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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선 Oct 01. 2023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아버지는 지리산과 백운산을 카빈 소총을 들고 누빈 빨치산이었다. 그는 일제강점기가 끝난 직후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싸웠으나 처절하게 패배했다. 동지들은 하나둘 죽었고, 아버지는 위장 자수로 조직을 재건하려 하지만 그마저 실패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자본주의 한국에서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았다. 평등한 세상이 올 거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고, 생판 초면인 이들의 어려움도 무시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조금 우스꽝스럽게 생각한다. 누구나 배불리 먹고 차별 없이 교육받는 세상이 이미 이뤄진 마당에 혁명을 목전에 둔 듯 행동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누가 봐도 블랙코미디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행선을 달려온 ‘나’와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죽었다. 노동절 새벽,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이 이야기는 크게 네 줄기로 이뤄진다. 


  첫 번째는 아버지와 평생을 반목해온, 그의 동생인 작은아버지와의 이야기다. ‘빨갱이’형 때문에 집안이 망했다고 생각하는 작은아버지는, 형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를 대꾸도 없이 끊을 만큼 냉담하다. 평생 술꾼으로 산 작은아버지는 이따금 집에 찾아와 “니는 그리 잘나서 집안 말아 묵었냐?”(38쪽)라며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맞서지 않고 묵묵부답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차라리 작은아버지가 장례식장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의 등장 여부는 장례식장에 모인 모두의 관심사인 한편, 독자들도 책을 읽는 내내 흥미진진 궁금하게 지켜보게 된다. 죽은 아버지와 산 작은아버지는 화해할 수 있을까. 


  두 번째는 구례에서 아버지가 사귀어온 친구들의 이야기다. 이들의 면면은 실로 다양하고 입체적이라 살펴보는 것만으로 한편의 시트콤을 보는 듯하다. 아버지의 소학교 동창이자 시계방을 운영하는 박선생. 그는 평생을 군인과 교련선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대척점에 있지만 아버지의 둘도 없는 친구다. 정치적 지향 차이로 발생하는 두 노인의 투닥거림은 어딘지 귀엽고, 그 끝에 “그래도 사램은 갸가 젤 낫아야”(47쪽)라는 말은 지금의 정치권이 배웠으면 싶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 장례식에 어울리지 않게 등장한 샛노란 머리의 소녀. 어찌된 영문인지 그는 아버지의 “담배 친구”(139쪽)란다. 열 일 곱살 소녀와 허물없이 친해지는 것은 아버지이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 와중에도 어머니가 베트남인인 소녀에게 ‘미 제국주의’ 운운하는 것을 잊지 않는 아버지의 캐릭터는 여전히 웃음을 자아낸다. 그밖에 ‘학수’를 비롯해 아버지의 아들을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 총부리를 맞서고 싸웠지만 이윽고 친구가 된 웃지 못 할 사연들이 속속 등장한다.


“내가 알던 아버지는 진짜일까? 그가 남기고 간 수많은 에피소드”


  세 번째는 ‘나’와 아버지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가장 큰 줄기는 ‘빨치산의 딸’로 힘들게 살아온 딸이 아버지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사회주의자이고 혁명 전사였기에 생활력은 없었고, 그런 주제에 “보증을 서”(57쪽)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늘 가난했던 집안 형편은 전부 아버지 탓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아버지가 늘어놓는 장광설은 지금 현실과는 맞지 않았고, 그런 만큼 ‘나’는 아버지가 있는 고향을 떠나고 싶어 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죽음 이후 ‘나’는 내가 알던 아버지의 얼굴이 아주 일부였음을 깨닫는다. 아버지의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면들이 밝혀지고, 사람들을 감화시킨 담대한 모습들도 드러난다. 무엇보다 내가 잊고 있었던, ‘나’를 사랑했던 순간순간들이 떠오른다. 마침내 ‘나’는 아버지의 유골을 손에 들고, 아버지를 가장 아버지다운 방식으로 보낼 한 가지 결심을 한다.


