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이드가 씁니다
미취학 아동을 벗어나 처음으로 들어간 학교에서 가장 먼저 사귄 친구는 같은 아파트 바로 옆 동에 살던 귀여운 여자애였다. 이름은 가물가물하지만 그가 공주처럼 분홍색과 치마, 레이스와 리본을 좋아했다는 사실은 기억이 난다. 실제로도 부족함 없이 사랑받은 공주님처럼 딱히 미운 구석이 없었다. 미미와 바비를 가지고 놀면서 자란 여자애라면 누구든지 공주가 되기를 꿈꾸기 마련이고 나도 그중 하나였는데, 안타깝게도 우리 엄마는 공주풍 드레스보다 엄마 눈에 예쁜 캐주얼한 옷들을 주로 사 입혔다. 그런 부분에선 공주 같은 그 친구가 조금 부럽기도 했고 그래서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집 방향이 같아 자연스럽게 우리는 가장 베프가 되었고, 등교는 가끔 우연이 허락할 때만 함께 했으나 하교는 매일 꼭 같이 했다. 늘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수다를 떨다가 각자의 집 중간에서 아쉽게 헤어졌다.
그 당시 대부분의 초등학교들은 실내화가 들어있는 실내화 주머니를 가지고 다녔다. 자라나는 사회 구성원들이 다수가 정한 법을 따르는 데 익숙해질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학교의 역할이었다. 기본 중의 기본 규칙으로 건물 안에서는 반드시 실내화를 신어야 했고, 건물 밖으로 나가려면 실외화로 갈아 신어야 했다. 이는 학년 무관 엄격하게 지켜졌다. 실수로라도 실내화를 가지고 오지 않으면 건물 입구에서 지도 선생님께 한 번 혼나고 반에 들어가 담임 선생님께도 혼이 났다. 어린이의 실내화는 금방 더럽혀지는 것이 당연지사, 일주일에 최소 한 번은 갈아 신어야 했으므로 그 시절 어린이들은 실내화 주머니 한 개에 실내화 두 켤레를 가지고 있는 것이 국룰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시류를 탄 많은 의류 브랜드들이 책가방 하나와 비슷한 디자인의 실내화 주머니 하나를 세트로 내놓았고, 그래서 실내화 주머니를 여러 개 가지고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나는 혼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기 때문에, 그리고 두 번 연속으로 혼나는 건 더 싫었기 때문에 다른 건 다 잊어도 실내화 주머니만은 꼭 챙겨 다녔다.
여느 날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그 여자애와 손을 잡고 나란히 하교를 하고 있었다. 나는 내 실내화 주머니를 오른손에, 친구의 손을 왼손에 쥐고 있었고, 그 애도 똑같이 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실내화 주머니는 맞잡은 손 중간에 대롱대롱 걸려 있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이야기가 즐거워 그를 집 앞까지 데려다줘야겠다고 결심하며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르는데 멀리 주차장에서 "누구야~"하고 친구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애는 곧바로 "엄마!" 하며 내 손과 자신의 실내화 주머니를 뿌리치듯이 놓았다. 급히 "안녕!"을 외쳤지만 그는 듣지 못한 듯했다. 더 수다를 떨지 못해 아쉬웠지만 어디 맛있는 걸 먹으러 가거나 백화점이라도 가려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집에 왔다.
저녁에 그 애의 분홍색 실내화 주머니를 돌려주러 가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다가, 그 애가 색이 조금 다른 두 켤레의 실내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친구가 내일 아침 학교에서 신지 못해 선생님들에게 혼날 일을 없을 것이었다. 그래도 혹시 실내화 주머니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해 불안해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 내일 만나자마자 최대한 빠르게 실내화 주머니를 전해줘야겠다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하루가 길게 느껴졌다.
