 검색했더니 다행히 녹색이었다. 출근해서 사무실에 있다는 신호다. 재택근무인 경우에는 노란색, 휴가 중인 경우는 붉은색이었다. 메신저로 이쪽 시장상황에 밝은 박형철 연구원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가장 최근에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친구라 그쪽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안대표는 카페에서 콜드브루 아이스커피 두 잔을 준비했다.


  박연구원은 상당히 세부적인 얘기까지 했다. 최근 미국의 컴퓨터 산업계에서 벌어지는 경쟁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까지 곁들였다. 반도체산업의 성장과 더불어 갈수록 급성장하는 AI시장은 경쟁업체들이 서로 개발내용을 감춘다는 것까지 얘기했다. 가끔씩 함께 공부했던 미국 내 친구들이 생각나무 원천의 능력에 대해서도 캐묻는다고 했다.


  “이쪽 친구들한테 안대표님은 거의 전설이시죠. 미국 골프나 야구처럼 명예의 전당 같은 게 있으면 안대표님은 당연히 상석이 있을 거라는 얘기도 농담처럼 하곤 하죠. MS의 빌게이츠나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함께 3대 선구자로 불린 지가 상당히 됐죠. 하하하. 제가 안대표님 회사에서 일한다고 그러면 친구들이 엄청 부러워합니다.”


  느닷없는 칭찬에 안대표는 얼굴이 붉어졌다. 시원한 커피 한 모금으로 급 진화했다. 하기야 지금도 미국의 몇몇 업체에서는 뇌자극에 관한 특허권 양도와 생각의 원천의 개발기술에 대해서 협업 문의가 종종 오고 있지 않은가! 안대표는 쑥스러움을 억누르고는 궁금한 사항에 대해 물었다.


  “하하하. 부끄럽네요... 박프로님, 그런데 마인드 컨트롤 이 회사는 어느 단계까지 진행되고 있나요. 개인이나 집단에 미치는 영향이요? 미국 내에서도 여러 논란의 대상이 된다는 얘기까지는 알겠는데... 더 구체적인 사항이 있나요?”


  박 연구원은 자세를 고쳐 잡으며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제가 엊그제 두 팀장님들께도 말씀드렸지만, 마인드컨트롤은 인권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입니다. 미국 국방부에서 비밀 프로젝트를 수행했나 봐요. 냉전시대에 한참 진행했다가 여론에 밀려 폐기되었던 프로젝트를 다시 다른 차원으로 되살리려는 욕망이 강했겠죠. 그런데 세상에 비밀은 없잖아요. 특히 미국사회에는 우리보다 호루라기 부는 사람이나 외부 감시자들이 은근히 많잖아요. 그러다가 결국 숨겨진 계획의 일부가 드러났다고 언론에 나와서 청문회 얘기까지 나온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국 정부에서는 러시아나 중국과 신냉전을 대비한다는 국가안보 명목으로 어찌어찌 덮고 지나가는 분위기더라고요. 문제가 더 불거지면 정부차원에서 해명이 필요하니까요.... 그다음 스토리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언론을 달래고 그랬는지는.... 그런데, 반전이 한번 있었죠. 챗gpt 열풍이 불어오면서 AI가 더 주목을 받게 되었잖아요. 구글 딥마인드, 앤트로픽, 엔비디아에 이어 최근에는 이 마인드컨트롤이 생성형 AI 분야에서 미국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선도업체라고 계속 유명세를 키우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었습니다. 물론 우리 생각나무를 빼고요.”


  안대표는 생각보다 깊은 내막을 알고 있는 박프로가 새롭게 보였다. 컴퓨터공학자인 AI연구원으로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심을 가지고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지식인으로서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아,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미국 언론이 크게 보도를 안 하면 우리는 알 수 없었던 것을 미국 내에서는 어느 정도 논란이 되었었네요. 그런데도 마인드 컨트롤이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고 승승장구해서 한국에까지 진출한 걸 보면 이 회사의 정치권 인맥도 대단한가 보네요.”


