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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실연필 Dec 25. 2021

성탄의 기도

기도: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어떠한 절대적 존재에게 빎. 또는 그런 의식.


교회를 가야 하는 날이다. 성탄절이기 때문이다.

일 년 중 두 번의 큰 기념일인 성탄절과 부활절.


다른 날은 몰라도 이 날은 꼭 교회를 다. 한데 올해는 그러질 못했다. 공적으로는 날마다 미쳐 날뛰는 바이러스의 창궐 때문이고, 사적으로는 개방되지 않은 좁은 공간에 있을 때 느끼는 답답함의 정도가 보통 사람의 역치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나는 흔히 말하는 '못해 못해 아무것도 못해 신앙(모태신앙)'의 출신성분이다. 내 나이가 교회를 다닌 햇수다. 공식적으로 교회에서 직분도 있다.

결혼 후 교회 안에서 나의 카테고리가 여전도회라는 낯선 이름으로 묶였는데, 그것은 국적을 바꾸는 일만큼이나 낯선 것이어서 나는 여전히  강대상 위의 먼지처럼 붕붕 떠 다니는 신자의 꼴을 면치 못하고 있다.


별 볼일 없는 신자이나 성탄절은 오랜 내 업과도 같아서 늘 이 맘 때면 마음이 울렁거린다. 이 땅의 신음하는 사람들을 위해 신이 이 땅에 오셨다는 말은 누군가 우리를 돌보고 있다는 안위감을 준다.


정말 그분이 우리를 돌보시는가.

12월이 되면 언제나 내 마음에 떠오르는 한 문장은 이것이다. 그는 우리를 돌보시는가.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이 창궐했던 인간의 지난한 역사를 기억한다. 단지 책으로 읽기만 했는데도 소름이 끼치는 일들, 인간이 인간에게 한 모든 종류의 폭력과 죽음들. 신의 이름으로 치뤄졌던 전쟁들, 또 전쟁들. 그리고 어찌할 수 없는 역사 속의 무력한 개인의 삶.


그분이 계신다면, 우리는 왜 외로운가.

그분은 왜 우리를 그저 두시는가.

돌보지 않음으로 돌보시는가.

 

12월의 내 마음은 꽃점을 치는 아이처럼

그는 돌본다, 그는 돌보지 않는다를 번갈아 말하고 있다.


교회를 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나는 흡사 담배를 끊은 사람과 같은 금단 현상을 앓는다. 근처 성당을 검색하고 이번 주의 성당 주보를 읽는다. 읽으므로 잠시나마 위안의 마음을 삼아 본다.


그러나 나는 늘 그러했듯 얼마만큼 불온하기도 하다.


'.... 소유 의식이 없으므로 필요하지 않은 것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가졌을 때보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을 때 더 행복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문장을 곱씹어본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을 때 더 행복하다는 걸 알았단 건 결국 행복하기 위해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길 선택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행복하고자 하는 그 욕망은 선한 것인가. 옳은 것인가. 이 거룩한 문장을 읽으며 천국에 가기 위한 방법들을 기억해본다.


선을 베풀고 참고 사랑하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보이지 않더라도 믿음을 가지고 천국을 소망하는 것.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다. 욕망하므로 목적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행복이다. 그 행복을 돈으로 느끼든, 사랑으로 느끼든, 사회적 성취로 느끼든, 예술의 경지로 느끼든.


인간은 채워지지 않는 깨진 항아리처럼 끊임없이 채우려 한다. 텅 빈 마음에 채우려는 것이 돈일 수도, 사랑일 수도, 이념일 수도, 믿음일 수도, 천국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채우려 하기 때문에 속되다 할 수 있을까.

돈이든 이념이든 천국이든 결국은 자기 좋자고 하는 것이란 건 다르지 않다. 남 행복하게 하자는 게 아니라 나 좋자고 하는 거란 거. 결국은 다 자기 좋자고 하는 것.


자기 좋자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나는 아직 고민스럽다. 거룩한 신심조차 결국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라면 나는 여전히 어딘가 의심스러운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게 되면 종교의 경계를 넘어 지옥에서 모든 중생이 성불할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는 지장보살이 생각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어느 신부님의 기도문을 읽는다.

그 인간적이며 솔직한 기도문을 소리 내어 따라 읽는다.


신부님의 기도문은 당신은 계십니다, 가 아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쓸쓸하고 작은 사람들을 향한

간절하고도 간곡한 호소.


그러므 당신은 계셔야 합니다. 꼭 그러셔야 할 겁니다. 라는 근원의 소망을 담은 기도.


그분이 오신 쓸쓸한 이 밤에 나는 조그맣게 되뇐다.

당신은 계셔야 한다고. 계심으로 돌보셔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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