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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den Jun 28. 2022

잘하고 싶다 vs 쉬고 싶다 : K-직장인의 고민

어떤 회사원이 되고 싶나요?

얼마 전, 동기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와닿는 문구를 보았다.

요즘 회사생활 고민 : 잘하고 싶다 vs 쉬고 싶다


너무 공감이 되어 나도 그렇다는 DM을 보냈다. 요즘 야근이 많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나는 일주일에 2~3번 정도, 8~9시쯤 퇴근을 하고 있었다. '야근이 많은 건 아닌데, 그냥 요즘은 잘하고 싶다 보다 쉬고 싶다가 더 강하네...'라고 답장을 보냈다. 나는 8시 반에 퇴근하는 상황이 좆같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그 정도에 스트레스를 받는 스스로를 민망해하고 있었다. 나는 8시 반 퇴근을 못 견디는 개복치가 된 것일까? 아니면 뇌가 절여져서 8시 반 퇴근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꼰대가 된 걸까? 사실 3년차가 아니라 13년차, 23년차에도 할 것 같은 이 고민에 정답은 있을까? 그냥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1. 나는 개복치인가?

먼저 개복치의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다. 여러 기준이 있겠으나, 통상적인 근무 시간인 8시간/일의 근무를 견디기 힘들다면 개복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K-패치를 적용해서 기준을 9시간/일로 높이더라도, 나는 개복치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일주일에 몇 번씩 야근을 군말 없이 하고 있으니(포괄임금제라 어느 정도의 야근을 해도 추가 수당 없음) 잉어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런데 사회 속 보통 사람들(잉어, 붕어, 꽁치 등)은 모두 '나 개복치인가?' 하는 의심을 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아마도 대다수 K-물고기의 근무시간이 상향 평준화되어있기도 하고, 웰스매기(수명60년, 매일 야근 4시간씩 함) 같은 자들이 '고작 그거 하고 힘들어하냐?'라고 압박을 주어서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잉어 정도인 줄 알았던 내가 개복치?

2. 그럼 왜 징징대는가?

잘하고 있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편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업무에 따라 다르겠으나 내가 속해 있는 산업은 작은 것 하나만 바뀌어도 수억 원의 차이가 발생한다. 말단인 나는 대부분의 것에서 결정 권한이 없다. 몇 단계의 승인을 받아야 다음 업무를 할 수 있다. 대기업의 의사결정 시스템은 독일 기차 시스템과 꽤 유사하다. 굉장히 체계적이고, 시간에 맞게 착착 진행될 것 같지만 딜레이가 몹시 심하다. 중간에 갑자기 다른 기차를 타고 가라고 하기도 한다. 덕분에 내가 하는 일은 늘 반복적인 수정이 필요하며, 느린 의사결정으로 인해 내가 생각한 시간에 업무처리가 어렵다. 원래 그런 거라고? 나도 안다. 근데 원래 그렇다고 해서 짜증이 안나는 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내 계획에 없던 야근을 하며 징징거린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난 잘하는 사람도 되지 못하고, 빨리 퇴근하지도 못한다. 이럴 바에는 그냥 잘하는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고 빠른 퇴근이라도 하고 싶어졌다. (물론 말만 그렇고, 할 일이 있으면 야근이든 뭐든 할 것이다.)


3. 쉬고 싶다고만 하는 것 같은데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긴 있는가?

맞는 말이다. 솔직히 잘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희미해져 간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에 거꾸로 물건을 집어넣는 기분이다. 희망(잘하고 싶은 마음)은 상자 가장 아래에 깔려있고, 그 위를 절망(스트레스)이 덮고 있다. 다행히 아직 희망(잘하고 싶은 마음)이 안 보이는 건 아닌데, 계속 이렇게 두면 정말 안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골든 타임이 많이 남지는 않은 것 같다. 왜 사람들이 회사생활이라는 상자를 방치하고, 다른 곳에서 희망을 찾는지도 알 것 같다.(Feat. 부캐) 그런데 상자에 새로 들어오는 것들은 왜 희망은 없고 절망만 있는 걸까, 진짜 판도라의 상자라도 되는 걸까? 그리고 학생과 신입사원 시절 열정 넘치던 나는 어디로 간 거지? 의문만 가득하다.


4. 학생 때와 달리 왜 늘 '쉬고 싶다'가 이기는 것일까?

학생 시절의 나는 '잘하고 싶다'가 '쉬고 싶다'를 이기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승부욕과 책임감 따위의 것들이 똘똘 뭉쳐서 그런 캐릭터로 살았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가 않다. 왜 그런가 생각을 해보았는데, (잘하고 싶다 vs 쉬고 싶다)의 구도가 아니라 (잘해야 될 것 같다 vs 쉬고 싶다)의 구도로 변화가 생겼다.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큰 변화이다. 뭔가를 잘 해내겠다는 나의 의지는 더 이상 스스로의 성장 의지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 대신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겠다거나, 실수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적당함이 나의 목표가 되다 보니, 적당함을 채우는 순간 바로 쉬고 싶다 버튼이 눌린다. 예전에 80까지 기를 모아야 쓸 수 있던 쉬고 싶다 버튼인데, 이제는 60이면 누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쉬고 싶다가 이기는 날이 많아진다. 혹시나 '실수 안 하고 민폐 안 끼치는 적당한 일처리'를 하려는 태도가 '싸가지 없이 6시 땡 하면 집 가려는 태도'와 동일하게 보이신다면 할 말은 없다. 그냥 아래 짤로 대신한다.

그건 당신이...

5. 꿈이 점점 작아지는 기분이 든다.

부동산이 어떻고, 주식이 어떻고 이런 얘기를 하지는 않겠다. 아마 그것들이 아니더라도, 나는 열정을 조금씩 잃어가고, 더 소박한 사람으로 변화했을 것이다. 좋고 나쁨을 떠나서, 그것이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와중에 내가 다시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고 싶은 무언가를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지금 당장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스트레스 사이에 굳이 손을 집어넣을 용기가 없지만 언젠가 이 생각이 또 바뀔 수도 있다. 언제인지는 나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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