  “네, 그건 잘은 모르겠지만. 대표님 말씀대로 미국과 한국 정재계 인맥을 활용해서 한국시장에 들어오지 않았을까요. 충분히 합리적인 추론입니다. 한발 더 나아가 이 회사가 우리나라에서 어떤 사업을 할지도 대충은 그려지네요. 아마도 개인들에게 제공되는 프로그램은 미끼상품이지 않을까 싶네요. 결국은 정부기관이나 대기업에서 추진되는 모종의 프로젝트와 연계해서 자신들의 기술력을 선보이지 않을까요? 다른 빅테크 기업들과는 달리 조직 내 개인의 통제수단이나 조직개선의 도구 같은 걸로요...”


  “그러네요. 계속 발전하는 AI가 인간의 생활에 도움을 주는 수단으로 이용되면 좋겠지만, 만약에 인간을 통제하거나 인간의 생각이나 감정을 조정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면 그건 큰일이죠. SF영화에서 보이는 디스토피아적 판타지가 그리 멀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개발자들에게 필요한 게 윤리적 한계를 명확하게 하는 건데....”


  안대표는 말을 멈추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박연구원을 쳐다봤다. 박형철 연구원도 안대표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서 구름 사이로 햇빛이 고개를 잠깐 내밀었다. 두 사람의 얼굴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박연구원과의 대화가 끝나고 안대표가 책상에 앉자 사내메신저가 깜박거렸다. 고팀장이 보낸 거였다.


  “대표님, 저녁에 실천시민연대 소현희 변호사 만날 건데, 같이 가실래요? 저번에 감사했다고 저녁을 산다고 해서요...”


  “어, 이걸 어쩌죠. 저녁에 가족들이랑 선약 있는데...”


  “어디에서 보실 건데요. 저희는 잠실 쪽이요...”


  “아, 우리는 강동구청역 부근인데.... 멀지는 않네요. 지하철 두 구역~~”


  “옛썰, 일단은 알았습니다. 나중에 연락할까요?^^”


  “네, 두 분이서 맛있게 드시고 꼭 연락하세요.^^”


  최근 들어 안대표와 고팀장이 함께 맥주를 마시거나 저녁을 먹는 횟수가 늘었다. 팀장급 이상은 대부분 기혼자들이라 싱글끼리의 어울림이었다. 두 사람 모두 생맥주를 즐기는 스타일도 같았다. 메신저를 끝낸 안대표는 뭔가 허전했지만, 오늘은 가족모임이라 어쩔 수 없다고 아쉬움을 달랬다. 그래서 ‘꼭 연락하세요.’라는 말로 미련을 남겼다. 점심시간에 잠시 지나칠 때 고팀장에게 풍겼던 은은한 향수 향이 떠올랐다. 역시나 프루스트가 맞았어. 인간은 냄새에서 어떤 기억을 소환해....    

 


  그날 저녁 안대표는 오래간만에 동생인 니채, 아버지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저녁 장소는 강동구에 있는 숯불 닭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었다. 결혼을 수시로 재촉하는 어머니는 때마침 학회 워크숍 참석 중이었다.


  아버지는 앉자마자 대학 정년 문제와 노후 생활에 대해서 얘기를 시작했다. 노후준비는 최근에 한국사회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었다. 붉게 타오르는 숯불 위에 닭목살 등 여러 부위가 골고루 올려졌다. 술은 니채가 레드와인으로 준비했다. 바로 따서도 마실 수 있는 산미 가득한 쉬라즈 품종이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닭구이의 구수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세 사람은 건배를 하면서 먼저 연한 목살 한 점씩을 음미했다. 아버지가 두 아들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음, 요거 아주 고소하구나. 숯불에 잘 구워져서 불향도 좋고 이 와인하고 찰떡궁합이다. 너희들은 어떠냐?”


  니채가 원샷으로 마셔버린 와인 잔에 다시 술을 따르며 대답했다.


  “네, 아버지. 맛이 아주 좋은데요. 부들부들한 게 기름에 튀긴 치킨 하고는 전혀 다른 맛이네요. 형도 그치?”


  “흐흣, 그러네. 아주 맛있는데. 닭도 철판에 양념갈비로 먹는 거랑 전혀 다른 별미인데. 소금구이로 먹으니까 재료 본연의 식감도 그대로 느껴지고. 좋은데... 하하하.”


  “그건 그렇고. 단태네 사업은 최근에 언론에서 보도가 많이 되더라. 아빠도 동료 교수들한테 아들이 훌륭한 일 한다고 칭찬 많이 받거든. 그동안 우리 기업들이 사회적 공헌하면 기부나 연탄 나르기 정도에 그쳐서 부족한 면이 많았었는데, 이번에 단태나 건강식품회사 정회장님 보니까는 우리가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게 많더라고. 잘했다, 정말 잘했어...”


