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좀비가 왜 잘되는 걸까?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스위트홈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스위트홈을 보고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본 에디터는 스위트홈을 보면서 문득 왜 좀비, 괴물 등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최근 킬러 콘텐츠가 되었는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부산행부터 킹덤까지 좀비 청정국이라고 불리던 한국이었는데 도대체 언제부터 좀비, 괴물 등 세상이 멸망한 이야기에 열광하게 된 걸까요?
아포칼립스 : 종말, 멸망이라는 의미로 자연재해, 대규모의 전쟁, 전염병 등으로 문명이 사라지고 최후엔 인류가 멸망한 세계관
아포칼립스 장르는 최근 영화뿐만 아니라 웹툰, 소설, 게임에서도 핵심 장르로 자리 잡았습니다. 본 에디터가 현재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되고 있는 아포칼립스 웹툰을 정리하다 15개째부터 포기할 정도로 말이죠. (심지어 월, 화, 수 웹툰에서만 15개!) 아포칼립스 장르는 좀비 아포칼립스, 누클리어 아포칼립스 등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그중 주목해야 할 하위장르는 바로 포스트 아포칼립스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아포칼립스의 하위 장르로 기존 아포칼립스 장르에서 시점에 변화를 준 장르입니다. 아포칼립스 장르 중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 ’~의 이후’라는 의미를 가진 post를 붙여 세계 종말 이후의 세계를 뜻함.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특징은 종말 이후 새로운 세계관 형성되고 그 속에서 새로운 단체가 생겨 사건이 벌어진다거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등 스토리가 전개된다는 것
영화로 예를 든다면 영화 부산행은 아포칼립스, 영화 반도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라고 할 수 있죠. 멸망하는 과정 속의 사건을 담은 것을 아포칼립스, 멸망 후 어떻게 생존해 나갈 것인가에 초점을 맞힌 것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로 구분하면 쉽습니다.
아포칼립스에서 포스트 아포칼립스로의 시점 변화는 언뜻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현재 유행하고 있는 킬러 콘텐츠에는 현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스토리의 시점 변화가 함의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기존 아포칼립스의 장르로 분류될 수 있는 영화 괴물, 엑시트 같은 경우, 왜 괴물이 탄생했고, 왜 유독가스가 살포되었는지에 대한 장면이 중요하진 않더라도 꼭! 들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괴물, 유독가스 살포 같이 말도 안 되는 사건을 펼치기 위해선 개연성을 위해 원인을 짚어줄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멸망하는 것에 대한 개연성이 전혀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세상이 망했다’라는 말 한마디로 시작하는 것이죠. 대표적으로는 매드맥스가 있습니다. 개연성이 필요 없어졌다는 건, 세상이 멸망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상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판타지가 아닌 극단적인 현실을 그려내는 장르로 변화한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과학 기술이 고도화되며 죽음과 질병을 극복하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앞질러 나도 모르는 나의 취향을 판별하여 최적의 프로세스를 제공하는 놀라운 시대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붕괴와 파멸 이후 아무것도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에 열광하는 것입니다. 좋은 일들만 그려도 모자랄 시간에 우린 왜 극단적인 미래를 소비할까요?
