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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시인 Mar 02. 2021

일상에서 만나는 아름다움과 기쁨. 22

일상의 편린들

     1. 산길을 오르며

  잔설이 녹아 질펀해진 산길을 오른다. 지난 계절의 낙엽들이 마치 갈색 카펫처럼 길 위에 깔려 있다. 엊그제의 폭설도 햇볕과 한결 부드러워진 바람 속에 거의 녹아 응달진 몇 군데만 남아 있다. 이름 모를 작은 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홀로 산에 오른다. 아마 작년 이맘때쯤에도 그랬을 것이다.  

  영하 10도 안팎의 한파가 이어지던 1월을 지나 2월로 접어들자 추위가 꺾이고 세상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햇볕과 바람부터 다르다. 산자락을 덮고 있는 잔설과 낙엽들 아래에서 잠을 깬 씨앗과 풀잎들의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그들이 마치 내게도 말을 건네는 것 같다.

“깨어나세요! 봄이 오고 있잖아요!”     

2020년 2월

 

     2. 반복되는 일상

  어쩌면 나도 오랫동안 동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감각의 촉수를 거두고 꿈꾸기를 포기한 채, 욕망 없이 그리움 없이 그저 세상의 흐름 속에 몸을 맡긴 채 부유하고 있었는지도… 의욕도 없이 특별한 목적의식도 없이 그저 무위도식한다는 느낌만 지닌 채, 밥을 먹고 잠을 잤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학교에 출근하지도 않고 빈둥거리다가 다시 잠들었다.

  복부의 팽만감과 함께 얼굴도 둥글어지기 시작했다. 작년까지 문제없던 바지가 효용성을 잃어간다.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이란 패턴이 깨어지자 먼저 몸이 무너진다. 그래도 몸만은 젊은 시절의 틀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할 수 없이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산에 가지 않는 날은 노트북 배낭을 멘 채 소도시 여기저기를 산책했다. 뒷길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향교를 지나 한적한 상가와 사거리를 거쳐 시장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보면 한 시간쯤이 소요된다. 그리고는 카페에서 홀로 노트북과 대면하다가 상가들이 문 닫을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2020년 4월

 

     3. 먼 곳을 꿈꾸며

“언젠가는 히말라야로 갈 거야.”라고 버킷리스트로 정해놓은 히말라야 여행을 작년에는 더욱 구체화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름 방학 때에는 몇몇 지인이나 동료들과 함께 차마고도의 출발지인 리장의 옥룡설산을 다시 오르고 샹그릴라의 5, 6천 미터급의 설산에도 가고 싶었다. 샹그릴라는 히말라야의 끝자락이지만, 안나푸르나 혹은 에베레스트 도보 여행의 사전 준비라는 차원에서 염두에 두었던 곳이다. 

  몇 년 전에 리장에 단체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리고 옥룡설산의 전망대까지(4,680m) 오른 적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계획한 대로 여행하면서 글도 새롭게 쓰고 싶었다. 그리고 올해 여름 방학 기간은 칭장 열차를 타고 티베트를 다녀온 다음 내년쯤에 히말라야의 ABC 혹은 EBC 트레킹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난 1월부터 시작된 코로나 19의 확산이 계획을 무산시켜 버렸다. 하지만 가끔은 뒷산을 오르면서 나 자신에게 주문을 건다. “미세먼지로 자욱한 내가 사는 소도시와 들판을 지나 희미하게 보이는 저 먼 산들이 설산이다.”라 생각하자고.      

2020년 5월

  

    4. 사계절을 보내며

  한 해가 지났다. 재작년 12월 말의 베트남 여행 이후,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거의 같은 패턴으로 일관한 한 해였다. 늘어난 것은 체중과 혼술이고 줄어든 것은 여행과 만남이었다. 등교, 강의, 독서, 헬스, 모임 등으로 짜이던 일상의 틀을 ‘코로나 19’는 여지없이 깨어버렸고  ‘산책’과 ‘카페에서 혼자 놀기’가 새로운 패턴으로 자리 잡은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이전에는 뜸하던 비봉산 등반을 자주 하다 보니, 그곳에서 찍은 사진도 수백 장으로 늘었고, 의도하지 않게 매 계절의 변화도 사진에 담게 되었다.  