  “저도 형네 회사에서 여러 가지로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우리 직원들한테도 자랑 많이 하거든요. 사이버 안보센터에서 근무하는 직원들 중에는 형 이름만 말해도 눈이 커지는 직원들도 있어요. 국제적인 인물이라고.... 흐흐흐.”


  옆자리에서도 회식 중인지 건배를 외치면서 대화로 시끌벅적했다. 덕분에 세 사람은 목소리를 크게 줄이지 않고도 편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단태가 숯불 위에 다시 닭다리살과 날개를 추가로 올리면서 최근에 있었던 마인드 컨트롤 이야기를 안줏거리로 삼았다. 아버지가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그러니까, 마인드컨트롤인가 하는 그 회사가 사람들의 생각을 조정하거나 통제한다는 그런 목적이 있다는 거지. 지금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했다는 거고. 허참, 결국 이런 세상이 오는구나.”


  “네, 구체적으로는 어떤 사업을 하는 건지 누구랑 어떻게 할 것인지는 아직은 모르지만. 미국 내에서 활동을 역추적해보면 한국에서도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할지 그려는 지네요.”


  니채도 외국기업이 한국에 들어올 때 그들의 기술력이나 산업정보에 관한 것들이 국정원에도 취합돼서 마인드 컨트롤 건도 일부는 알고 있다고 얘기했다. 날이 갈수록 산업스파이나 원천기술 논쟁 때문에 국가 간에도 서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정부나 국가기관과 연관 있는 사업을 하는 기업의 경우에는 그 배후까지도 정부의 누군가는 알고 있을 거라 했다. 아버지는 철학자답게 자신의 생각을 아들들에게 펼쳤다.


  “철학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화두는 뭐겠냐? 결국 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이고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에 관한 것이거든. 대부분의 철학논쟁이 이 두 가지 때문에 벌어지는 거지. 이제는 여기에 컴퓨터나 인공지능은 무엇이고, 그들과 인간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가 크게 논의되어야 할 논쟁거리지. 그나마 이런 얘기를 편하게 나눌 기회라도 충분하면 좋은데, 요새 기술발전 속도를 보면 이런 철학적인 고려 없이 너무 빨리 진행되는 것 같아 걱정이다. 그러다 보면 인간이 컴퓨터에 대한 통제능력이나 조정기회를 놓치고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는 거지. 얼마든지.... 마인드 컨트롤인가 하는 회사와 관련된 문제도 이 맥락에서 봐야 될 것이야....”


  단태는 역시나 아버지의 철학자다운 사고와 발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때 테이블 위에 놓아둔 핸드폰에서 문자가 왔다고 깜박였다. 설렘 가득한 눈빛으로 슬쩍 쳐다봤다. ‘지금 어디세요?’라는 고팀장의 문자였다. 아버지의 눈치를 보면서 ‘아직 닭구이집이요’라고 답했다. 갑자기 시원하게 생맥주를 마시는 긴 생머리가 생각났다.


  옆에서 니채는 부지런히 숯불 위 닭구이를 요리조리 뒤집었다. 쎈 화력에 아차 하면 타버리는 닭고기의 특성 때문에 누군가는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와 형의 대화에 쏙 끼어들었다.


  “아버지 말씀이 옳아요. 제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컴퓨터 시스템의 회로는 인간의 뇌를 따를 수가 없죠. 인간의 뇌가 가진 필터링 능력이 없는 AI는 생각지도 못한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게 중론입니다. 인간에게 필수적인 감수성과 윤리성을 AI에게 요구하기란 쉽지도 않구요. 너무 빨리 발전하는 컴퓨터공학은 인간 세상에 양면의 동전이 아닌 칼을 던지고 있잖아요. 만약 이런 딜레마를 고민하지 않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통제 가능한 임계점을 넘어서서 SF영화처럼 인간과 컴퓨터 간 갈등이나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헤헤헤.”


