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무소식은ㅡ
무중력지대 성북을 기점으로 사람·커뮤니티·장소 등 주체적 청년 생태계 소식을 담아냅니다.
인지하지 못했던 당연한 것들의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무소식 4호 : ESSAY
콴수, 「이사 준비」
잘 살았다. 겨울에 너무 춥고 여름에 너무 더워 임시방편으로 산 이동식 에어컨을 창문에 다시 설치하기 전에 이제는 집을 옮겨야겠다. 이사하기로 마음을 먹고 건물주에게 나가겠다고 말했다. 부동산에 집을 내놓기 전에 집을 치우고 나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구하러 다니기 시작한 지 한 달, 전혀 진척이 없다. 마음에 드는 집도 없으며, 지금 사는 집에 다음 사람이 들어와야 내가 나갈 수 있다는 부동산 사장님의 말은 나의 일정을 더더욱 꼬았다.
나는 화가이다. 집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래서 집을 구하는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 집은 곧 작업실이라서 혼자 살지만 큰 공간이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집은 습기와 벌레가 적고 햇볕이 잘 들고 평수가 넓어야 하며, 이제는 창틀이 갈색 철로 된 곳이 아니길 바란다. 외벽이나 내벽 둘 중 하나라도 단열 처리가 된 집으로 가고 싶다. 내 나이와 같은 건물로 가고 싶지 않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가 원하는 조건의 집은 엄청나게 비싸다.
알아보는 동네는 점점 성북구를 벗어나 북쪽으로 향한다. 혹은 매우 남쪽으로 향한다. '서울에서 벗어나는 순간 다신 서울에 못 들어온다.', '살면 살수록 점점 경기도로 수렴한다.' 이런 농담 섞인 말들이 이제 나에게 현실로 다가왔다. 나는 서울에 올라와 정릉에서 4년, 상월곡동에서 3년 차로 성북구에 쭉 살고 있다. 꼭 서울을 고집할 필요 있을까 싶으면서도 성북구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을 사귄 시점에 멀리 이사하는 것이 매우 아쉽다.
완성된 조건은 극악무도하다. 습기와 벌레가 적고 햇볕이 잘 들며, 건물 연식이 엄청 오래되지 않고, 단열 처리가 되어 있으며, 창은 이중창이고, 평수가 15평 이상이며, 최소 2개의 방, 최적은 3개의 방이다. 작업을 위해 소음에 무심한 곳이고, 성북구와 멀지 않거나 성북구에서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단, 돈! 나의 예산안에서.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나는 내가 원하는 집, 예산 안에서 집을 구하겠다. 친구들과 작업하기 좋고, 지금 사는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할 것이다. 저 빛나는 불빛들을 보라, 내가 갈만한 집 하나 정돈 있지 않겠는가!' 하는 강력한 믿음 하나와 조건에 맞게 구해보겠다는 똥고집과 수없이 들쑤시고 다니는 행동력이다.
구하러 다니는 첫날, 나는 부동산 2곳을 들어갔다 집에 돌아와 버렸다. 부동산 사장님께 뻔뻔하게 나의 조건을 말하고 연락처를 남기고 오긴 했으나, 자신감이 점차 사라지고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나도 안다. 솔직히 나의 예산안에서 위 조건의 일부라도 만족하는 것은 판타지다. 환상이다. 인생이 판타지다. 인생이 환장할 노릇이다. 여유가 있으면 정말 불가능한, 오크와 엘프가 나오는 수준의 판타지는 아니라는 것에 여러 생각과 감정이 든다. 나만 그럴 것 같진 않다. 내 또래 누구든 집을 구할 때 쉽지 않다. 세상이 다 같이 싸지면 좋겠다. 어쩌겠는가 대출을 알아보고 계속 발품을 팔아 어떻게든 구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거기에 로또를 살짝 곁들인.
요즘 비가 자주 오는 듯하다. 미세먼지가 씻겨 내리는 느낌이라 기분은 좋은데 집을 구하러 다니기에 불편하다. 그래서 조금만 날씨가 좋으면 나가서 구하는 중이다. 여전히 구하는 중이며, 이번 여름이 오기 전에 빨리 이사를 해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 바보같이 짐을 너무 빨리 싸버렸다. 좋은 집을 구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시면 고맙겠다.
발행 무중력지대 성북
해당 에세이는 '2021『무소식』생활 수필 원고 모집'을 통해 수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