  아파트 쪽문으로 나와 언덕을 오르고 무지개 모양의 육교를 지나면 곧바로 오르막길로 접어든다. 오르막으로 이어진 능선에 올라서면 소나무, 단풍나무, 참나무 들로 둘러싸인 작은 길로 이어진다. 지난해 봄부터 그곳을 지날 때마다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다. 풍광이 아름다워서 사진에 담을 때도 있었지만,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에 소식을 올릴 때도 쓰임새가 있기 때문이다. 폭설이 내리던 지난 1월에도 산에 오른 적이 있다. 등반이 목적이 아니라 눈 내린 정경을 사진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봄부터 겨울까지 늘 사진을 찍었지만, 눈이 내린 사진은 쓸만한 것이 없었기에 눈발이 자욱이 날리는 언덕길을 올랐었다.       

2020년 8월

  

    5. 비현실적인 현실 속에서

한 해 동안 늘어난 것 중 또 하나가 독서량이다. 새로이 출간된 관심 있는 책들 이외에 해외여행이 불가능한 날들이기에 대리만족이라도 하고자 대학 도서관에 있는 배낭 여행기, 여행  안내서, 여행 수필 등을 이것저것 읽었다. 그중에서도 대학에 소장된 히말라야 여행기, 등반기에 관한 책은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티베트, 네팔, 인도, 중국, 동남아, 태국, 스페인, 라오스, 미얀마 등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떠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간접경험으로나마 달랠 수밖에는 없었다. 때로는 유튜브에 올린 히말라야 트레킹과 관련된 영상을 보기도 하였고, ‘다시 보기’를 통해 여행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시청하기도 하였다. 

무료하다고 여겨질 때는 넷플릭스에 접속한다. 그중에서도 내가 선호하는 것은 공상과학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무협 이야기의 중드(중국 드라마)다. 어쩌면 가장 비현실적인 콘텐츠 들일 것이다. 우주선을 타고 미지의 세계로 간다든가, 낯선 행성에서 겪는 설정들은 가장 비현실적인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지금의 현실과 닮아있다. 닫힌 공간에서의 사건들로 이어지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공간이 아님에도 우리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 다른 세계와의 연결은 주로 온라인으로 대신한다. 그저 의례적으로 “좋아요”를 클릭하고, 영상과 글을 스크롤하고, 세상을 곁눈질한다. 그나마 이런 네트워크도 가능하지 않았다면 묵언 수행하는 구도자와 무엇이 다를까?     

2020년 11월


    6. 세계와 접속을 시도하며

  오늘은 소도시를 우회하면서 산책을 했다. 아파트 뒷문을 나와 걷다 보면 향교의 누각과 외문(外門)의 역할을 겸하고 있는 풍화루가 보인다. 풍화(風化)란 낱말에서 나는 도교적인 느낌과 허무의 냄새를 맡는다. 향교를 지나면 곧바로 법계사(法界寺)가 보인다. 법계(法界)는 열반과 해탈의 세계를 뜻하는 말일 텐데, 코로나 19가 잠식한 속세에도 어디엔가 자리하고 있을까? 걸으면서 내가 사는 세계와 사물들이 은닉하고 있는, 보여주지 않는 비밀들을 탐색하듯 거리 이곳저곳을 세세하게 바라본다. 그러나 한적한 거리, 불 꺼진 집들로 이어지는 길들여진 풍경과 사물들은 내게 말을 건네지 않는다.    

  세탁소를 지나면 순댓국집, 닭집, 기름집, 칼국숫집이 이어지고 길을 건너면 시장터로 접어든다. 시장 입구에는 늘 할머니들의 좌판과 과일 가게, 생선 가게, 반찬 가게, 건어물 가게가 늘어서 있다. 이제 봄이 멀지 않은 탓인지, 냉이와 달래가 좌판마다 널려있다. 털이 모두 뽑힌 채 엎드려 있는 생닭, 허옇게 종아리를 드러낸 무, 한 두릅의 마른 생선을 나는 경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이 질펀한 시장터에서 나는 내가 사는 세계와 접속을 시도한다. 나의 뿌리가 이 땅의 현실과 맞닿아가기를 희구한다.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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