  아버지는 잘 구워진 닭봉 하나를 들고는 아들들에게 건배를 제안했다. 어느덧 30대가 돼버린 두 아들이 대견스러웠다. 각자 자신들의 위치에서 사회적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자체를 만족스러워했다. 레드와인과 닭고기는 마리아주가 좋았다. 붉고 흰색의 조화도 농밀함과 담백함의 대비도 특별했다. 니채는 두 번째 와인 병을 땄다. 단태는 추가로 한 마리를 더 주문하고 나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최근에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가장 큰 화두는 AI 자체에 자기만의 생각이 생길 수 있는가 여부거든요.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0과 1로 이루어진 명령어에서는 생각이 창조된다는 게 어렵겠죠. 그렇지만 그 사이에 보이지 않는... 그러니까 인간이 생각지도 못했던 어떤 새로운 조합이 탄생할 수 있다면... 그때는 상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게 연구자들의 결론이거든요. 저도 그렇고요. 지금은 오픈형 AI, 생성형 AI, 자기 학습형 AI 뭐 이런 식으로 나눠져 있지만 사실 인간의 편의에 의한 것이고, 언제든지 새로운 유형이나 결합된 유형의 AI가 나올 수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인간의 생각과 AI의 생각은 그 본질과 필터링이 분명 달라서 동일한 차원에서 보면 위험할 수도 있죠. 저도 생각의 원천 만들면서 계속 고민한 부분이 이쪽이고 지금도 늘 지켜보고 있거든요.”


  세 사람은 두 사람의 결혼 문제만 쏙 빼놓고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니채는 형인 단태에게 마인드컨트롤 관련해서 더 살펴보겠다고 했고, 아버지는 아들의 여자 친구를 보고 싶어 하는 엄마의 신신당부를 전했다.


  다시 띠리링 문자 수신음이 들렸다. 고민정으로부터 온 문장. ‘생맥주 한잔 어떠신가요? 그리로 갈게요...^^’ 시원한 생맥주로 입가심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단태의 제안에 와인 잔 세 개가 하나로 모였다. 단태는 조용히 한마디를 더했다.


  “아버지 괜찮으시면 생맥주를 좋아하는 여성 한분 모실까요? 니채, 너는?”


  두 사람은 단태의 질문 같지도 않는 물음에 대답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전격 동의하는 의미로 다시 잔을 들었다. 두 사람의 눈동자 네 개가 수줍어하는 단태를 보고 슬며시 웃고 있었다. 단태는 부담스러운 눈빛을 피하면서 급히 문자를 보냈다.


  “네, 이동해서 장소 정해지면 찍어 드릴게요. 그리로 오세요.^^”


  그 시간 이후부터 단태는 기억이 분명치 않았다. 먹자골목 안쪽 생맥주집에서 고팀장이 들어오자 세 사람이 환호하던 장면, 생맥주를 원샷하자며 크게 외치던 고팀장의 목소리, 아버지와 니채가 흐뭇하게 바라보던 기억, 긴 머리에 크게 웃고 말하던 고팀장의 얼굴까지가 전부였다. 상당히 많은 양의 생맥주와 들뜬 기분이 서로 상승효과를 불러일으킨 탓이었다. 평소의 자제력이 어느 순간 무너져 아버지와 동생에게 큰 웃음도 주었다. 마지막 기억에 누군가와 택시로 이동해서 집까지 동행했는데... 한줄기 바람처럼 코끝에 남아있는 것은 익숙한 향수뿐이었다.      



  다음날 오전 늦게 출근한 안대표는 숙취로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팠다. 점심은 최지민 지원팀장과 함께 황태해장국으로 해결했다. 뽀얀 국물에 잘 익은 깍두기까지 넣어 먹으니 속이 한결 편해졌다. 안대표에게 최팀장은 회사 설립부터 함께 한 까닭에 누나처럼 편한 사람이었다. 깍두기 김치국물까지 후루룩 떠먹는 안대표를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대표님, 숙취 때문에 속은 안 좋은 거 같기는 한데, 얼굴 표정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데요. 어젯밤에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혹시 데이트라도 하셨나요...”


  안대표는 연신 이마 위의 땀을 훔쳐내며 말했다.


  “히히, 좋은 일은요. 그냥 가족들하고 저녁 먹고 맥주 마신 거뿐인데요. 평소에 비해 조금 많이 마신 거 같아서 속이 안 좋았네요. 역시나 술 마신 뒤 해장국으로는 황태국물이 최곤데요.”


