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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중력지대 성북 Dec 10. 2021

할라피뇨, 너마저

#ESSAY

무소식은ㅡ

무중력지대 성북을 기점으로 사람·커뮤니티·장소 등 주체적 청년 생태계 소식을 담아냅니다.

인지하지 못했던 당연한 것들의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무소식 4호 : ESSAY


유주리, 「할라피뇨, 너마저」


 할라피뇨의 뚜껑이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일주일 전이었다. 밥 해 먹기가 도무지 귀찮아서 파스타면만 삶아서 토마토소스를 뿌려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위가 찾아오자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기 싫었다. 밥 해 먹는 것은 귀찮은데 식욕만큼은 왕성했다. 그때 할라피뇨가 떠올랐다. 파스타에 몇 점 썰어 넣어야겠다고 생각하니 입에 군침이 돌았다. 먼저 냄비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얼마 전 세일해서 천 원 주고 산 5인분용 파스타 면도 찬장에서 꺼냈다. 양파를 간단히 채 썰고 할라피뇨를 꺼내려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안은 텅텅 비어있었고 오렌지색 불빛만이 가득 차 있었다.


 잠깐 우리 집 냉장고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성인 여자의 허리춤에도 오지 않는 소형에 색상은 어두운 그레이 계열로 깔끔하고 아담한 디자인이다. 그러나 겉모습만으로 판단해서는 오산이다. 소음이 웬만한 대형 냉장고 저리 가라다. 처음 이 집에 들어오고 그 소음 때문에 밤잠 못 이룬 날 많았다. 지금은 적응이 되어 잘 자지만 요 근래 소음이 커졌다. 어디선가 털털털털 세탁기 탈수될 때 나는 소리가 낮게 들려 그 출처를 찾아보니 냉장고였다. 소음을 어떻게 잠재울까 하다가 냉장고 옆면을 만지니 소리가 잦아들었다. 손을 떼니 소리가 커지고 다시 대니 잠잠해졌다. 손을 떼었다 대었다 반복하다가 결국 소음에 익숙해지는 쪽을 택했다. 어찌나 손을 타는지 가방이나 종이상자, 간이용 상을 기대어 놓는 것은 효과가 없었다. 지금은 그마저도 적응이 되어 그냥 먹고 자고 한다.


 다시 할라피뇨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뚜껑이 도무지 열리지 않았다. 끙차, 끙차. 수건으로 감싸고 돌려도 소용이 없었고 오른쪽 엄지와 검지의 뼈가 만나는 부위만 아팠다. 혹시 냉장고의 탁월한 성능 탓에 병이 얼어서 열리지 않는 건가 싶어 상온에 두었다. 파스타에는 할라피뇨 대신 피자 주문했을 때 딸려온 피클을 썰어 넣었고 그 덕에 새콤달콤한 맛이 되었다. 다시는 피클을 넣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반나절 정도 지나자 할라피뇨 유리병 외벽에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래 이번엔 되겠지, 생각하며 다시 힘주어 돌렸다. 응차- 응차- 응차 소리가 절로 터져 나왔다. 여전히 역부족이었다. 몇 번을 시도하다 이내 포기하고 싱크대 선반에 그대로 방치해두었다. 그 후로 집안일을 하다가,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글을 쓰다가, 막 외출하려다가도 할라피뇨가 눈에 띄면 뚜껑 따기를 시도했다. 응차- 응차- 손가락 마디만 아플 뿐 역시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결국 환불하기로 결심했다. 통조림을 들고 슈퍼에 가는 동안 무엇으로 환불할까, 아무래도 실용적인 식료품으로 바꾸는 게 좋겠지, 예컨대 식용유나 옥수수 통조림, 계란, 진짬뽕 같은 것 말이지,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걸었다. 낮이라 그런지 날씨는 더 후덥지근했고 슈퍼 안은 한적했다. 중년의 아주머니가 카운터에 서서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저기, 제가 한 달쯤 전에 이걸 샀는데요.”

 나는 할라피뇨를 내밀고 물었다. 아주머니가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거두고 나를 쳐다보았다. 


 “뚜껑이 안 열려서 그런데 다른 물건으로 바꿀 수 있나요?”

 “뚜껑이 안 열려요? 이리 줘보세요.”

 아주머니는 의아하다는 듯 할라피뇨를 받아 들고는 카운터를 나왔다. 그리고는 지나가던 아저씨를 불러 세웠다. 


 “김 씨, 이것 좀 열어봐요. 뚜껑이 안 열린다는데?”

 “뚜껑이 안 열려요?”

 슈퍼 밖에서 안으로 빠르게 들어오던 김 씨 아저씨는 그럴 리가 있겠냐는 듯 되물었다. 그리고는 입을 꾹 다물고 흡- 하는 소리와 함께 힘을 주었다. 그러자 뻥- 하고 소리가 났다. 여태껏 들어본 적 없는 명쾌하고 청아하면서도 우렁찬 소리였다.


 “뚜껑 열리는데.”

 김 씨 아저씨는 쿨하게 말하고는 다시 안쪽으로 들어갔다.


 “해외에서 온 제품이라 압축하는 과정에서 기압이 많이 찼나 봐요.”

 나도 아는 사실을 카운터 아주머니가 되풀이해주며 물건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할라피뇨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삐져나온 국물이 손에 묻었다. 특유의 시큼달콤매콤한 냄새가 났다. 이참에 다른 물건으로 바꾸고자 했던 애초 계획은 사라졌고 지난 일주일간 할라피뇨와 씨름했던 과정이 스쳐 지나갔다.


 할라피뇨의 병뚜껑마저 제 손으로 열지 못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세상이 무엇이 있을까 질문했다. 동시에 혼자서 하지 못하는 일들이 연달아 떠올랐다. 꽉 막힌 세면대를 뚫는 일이라든지, 방 안 형광등 불이 나갔을 때라든지. 그럴 때면 주인아저씨를 부르곤 했다. 남자 친구도 없고 남사친도 없으니 집주인은 우리집에 들어오는 유일한 남자 사람이었다. 관리비가 5개월이 밀렸는데도 아저씨는 귀찮아할 뿐 매번 와서 손봐주었다. 이 밖에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일, 어떤 집단에 편입되는 일, 일정한 질서에 순응하는 일, 무한한 경쟁을 뚫고 모종의 성과를 거두는 일 모두가 내 의지 밖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지만 누군가의 눈엔 가만히 정체된 것처럼 보일 수 있고, 한심해 보일 수도 있고 어쩌면 아예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요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은 잘도 돌아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열리지 않는 할라피뇨 뚜껑을 돌리다 포기하다 돌리다 포기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혼자 힘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손에 꼽음을 깨닫자 조금은 허무해졌고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발행 무중력지대 성북

해당 에세이는 '2021『무소식』생활 수필 원고 모집'을 통해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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