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에 다니던 시절의 일화이다. 같은 지역에 살던 김대리님과 나는 출퇴근길에 3호선 지하철을 한 시간 정도 같이 타곤 했다. 각이 잡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나에게 김대리가 제안했다.
'피곤하면 좀 눈을 붙여! 아직도 가야 할 길이 구만리야.'
나는 김대리의 이런 제안에 온화한 미소로 응대하며 말했다.
'김대리님.괜찮아요.제가 이렇게 사람 많고 움직이는 공간에서는 잘 못 자는 편이거든요.'
이 말을 하고 나란 인간은 정확히 5분도 되지않아 딥슬립에 빠져 헤드뱅잉을 했다고 한다 .
승무원을 하면서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었나요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잠시의 주저함 없이도 답할 수 있다.
'자고싶을 때 못 자고 안 자고 싶을 때 자야 하는것이요.'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것은 또라이 같은 사무장도, 악명 높은 비행도 아닌 '밤 비행'이었다. 두려운 이유는 단 하나. 잠을 억지로 이겨내면서 일을 하기가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비행 전에 안 자나요?>
물론 자보려고 노력은 하지만, 잠이라는 게 어디 내마음대로 되는 녀석이던가? 위의 일화처럼 나는 잠을 아주 잘 자는 사람이었음에도 그것을 조절하기란 쉽지 않았다.
비행 가기 전에 의무적으로 자는 잠은
하다하다 할 것 없어서 편히 드는 잠, 피곤에 찌들어 깊이 빠지는잠, 배불리 먹고 든든하게 자는 잠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비행을 몇 시간 앞두고 이제 좀 자 둬야 해라고 인지하면서 억지로 자는 잠은뭐랄까. 세상에서 최고로 불편한 잠이라고나 할까. 숙제와도 같은 잠이라고 칭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잠이 숙제라니?
비행 일 년 차에 뮌헨 비행에서 있었던 실화이다. 뮌헨 비행은 출발시각이 자정이 넘은 밤 비행이었다. 어쨌든 이 뮌헨 비행을 앞두고 무슨 이유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잠을한 톨도 자두지 못했다.콜식을 때릴까 오조오억번 고민하다가, 늘 그렇듯 비행시작하고 나면 잠이 깨겠지 싶어 그 마음을 접었다.잠 못 잤다고 콜씩 때리면 앞으로도 계속 비행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공항 가는 셔틀버스에서도 잠들기 실패.
역시나 졸릴 틈 없는 왁자지껄 서비스가 끝나고, 기내의 불이소등되고, 승객들이 모두 잠에 들었다. 승무원들은 점프싯에 앉아 수다를 떨거나 식사를 했다. 나는 졸음을 이겨보겠다며, 팔짱을 끼고 굳이 서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중이었다.
그때였다.
무릎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면서 벽에 머리를 박아버린 것은.
마주 보고 있던 동료 승무원이 화들짝 놀라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어디 아픈 거 아니냐며. 그도 그럴게 수초전까지 두 눈 멀쩡히 뜨고 웃고 있던 동료가 갑자기 쓰러지다시피주저앉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나는 화장실에 가서 괜히 한번 얼굴에 물을 묻히고 나와 냉수 한 컵을 들이켰다. 서서 졸다니. 미쳤다! 승무원 역사의 한편에 그려질 사건이었다.
승무원은 대단히도 힘든 직업이다. 정신적으로도 힘든 일이 많지만, 체력적인것은 더하다. 늘잠이 부족하고, 눈떠있는 시간은 모조리 피곤하며, 허리에는 뻐근한 통증을 달고 살며, 만성 머리털 빠짐에 시달린다. 불행하게도 나는 이 모든 질병(?)을 다 가지고 있었지만, 그중 잠에 관해서는 특히나 많은 고통을 받았다.잠에 관해서 내 몸이 유연하게 반응했다면 비행 생활은 훨씬 더 순조로웠으리라.
나는 밤 비행이 훨씬 편하고 좋다는 동료들에게 늘 반기를 들었다. 차라리 몸이 더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남들 잘 때 자고 일할 때 일하는 낮비행이 훨씬 좋다고 말이다.
사직 후에는 밤잠을 실컷 잘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했다. 그래 바로 이거지. 이게 진정한 일상의 행복이지.그런데 그 행복도 몇달 지속되지 않았다. 그 후 코스처럼 이어진 임신-출산-육아 × 2로 인해 나의 밤잠은 다시 갈길을 잃었다. 둘째 녀석만 통잠을 자게 된다면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나의 불규칙한 수면 패턴도 언젠가는 잡히길 간절히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