  건강한 점심으로 한결 속이 편해진 안대표는 최팀장과 함께 구내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 한잔을 들고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최근 안대표와 고팀장의 잦은 만남을 소문으로 들은 최팀장은 그런 뒷모습을 보고는 빙그레 웃었다. 마치 막내 동생을 보는 눈빛이었다.


  오후 3시. 갑자기 대한당의 노덕술 의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노의원은 평소의 그 호방한 인사를 하면서 안대표의 안부를 물었다.


  “아이고, 우리 안대표님. 껄껄껄.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대한당 노덕술이올시다. 하하하.”


  “아! 네, 노의원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번에 저희 회사를 많이 알려주셔서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의원님께서는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안대표는 황태해장국에 고함량 비타민C까지 복용해서 그런지 노의원의 인사를 들으며 점차 머리가 맑아졌다. 속으로는 ‘잘 나가는 여당 정치인이 왜 연락을 한 걸까?라는 의문이 생겨났다. 노덕술은 안대표의 사정을 모르는 까닭에 속사포처럼 본인의 말을 계속했다.


  “최근에도 언론에서 보니까. 생각나무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하시더구먼요. 저야 당 입장이 있어서 그런 자리에 나서지는 못하지만 고통당하는 분들을 돕고 사회단체까지 손발 벗고 나서서 하는 걸 보면. 한마디로 죄송하고 감사하죠. 혹시라도 우리당에서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제가 힘닿은 데까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노덕술은 숨이 차오르는지 잠시 말을 멈추고 뜸을 들였다. 안대표는 노의원이 무슨 얘기를 꺼낼까 궁금했다.


  “저기 안대표님. 그러니까... 최근에 우리 당 사무처에서 프로젝트 제안을 하나 받은 게 있는데요. 이게 그러니까... 미국에서 들어온 회사... 그 마인드컨트롤코리아인가 하는 회사에서 정당원 모집과 교육에 좋다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는데... 그걸 한번 전문가인 안대표님한테 물어볼까 해서 전화했죠. 근데 그게... 사실은 쬐금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서 걸려서. 우리가 이런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프로그램을 우리가 당원들 교육에 활용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게 미국에서도 비밀리에 여러 정당이나 종교단체에서 활용해서 효과가 좋았다고 우리 전문위원이 말을 하기는 하던데. 허허허. 어떨까요? 안대표님.”


  노의원도 5선으로 대한당에서도 중진의원이었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시작해서 여의도 생활만 30년 차였다. 그런 그가 뜻밖에도 이런 속 깊은 얘기를 안대표에게 한 것이다. 틀림없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안대표도 노의원의 얘기를 듣고는 깜짝 놀라 말했다.


  “아!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그리고 그 회사에서 대한당에 그런 제안을 했다고요? 구체적으로 무슨 제안인지 아세요?”


  “그게, 보통 정당들이 컨설팅 업체를 끼고 정강정책이나 중장기 플랜 이런 여러 가지를 만들거든요. 우리당도 미국계 컨설팅 업체에서 먼저 그런 제의가 오고 마인드 컨트롤 관계자가 우리 당을 어젠가 방문하고 갔나 보더라고요. 대한당 재건을 위한 더 큰 프로젝트가 있다고. 우리 당뿐만 아니라 국가적 사업까지 진행할 예정이라고 그래서....”


  안대표는 노의원이 계속 말을 하도록 최소한의 대답만 하고 차분히 기다렸다.


  “저번에 생각나무에 의뢰한 게 사실 우리 당원들이나 의원들한테 협동심이나 충성도를 높이기 위한 거였잖아요. 그런데 이 회사에서 얘기한 걸 보면... 그 정도가 아니에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거나 개조하는 그런 느낌이 들거든요. 아마 엊그제 처음 나온 얘기가 아니고 조금 진행된 사안 같아요. 우리 같은 중진의원들도 모르게... 그렇게 하면 사람들 정신건강도 그렇고 뭔가 너무 파격적인 결과가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솔직히 여의도 밥을 30년 동안 먹으면서 서로 싸우고 정치하고 선거하면서도 결국은 국민이나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느낌이 좋지 않습디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거 같기도 하고. 저쪽 대통령실에서 민다고 해도 당에서 거부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긴 한데... 이렇게 한번 전문가 분에게 그런 프로젝트가 과연 뭔지 여쭤보기도 하고 속에 있는 얘기를 듣고 싶기도 하고요. 대표님, 어떻습니까?”


