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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제이 Mar 01. 2020

코로나 바이러스와 무기력함의 상관관계

코로나 탓하지 말지어다

나에게는 동네 엄마 9명이서 만든 단체 채팅방이 있다. H언니가 일 년 반전에 만든 건데, 베프보다도 더 자주 농밀하게 수다를 떤다. 오늘 아침 눈을 떠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수백 개의 톡이 밀려있다. 화두는 단연코 코로나바이러스다. 비교적 안전지대라고 믿어왔던 아부다비에 21번째 확진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엄마들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H언니가 재빠르게 약국에서 마스크를 사 왔다고 한다. 20매에 294 디르함. 우리나라 돈으로 10만 원꼴이다. 한 장에 5000원 꼴이라니. 마스크가 부족해져서 가격이 치솟은 것도 아니다. 원래 비싸다. 그래도 너무 비싸다 싶어 기분이 뭔가 싶은 기분이 들었다. 마스크를 사지 말고 붙박이장 마냥 집에 붙어있어야 하나 잠시 고민 했다.





J 씨는 아파트 앞 슈퍼에 마스크를 쓰고 나갔는데 , 사람들이 하도 쳐다봐서 민망하다고 했다. 그 시선을 사뿐히 무시하고 당당히 활보하라며 S가 응원의 톡을 보냈다. J는 다수의 쌀쌀하고도 의심스러운 눈초리에 자기가 지고 말았다며, 마스크를 살며시 벗어 버렸다 한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게 마스크를 쓰고 나간 것뿐인데 왜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루 종일 단체 채팅방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한 이야기만 하다 보니 나의 몸이 무기력함에 잠식됐다. 엄마들 사이에선 최소 2주 동안은 외출을 금하고 경과를 지켜보자며 결론이 나왔다. 곧이어 아부다비의 모든 어린이집을 2주 동안 임시 폐쇄한다는 정부알림 문자가 왔다.


우리 집 아이들은 아직 둘 다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지 않아 크게 생활이 달라질 건 없다. 그래도 집 앞 놀이터를 가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어질 했다. 저번 주는 첫째의 독감 때문에, 저저번 주는 둘째의 가래 기침 때문에 주말에도 집콕을 했는데, 앞으로 최소 2주를 집에만 있어야 한다니. 아무리 내가 집순이라 해도 도저히 참기 힘든 환경이다. 나는 집순이이지만 잠깐씩은 집 앞 커피숍이라도 간다거나, 가까운 쇼핑몰이라도 가서 콧바람을 쐬주고 와야 하는 '하이브리드 집순이'이기 때문이다.




참기 힘들다 한들 어쩔 텐가. 꾹 참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는 수밖에 없다. 침대와 한 몸이 되어서 온라인으로 장을 보고, 마스크를 검색하고 뉴스를 찾아본다. 누워있다 보면 몸은 계속 누워있고 싶어 한다.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해서 게을러지다 보면 그 끝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태만해진다. 내가 이리도 게을렀었나 하고 깜짝깜짝 놀란다.




그러다 보면 먹는 일조차 깜빡한다. 위액 때문에 속 쓰림을 당한 후에야 엉금엉금 냉장고로 기어간다. 이미 내 몸은 배가 고프다고 난리이므로, 요리를 해서 먹기에는 늦어도 한참 늦다. 배달음식이나 간단히 때울 뭔가가 집에 있는지 어기적 거리며 뒤지기 시작한다.



자주 게을러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나이지만 요즘은 환경 탓도 크다. 사람은 햇빛을 쬐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활력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집에만 갇혀서 휴대폰만 손에 쥐었다 놨다, 누웠다 일어났다만 반복하고 있으 가끔은 왜 살고 있는지, 삶의 목표라는 게 당최 있기는 한지 헷갈린다. 이렇게 아무렇게나 살다가 아무가 되어 아무도 모르게 저 세상으로 가야 하는 건가.



기력증이 나의 등에 업혀 있지만 이 또한 코로나 탓할 것도 아니긴 하다. 두 달이 멀다 하고 감기처럼 찾아오는 이 무기력함은 코로나 이전에도, 신종플루 출현 전부터 나와 함께였다. 부지런한 사람은 집에서도 부지런한 법이다. 동네 엄마 M 씨는 집에서도 천천히 걸어 다니는 법 없이, 잰걸음으로 바쁘게 살더라. 반성하자. 어불성설 코로나 탓하지 말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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