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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동나동 Jun 02. 2022

예의 없는 것들을 추앙하는 도시

을지오베베어가 쫓겨나면 모두가 쫓겨난다


대한민국의 아수라, 을지로노가리골목


서울은 쫓겨남이 일상인 도시다. 그래서 을지로노가리골목에 위치한 노포, 을지오비베어가 쫓겨났다고 했을 때도 서울이 또 서울 했군 하고 말았다. 모든 사안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는 건 피곤한 일이다. 나 역시도 그래서 적당히 냉소하고 말았을지 모르는데 을지오비베어가 있던 자리에 직접 가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내 가게도 아닌데도 몸서리쳐지는 이 모멸감. 많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을지로노가리골목에 와 봤으면 좋겠다. 그 아수라 같은 느낌을 직접 한 번 느껴보시라 말하고 싶다.  


한편에 을지오비베어를 되살리기 위해 싸우는 시민들이 있다. 맞은편에는 을지오비베어를 쫓아낸 만선호프가 자리한다. 쫓겨난 이를 응원한다고 무조건 미화하지도 않겠다. 을지오비베어 사정을 모르는 채 여전히 힙지로를 찾는 사람들에게 빈정거리지도 않겠다. 그냥 이 아수라장을 와서 느껴보시라. 골목을 이루는 모든 요소에는 저마다 이유가 있으나, 그 합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특별히 누가 악마의 역할을 맡지는 않았다. 그냥 이게 한국형 도시의 현주소임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낀다. 


일단 골목에 들어서자 현기증이 느껴졌다. 성격 탓도 있을 테다. 너무 번화한 골목 취향은 아니다. 그러나 이 울렁거림은 확실히 골목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어떤 압도적 감각에 있다. 너무 많은 소리, 너무 많은 사람, 너무 많은 구성 요소, 너무 많은 탐욕, 너무 많은 만선. 인테리어를 너무 과하게 때려 넣어 도무지 무슨 스타일인지를 알기 힘든 상태의 건물 같달까.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한 번에 너무 많은 정보량이 입력되어 뇌가 과부하 상태에 들어서고 이어 속이 울렁거린다. 

을지오비베어를 되찾으려는 시민들의 공연과 피켓팅. 반대편에서는 이들을 내쫓은 만선호프가 성업 증인 을지로노가리골목. 바로 여기가 대한민국의 아수라다. 


42년의 시간을 되짚어 본다  


- 42년 전, 을지오비베어가 한국 최초로 생맥주+노가리 판매를 시작한다. 

- 비슷한 가게들이 늘고 골목이 유명해진다. 

- 2014년 만선호프를 방종식이 인수한다. 

- 2015년 을지오비베어를 비롯한 노가리골목이 서울시 미래유산에 선정된다. 

- 2017년 을지오비베어가 중소벤처기업부 백년가게에 선정된다. 술집으로는 유일하다. 

- 2017년 중구 조례가 통과되어 을지로노가리골목에 야장 영업이 합법화된다. 

- 2021년 방종식이 을지오비베어 건물주가 된다. 

- 2022년 4월 21일, 강제집행으로 을지오비베어가 쫓겨난다. 


여기까지만 봤을 때 느껴지는 문제점


- 미래유산, 백년가게란 제도가 있어 봐야 법제화되지 않는 선언이란 건 하등 쓸데가 없다. 임차인을 지켜주지 못한다. 여전히 한국사회는 건물주의 횡포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의 요소도 있다. 골목이 뜨자 돈 많은 후발주자들이 그 이권을 독점하기 시작한다. 직접 장사를 하든, 건물로 시세차익을 노리든 이유는 돈이다. 그리고 골목은 본래 정체성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 젠트리피케이션 유형 분석에 행정이 유발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있다. 여기는 그 요소도 강하다. 이 골목의 가치를 선전하고 싶은 온갖 기관들이 나서서 이름을 얹어줬다. 중구는 대규모 야장을 합법화했다. 만선은 배가 터질 지경이다. 딱 하나, 건물주의 소유권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건드리지 않는다. 

- 정치와 행정은 역시 여기서도 실패하는 중이다.  