  안대표는 과연 이런 얘기를 전화로 해서 될지 말지를 고민했다. 갑작스럽게 노의원이 얘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 솔직한 의견을 말해도 될지를 잠시 고민했다.


  “의원님, 사실 이 문제는 이렇게 전화로 말씀드리기가 조금 곤란하구요. 혹시 저녁시간이 어떠신지요? 뜨끈한 국물요리 드시면서 대화 나누시는 것이....”


  “아이고, 저야 좋지요.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에서 최고 전문가가 말씀을 해준다는데 열일 팽개치고 달려가야죠. 그러시면 제가 그쪽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시간만 말씀해 주시죠. 혹시 복지리는 좋아하시나요? 음... 사안이 그러니 우리 둘이서만 보는 게 어떻습니까?”


  때마침 속이 불편했던 안대표는 복지리란 말이 나오자 흔쾌히 6시에 복지리탕으로 유명한 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삼성동 인근에서 40년 이상 된 오래된 복요리 전문 노포였다. 앱 예약이 안 되는 가게여서 전화를 걸어 조용한 방으로 예약을 했다. 안대표는 기지개를 켜며 노의원의 마음속을 헤아려봤다. 시원하게 속을 풀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려나 갑자기 쓴웃음이 나왔다.


  앞쪽의 PC 화면에서 노란색이 계속 깜빡거렸다. ‘대표님, 아침에는 잘 일어나셨죠? 속풀이는 잘하셨어요?’라는 고팀장의 메신저였다. 안대표는 아무것도 아닌 한 문장에 상당한 시간을 고민하다가... ‘혹시 제가 어제 무슨 실수라도?’라고 보냈다. 고팀장은 ‘아뇨, 대표님 아무런 일도요. ㅎㅎㅎ.’ 진짜 그랬나. 아무런 일도 없었겠지. 참 나 그런데 기억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가족들의 단톡방에서는 단태를 제외하고 세 사람이 즐겁게 뭔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헐, 형의 그렇게 밝은 모습은 처음 봤다. 그러게 우리 아들한테 그런 면이 있을 줄이야! 엄마가 있었으면 진짜 대박이었는데! 그 여성분 참하면서도 당차게 보이는데, 너를 보는 눈이 이상하더라. 둘이 연애하는 사이냐, 다음에 다시 우리 가족이랑 저녁을 먹자.... 등등 온갖 상상과 추측이 난무했다. 단태가 집에 잘 들어갔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자신들도 술과 무언가에 취해 기억이 흐리멍덩했기 때문이었다. 단태는 대화를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런 답을 달지 않았다. 해장국 덕분에 속이 풀리는지 머리가 맑아지면서 끊긴 기억이 토막토막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원샷 한번 하고 많이 웃다가 생맥주로 러브 샷도 하고.... 그랬나? 맥줏집 밖에서 잠깐 무슨 얘긴가를 하고... 그런데 무슨 얘기를 한 거지? 아버지한테는 생각나무 팀장이자 술 마시는 여자사람친구라고 말했던가? 남자들만 있는 술자리가 여성 한 사람 때문에 분위기가 꽤나 유쾌하게 흘러갔는데... 그러니까, 고팀장이 택시도 부르고 택시에서 내 가방과 옷을 들어주고서는.... 집 앞에 내리면서 택시 값을 내고... 그렇지! 현관 앞에서 비번도 대신 눌러 준거 같기도 하고... 그다음은 깜깜한 암흑이었다. 그런데 왜 어제 옷에서 고팀장의 향수냄새가 오래 남아있었을까? 무슨 일이 있었나? 상상 속에서는 이미 로맨스 단편소설 하나를 쓰고 있었다.      



  노의원의 차는 6시 정각에 가게 앞에 도착했다. 안대표는 예약한 방으로 노의원을 안내하고는 참복지리와 복불고기를 주문했다. 노의원은 자신이 아껴둔 술이라며 프랑스산 코냑 XO 큰 걸로 한 병을 가져왔다. 숙취에서 방금 벗어난 안대표는 호박색의 끈끈한 액체가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매콤한 복불고기를 몇 점 집어먹자 입맛이 돌았다. 맑은 복지리 국물에 속을 데운 후부터는 그 향에 이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의원님, 이 집 음식 어떠십니까?”