사회에 대한 불만 표출 & 영웅 심리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헬조선, N포세대, 이생망, 부장인턴, 흙수저 금수저, 아웃백 등 힘든 현실을 대변하는 서글픈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현 세상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사회에 대한 불만은 조금씩 넘쳐흘러 월요일 출근에도 우리는 이렇게까지 이야기하죠 ‘아! 회사가, 세상이 망했으면!’ 모든 게 망해버린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닙니다. 오히려 돈이 많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먼저 죽는 연출이 들어가죠. 스위트홈을 예로 들면 스위트홈의 주인공은 스스로 사회에서 배척당하길 원하는 은둔형 외톨이입니다. 게다가 불의의 사고로 온 가족이 사망한 후 삶에 대한 의지를 잃고 죽음을 계획하는 처절하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주인공은 평범하고 시시한 사람이거나 사회에서 불합리하게 배척당한 아웃사이더란 특징이 있습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우리가 어렸을 적 보던 악당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물을 소비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56.6% 가 ‘개천에서 용 나지 못하는 사회’라고 생각하며 ‘사회는 불공정하지만 나는 공정하다’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회, 권력에 대한 반발심과 재구성하고 싶은 욕망을 시각화하기 위해 멸망한 세상이라는 극단적인 배경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역설적인 휴머니즘 & 인간성에 대한 고심
영화 반도의 연상호 감독은 “인간성을 노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르다 보니 역설적으로 휴머니즘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인터뷰했습니다. 빵 한 쪽 나눠주는 것도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선 많은 의미를 가집니다. 아무것도 없고 나 살기도 벅찬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위한 사려는 더욱 강조되어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역설적으로 휴머니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또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선 인간에 대한 입체적인 묘사가 더해집니다. 스위트홈 같은 경우 딸을 데리러 괴물이 있는 쪽으로 나가겠다며 사람, 현재 인간이지만 괴물이 되어가는 사람을 밖으로 보내자는 사람, 작은 생존 모임에서도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 등 마냥 이기적이라고 욕할 수 없는 다양한 인간성을 보여줍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에는 모두가 악역이라고 지목하는 완벽한 악역이 없습니다. 세상이 멸망하고 혼돈에 빠진 사람들이라는 상황이 악역이기 때문입니다. 멸망과 혼돈을 대적하기 위해 스스로 강해지고, 공동체가 중시되고 규칙을 새로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며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휴머니즘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간혹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는 사라진 재화 대신 사람을 사고파는 반인륜적인 단체 등이 나오기도 합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는 소설에서 웹툰으로, 웹툰에서 영화로 채널 확장을 순차적으로 밟은 장르로 MZ세대가 포스트 아포칼립스 콘텐츠 성공의 주역입니다. 최근 MZ 세대(1020)에게서 검증받은 소설, 웹툰을 원작으로 드라마, 영화까지 발을 넓히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 차세대 콘텐츠에 MZ세대의 특징이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같은 경우,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함의와 MZ세대의 특징이 교차하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유토피아는 허황된 꿈이라고 생각하며 현실적인 부분을 많이 고려하는 것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판타지적 장르 중에서도 현실적 반영이 중요한 장르입니다. 영화 <반도>의 연상호 감독은 인터뷰에서도 하수도 관리가 안 돼 모든 땅이 물에 잠길 것, 한국에 태풍과 홍수가 잦으니 자연 재해도 몇 차례 휩쓸었을 것, 초기 진압을 위해 다리가 끊겼을 것 등 현실적으로 배경을 구상했습니다.
두 번째는 도덕적 감성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흔히 요즘 MZ세대는 사회에 관심이 없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판단입니다. 오히려 MZ세대는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하기 위해서 힘을 보태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존심이 강하고 현실에 입은 상처도 커 이기적인 세대라고 불리지만 불매운동이나 SNS를 통한 사회참여를 보면 MZ세대의 도덕적 감성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극단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노골적인 인간성을 드러내며 이기적인 행동과 공동체를 생각하는 행동의 경계가 희미해집니다. 이는 보는 사람이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라는 심층적인 자문을 하게 만들며 도덕적인 사고를 더욱 견고하게 만듭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담긴 문화 소비자들의 욕망에 대해 주관적으로 분석하면서 현 사회에서의 답답함이 멸망한 세상으로 표현된다는 부분이 씁쓸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희망을 엿보았습니다.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새로운 세상의 지향점을 합의하는 모습을 통해 끊임없는 경고를 던지는 것이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역할인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욕망은 실재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내고 우리는 그 세상에서 영감을 받곤 합니다. 이 아티클을 읽으시고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문화 콘텐츠를 접하실 때 색다른 감정을 느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