을지오비베어는 만선호프(방종식)가 실시한 강제집행으로 쫓겨났다. 


만선호프 방종식


다양한 방식으로 가게를 내쫓았다. 건물을 사서 내쫓고, 건물을 못 사면 건물주와 담합을 해서 기존 세입자를 내쫓았다. 자기가 월세를 2배, 3배 줄 테니 내쫓으라고 건물주를 꼬드겼다. 그렇게 골목은 만선화 되어 갔다. 짧은 골목에 만선 점포가 10개가 있다. 가게 이름도 


만선1, 만선2, 만선3, 만선4, 만선5, 만선6, 만선7, 만선8, 만선9, 만선10이다. 숫자는 로마자로 쓰여 있다. 


만선2는 1층에 있던 가게 4개를 내쫓고 만들었다.

만선7은 1층에 있던 가게 5개를 내쫓고 만들었다.


방종식은 마치 전리품을 늘려 가듯 저 숫자를 적었으리라. 그리고 골목의 성과를 자기 것인 양 선전하기 바빴던 정부와 행정기관들은 당연히 이 모든 사태에 나 몰라라 시전 중이다. 만선은 야장 시간과 구역도 어겨가며 미친 듯이 돈을 벌고 있지만 중구청은 단속도 잘 나오지 않는다. 민원을 넣으면 잠깐 깨작 단속하는 척을 한다. 


방종식은 을지오비베어를 내쫓고 만선11을 계획 중이다. 이미 다른 지역에 만선 체인점을 냈다. 21세기에 여전히 성공신화는 가능하다. 방종식은 그런 자부심을 갖고 살지 않을까 싶다. 철저하게 빼앗아라. 법과 제도가 너를 돕는 그 길을 찾아라. 너의 탐욕은 21세기 한국형 자본주의가 칭찬하는 공정이다. 

돈으로 골목을 독점하는 만선호프(방종식), 욕도 잘한다. 


을지오비베어 42년, 3대에 걸쳐 


누구나 공인하는 원조지만 쫓겨났다. 오비베어는 그렇게 장사가 잘 됐는데 왜 건물을 사지 않았나. 6평짜리 가게를 왜 확장하지 않았나?


을지로 골목의 특성 때문이다. 서너 평 되는 작은 인쇄소, 공구가게 등이 대부분이었던 골목. 거기서 가게를 확장하려면 누군가를 밀어내야 한다. 을지오비베어는 그들과 공존하려 했다. 그들 덕에 먹고살게 됐으니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노가리 가격은 20년째 1천 원. 1대 사장은 밤 10시면 영업을 종료했다. 내일의 노동을 위해, 함께 사는 사람들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어떤 면에서 지독한 고집이다. 그 힘으로 40년을 넘겼고 1대, 2대, 3대가 한 자리에서 노가리와 맥주를 파는, 한국사회에서는 보기 힘든 사례를 만들어냈다. 행정이 나서서 백년가게를 선정하자 역설적으로 40년을 넘긴 가게가 쫓겨났다. 

쫓겨난 자리에서 계속 싸우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


방종식 같은 이가 롤모델이 되는 사회가 너무 싫다.  그가 돈을 버는 건 괜찮은데(난 한 개도 부럽지가 않아~~~) 존경까지 받고 자부심 가득 찬 얼굴로 방송에 나와서 "내가 한 해에 50억을 버는 사람이야. XX 같은 새끼들 다 내쫓을 수 있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회가 싫다. (pd수첩 참고) 합법이니가 괜찮다고? 아니 삶을 책임져주지 못하는 법은 바꿔야 한다. 어차피 법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한 사회에서 어떤 행동이 어떻게 평가받느냐는 그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에 달려 있다. 어떤 행동을 하면 벌을 받고, 어떤 행동을 하면 상을 받는가. 한국사회는 쓰레기 같은 탐욕에 끊임없이 상을 주고 있다. 정치와 행정이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방종식과 만선의 탐욕에 제동을 거는 것, 한국사회의 기준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일이다. 다만 늘 고통받는 사람들이 그 기준을 옮기기 위해 애쓴다는 사실이 슬프지만, 냉정하게 그들이 아니면 누가 할까 싶다. 정치는 언제나 실패 중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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