  “오, 복불고기 맛이 간이 세지도 달지도 않으면서도 감칠맛이 도는 게 아주 맛난데요. 최곱니다. 허허허.”


  두 사람은 욕먹는 정치와 더 나쁜 정치인들을 얘기하다가, AI 발전상과 날로 악화되는 한국의 경제상황으로 주제를 틀었다가, 다시 과학기술의 중요성과 과학자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문제를 얘기하면서 의기투합했다. 노의원은 기초과학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알앤디 예산 삭감에 대해서는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안대표님, 과학이 죽은 나라는 미래가 없지 않을까요? 어떻게 IMF때도 손대지 않았던 과학기술 연구예산을 삭감하면서 젊은 과학자들에게 미래를 얘기한다고... 나 참.... 허허. 이쪽 분야에 초개같은 관심도 지식도 없는 자기모순적 인사들이 정치를 하고 있으니... 정말 웃기는 세상이죠!”


  “네, 그렇습니다. 교육과 과학은 한 나라의 백 년을 결정하는 중요한 분야들이죠. 하지만 이쪽에 전혀 식견이나 의식이 없는 분들이 정책결정권과 예산을 주무르고 있으니까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의원님... 하하하.”


  술잔이 더해갈수록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들이 살아 움직였다. 안대표는 노의원이 궁금해하는 사항들에 대해서 깊은 우려를 얘기했고, 노의원은 유쾌덕술이라는 이름값을 하지 못하고 진지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마인드 컨트롤 측이 대한당에 제안한 프로그램은 단순한 동기부여 프로그램이 아닌 것 같다는데 의견을 함께했다. 안대표는 전화로 나눴던 주제인 AI를 둘러싼 불안한 미래와 걱정을 얘기했다.


  “의원님, 아까 전화로 말씀하신 사안 말입니다. 사실 마인드 컨트롤 그 회사가 어떤 프로그램을 제안할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조심스럽긴 합니다. 그 회사가 미국에서 해온 프로젝트가 인간의 행동과 심리를 통제하는 도구를 만든 거였거든요. 그 때문에서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많았구요. 아마도 평범한 교육프로그램은 아닐 거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음, 그 회사가 그런 과거가 있었군요. 최근에 우리 당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다 보니까 누군가는 그런 움직임에 불안감을 느끼는 이들이 있긴 합니다. 내 생각에는 의회정치에서 아무리 여당이라 해도 그 속에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갈등도 있어야 되는데... 누구의 하명이네, 의중이네 하면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정치가 아니거든요. 그니까, 대표님 말씀은 그 프로그램이 그런 목적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네요.”


  “네, 단정할 수는 없지만 느낌은 그렇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든 AI가 오히려 인간을 위험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과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컴퓨터공학과 AI를 공부할 때부터 불거진 이슈거든요. 극단적으로는 AI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데 까지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AI가 너무 발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아! 이 문제가 그런 심각한 논의까지 진행될 수 있군요. 허참. 이걸 너무 쉽게 생각하고 결정하면 안 되겠네요. 역시 전문가한테 들으니 이해도 빠르고 무게감도 있네요. 허허허. 당내에서도 이런 논의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얘기를 할 만한 전문가도 없고. 요새는 정치판도 예전 같지 않아요. 정치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느닷없이 벼락출세 한 것처럼 등장해서 미꾸라지 물 흐리듯 하고 있으니... 쯧쯧쯧.”


  노의원은 평소의 그 답지 않게 정부의 정책과 아마추어 정치를 비난했다. 목소리는 예전의 투사로 유명했던 야당의원 보좌관 시절의 그로 돌아간 듯한 모습이었다. 안대표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술을 권하고 자신의 잔을 채웠다. 그 덕분에 안대표 또한 말수가 많아졌다.


  “의원님, 이 집 복지리탕은 어떻습니까? 시원하시죠...”


  “크흐흐... 여의도에도 유명한 복집이 여러 군데 있는데 그 집들보다 더 맑고 시원하네요. 요 매콤한 복불고기는 불 맛까지 곁들여져서 아주 별미네요. 안대표님은 젊으신 분이 이런 집을 다 아시고. 허허허.”