  마지막 네 번째는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의 일화들이다. 이들은 서사의 무게를 한층 발랄하게 만들며 독자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평생의 동지이자 그 역시 사회주의자였던 어머니는 아버지보다는 현실적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이런저런 일로 늘 구박을 받는다. 옷을 털지 않아서 술 담배를 끊지 못해서 같은 비교적 소소한 일도 있고, 빚보증을 서서 농사를 내팽겨져서 같은 큰일도 있다. 어찌 보면 앙숙 같은 이들은 ‘유물론’과 ‘민족’ 앞에서 경건하게 하나가 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티키타카’는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는 유쾌한 촉매제가 되어준다.




아버지의 장례식이라는 사건 하나로 잊히거나 지워진 우리 현대사의 상흔들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펼쳐놓고 관련 인물들을 불러내 각각의 사연을 풀어놓고, 그들이 종으로 횡으로 오지랖 넓게 뻗어나가다 결국은 헤쳐 모여 이미 소멸한 아버지를 불멸의 존재로 소생시키는, 이런 소설은 대체 어떻게 쓰는 것일까? 서글프지 않은 일화가 없다고 생각하다가도 실실 웃음이 나올 만큼 재미있고, 억울하지 않은 삶이 있을까 생각하다가도 울분이 솟는다. ‘긍게 사램이제’ 이 한마디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소설. 대체 얼마만의 일인가. 소설을 읽고 한 밤중에 펑펑 눈물을 쏟아낸 것이. 나는 책을 덮고 나서도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처음 이 책을 알게된 건 유시민 작가를 통해서다. 평소 작가로서의 유시민을 존경하며 그가 추천한 이 책을 단숨에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며 지금은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2003년 12월 일본에서 귀국하자마자 불어난 살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새로 오픈한 전망 높은 헬스장 러닝 머신에서 매일 한 시간 삼십 분씩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달리고 또 달렸다. 


부산시 사하구 신평동 343번지. 

신평(新平)은 조선 시대 한 선비가 유배를 온 곳이다. 어떤 잘못을 저질러서 이곳까지 유배를 온 것인지는 모른다. 그 당시에는 투박하기 그지없는 척박한 땅이었으리라 상상해 본다. 


아버지 백평이 넘는 밭에서 배추 농사를 지으셨다. 농사 지은 배추를 서울 가락시장 농판장까지 거래할 정도로 배추 농사는 해마다 풍년이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의 일이고, 모두 어머니와 큰어머니께 들어서 안 사실이여서 정확하게 언제까지 농사일을 하셨는지는 모른다. 다만, 자세히 아는 사실이라고는 아버지의 사업자금을 담당하시던 분께서 사업 자금을 들고 도주하셔서 아버지는 부도를 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는 시원섬 이라는 곳에서 많은 개를 키우시고, 개소주를 만들어 아름아름 판매도 하셨다. 남은 송아지 한 마리와 이상 아저씨. 간간히 논과 밭고랑을 메시던 아버지의 모습도 얼핏 보인다. 도랑과 실개천이 흐르던 곳을 땅으로 메꾸고 개발해 공장을 지었다. 남아 있던 땅을 공장을 짓도록 파셨던 것 같다. 지금도 그다지 발전된 모습은 아니지만, 띄엄띄엄 들어서 있는 공장 일대가 지금은 매연을 마구 뿜어대는 지독한 도시 창고의 모습으로 탈바꿈을 해 버렸다. 


럭키무지개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곳도 임씨 문중 산이었다. 그 산과 그 마을 일대모두 임씨 문중의 재산이었다.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까막눈이었던 친할머니는 그 많은 땅문서를 친척들에게 거의 떠넘기다시피 했다. 울화가 치밀었던 큰아버지는 한국을 떠나 일본에서 가정을 일구셨다. 홀로 가장이었던 아버지는 어떻게든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워보려고 그렇게 남은 100평의 땅에 배추농사를 지으시고, 시원섬에서 개를 키우셨으리라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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