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동, 주파수, 진동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결국 서로의 파동을 맞추는 일이다.
우리는 흔히 많은 대화나 그 사람의 취향과 관심사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 사람과 좀 더 가까워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더 미묘한 층위에서 일어나는 일이 있다.
눈빛, 숨결, 말의 속도, 침묵의 길이, 그사이에 퍼지는 그 사람 고유의 파동.
이것들이 언어와 시각 정보보다 더 먼저 서로에게 겹친다.
그 파동이 비슷한 사람끼리는 자연스레 진동의 주기가 좀 더 빨리 온전하게 맞춰지고,
어색한 말 몇 마디를 주고받는 동안에도 이미 서로의 마음이 정렬된다.
가까운 거리에 오래 머물던 사람일수록
그 진동의 주파수가 거의 하나처럼 움직인다.
함께 걷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침묵했던 시간이
서로의 리듬과 에너지를 닮게 만든다.
그래서 오랜 친구나 연인 사이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공명이 있다.
멀리서 봐도 그들의 눈빛과 몸짓은 닮았고, 말하지 않아도 동시에 움직인다.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같은 무리에 속해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그건 서로의 에너지가 맞닿으며 생긴 울림의 흔적이다.
반대로 처음 보는 사람의 파장은 낯설다.
중첩이 되어도 쉽게 포개어지지 못하고,
마치 척력이 작용하는 것처럼 서로를 엇박으로 밀어낸다.
이상하게 말이 어긋나고, 눈빛이 닿을 때마다 미묘한 불편함이 흐른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불화가 아니라,
아직 두 파동이 조율되지 않았다는 신호일 뿐이다.
그 틈을 먼저 이해한 사람이 느긋이 기다릴 수만 있다면,
시간은 자연스레 천천히 두 사람의 진동수를 맞춰준다.
이때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해 보는 것.
거울처럼 그 사람의 행동을 따라 한다면 그 어색했던 시간도
떨리는 손길도 감추고 싶던 표정도 점차 익숙한 파장으로 바뀌어 간다.
거울 보기는 서로의 주파수를 천천히 복사하는 최소한의 노력이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그 사람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진동을 듣는 일이다.
들어가 본 적 없는 또 다른 우주 같은 눈빛에서, 몸의 형태와 근육의 긴장감에서,
말과 말의 사이 침묵에서, 언어의 뒷면에서, 표정의 틈새에서,
그가 어떤 리듬으로 세상을 느끼고 표현하는지 감지해야 한다.
그 리듬이 보일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사람을 “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끝내 맞춰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파동이 너무 다른 사람끼리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서로의 울림을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
그 거리는 그대로 아름답다.
조화는 같아짐이 아니라, 다른 파장이 공존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결국 관계란 서로의 주파수를 인식하고,
그 차이를 아름답게 조율해가는 과정이다.
이따금 완벽히 맞아떨어져 공명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것은 삶이 주는 기적 같은 선물이다.
그 순간 우리는 내적 에너지를 얻어 강한 연대와 소속감에 분명 환호할 것이다.
2025.10.30. 메타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