  “아! 이 집은 저희 아버지가 예전부터 자주 오시던 가게라 가족들이랑 종종 오곤 합니다. 처음에는 크게 맛을 몰랐는데, 자주 먹다 보니 계속 먹게 되는 매력이 있는 거 같습니다. 특히 복지리에 들어있는 크리미 한 고니 한번 드셔보세요. 저는 이렇게 부드러운 음식이 있다는 것도 이거 먹어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오, 아버님이 좋아하신다고요. 아버님이 그 유명한 철학자이신 안종훈 교수님이시죠. 예전에 저희 당에서도 의원연수 때마다 교수님으로 초빙해서 강의를 듣곤 했습니다. 참 재미있는 말씀도 잘하시고 철학이 이렇게 웃을게 많다는 걸 그전에는 몰랐죠. 아버님이 쓰신 책도 제 책장에 여러 권 있답니다.”


  “그러시군요. 저희 아버지를 알고 계시네요. 저희 아버지께서는 술과 음식을 굉장히 좋아하십니다. 지금도 수시로 가족모임을 하거든요. 그렇잖아도 엊그제도 맛있는 저녁을 함께 했습니다. 의원님, 혹시 이 집 복 튀김도 괜찮은데, 안주로 시켜볼까요?”


  “어허, 좋습니다. 오늘따라 음식도 술도 얘기도 모두 맛있는 게.... 끝없이 들어갈 거 같은데요. 코냑을 한 병 더 가져오는 건데... 허허허.”


  복 튀김을 추가로 주문하고 나서도 음식에 관한 얘기를 계속했다. 두 사람 모두 미식가적 기질을 가진 탓인지 꺼낸 음식 종류마다 재료부터 맛까지 호흡이 딱딱 들어맞았다. 노의원은 이야기를 하며 들으며 몇 번이나 안대표의 손을 잡았다. 여당의 중진의원으로서 법령이나 제도개선이 필요한 사항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하라고 말했다. 마지막에는 정부에서 뭔가를 추진하는데 아직은 짐작만 하고 있는 상황이라 낌새라도 알게 되면 여차저차 다시 보자는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코냑의 맛에 흥이 오른 안대표는 아버지뻘인 노련한 정치인의 심경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스러웠다. 니채를 통해서 듣기로는 노련한 협상가이자 처세의 달인으로 유명한 그였다. 전형적인 여당 색채의 정치인으로서 5선에 국회 국방위원회와 정보위원회까지 두루두루 거친 정책통으로 알려져 있다. 대체 노의원에 신상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럴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두 사람은 코냑 병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속마음을 맞추다가 후일을 기약했다. 집으로 돌아온 안대표는 어제와는 달리 취기가 없고 머리가 맑았다. 술을 안 취하게 한다는 복지리의 효능 때문인지 이야기의 진중함 때문인지 몰라도 너무 멀쩡하게 집으로 들어섰다. 집안에는 아직도 희미하게 어떤 향기가 스며들어 있었다. 코냑의 후향이 오래 남고 강하다던데 그런 건가. 단태는 자신의 옷에서 체취를 맡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제의 기억은 돌아오지 않는 건가. 심리학자로서 뇌과학 전문가로서 면목이 없었다.


  안대표는 저 멀리 온갖 아파트에서 보여주는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한 문장에 생각이 머물렀다. 노의원이 자가용을 타기 직전 그의 손을 잡고 스치듯 했던 말이었다.


  “안대표, 혹시 앵무새 프로젝트라고 들어봤나요?”


  자동차 경적과 취객들의 대화 때문에 소란스러운 길거리였다. 무심코 지나가는 질문이라고 그냥 흘려버리기에는 무언가를 자극하고 있었다. 앵무새 프로젝트라.... 그러다가 문득 어젯밤 기억 하나가 되살아났다. 그래, 와인... 오늘 술의 기억이 다른 술의 자취를 불러왔다.


  돌아온 기억에 의하면. 어젯밤, 안대표의 집에서는 와인 한 병을 마시며 옥신각신 대화가 오갔다. 술에 취한 안대표는 고민정에게 취중 사랑 고백을 한 것이었다. 집에 돌아가려는 고민정을 붙잡고, 와인 한 병을 따고 주저리주저리... 자세한 기억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기억나는 한 토막. ‘민정씨,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 기억이 현실세계로 돌아오는 순간 안대표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머리는 한없이 가벼워졌다. 오늘밤은 여러 이유로 쉽게 잠들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버 사진 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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