다음 날 학교에 가보니 나는 도둑이 되어 있었다. 우연이 도와주지 않아 등교하는 길엔 그를 만나지 못했다. 뭐라고 말하면서 돌려줘야 아무렇지 않게 친구를 안심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며 걸음을 빨리 했다. 계단을 두 칸씩 오르고 거의 뛰다시피 복도를 지나 반에 들어갔고,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그 애를 찾았다. 금방 양갈래 묶음을 한 그 애의 뒤통수를 발견했고 "누구야!"하고 부르며 실내화 주머니를 내밀었는데 그는 나에게 말 한마디 할 틈도 주지 않고 울 것 같은 얼굴로 나를 째려보며 실내화 주머니를 휙 채갔다. 예상에 없던 시나리오였다. 어쩐지 그가 화난 것처럼 보여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속으로 눈치만 보고 있는데 아침 조례가 시작됐고 담임 선생님이 들어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30대의 담임 선생님은 체벌을 최소화하면서 아이들에게 겁주는 법을 아는 숙련된 교사였다. 그에게는 지름 1cm, 길이 30cm 정도의 나무 회초리가 있었고, 그는 그것이 본인의 주 무기인 '엑스칼리버'이며 되도록 사용하지 않게 주의하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무시무시한 '엑스칼리버'로 손바닥을 맞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했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학급 아이들은 선생님이 그것에 손을 가까이 뻗을 때마다 긴장하곤 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그는 아무리 말썽을 피우는 애들이라도 플라스틱 자로 손바닥을 몇 대 때리는 방식으로 체벌을 했는데, 그날은 달랐다.
선생님은 등장하자마자 무서운 얼굴과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며 앞으로 나오라고 지시했다. 모든 친구들의 이목이 집중 됐고, 나는 어리둥절하면서도 왠지 불안한 마음으로 선생님 앞에 섰다. 선생님은 서 있는 나를 두곤 '엑스칼리버'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고, 설마는 현실이 되었다. 그는 엑스칼리버를 꺼내 든 채 "왜 친구의 물건을 훔쳤냐"라고 엄한 목소리를 물었다. 질문부터가 이미 잘못되어 있었다. 훔치지 않았는데 왜 훔쳤는지 설명하라니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당황스럽고 억울해 그 여자애를 돌아봤지만 그 애는 이미 엎드려있었고, 80개의 눈이 온통 나에게 쏠려 있었다. 나름 모범생인 내가 죽기보다 싫은 야단을 공식적으로, 심지어는 엑스칼리버로 맞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수치스러움과 두려움에 질려버렸고 나도 모르게 목이 막히며 눈가가 뜨거워졌다. 선생님은 내가 친구의 신발주머니를 훔쳐 친구가 실내화를 가져올 수 없었고 덕분에 이미 크게 혼이 났다고 말씀하시며 나에게 큰 목소리로 "친구의 물건을 훔치지 않겠습니다"를 삼창 하도록 명령했다. 도무지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데 시간은 자꾸 흐르고 분위기는 점점 가라앉았다.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지 혼란스러워 내내 울음을 참기만 하다 결국 1교시가 시작되기 직전에야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친구의 물건을 훔치지 않겠습니다"를 세 번 외웠고 엑스칼리버로 손바닥을 다섯 대쯤 맞은 후 반성문까지 숙제로 받은 후에야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손바닥과 눈시울이 얼얼해 주먹을 꽉 쥐고 고개를 축 숙인 채 침만 삼켰던 기억이 난다. 난 그냥 실내화 주머니를 나에게 맡기듯 놓고 간 걸 보관하다가 돌려준 건데 그 애는 어제 일이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아니면 자신이 혼난 걸 내 탓을 하고 싶었던 걸까? 대체 선생님께 말을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됐을까? 신발주머니가 없는 것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였다면 혹시 내 신발주머니가 어딨는지 아냐고 우리 집으로 전화를 걸어 물어보면 됐을 텐데. 내가 왜 신발주머니를 '훔쳤다'라고 생각했을까? 내 얘기도 들어봐야 하지 않나? 한 학기 내내 제일 친하게 지낸 친군데 나를 믿지 못했나? 담임 선생님은 왜 나에겐 말할 기회를 주지 않은 걸까? 꼭 전부가 보는 앞에서 나를 혼냈어야 했나? 게다가 아무것도 진실이 아니었는데? 둘은 왜 그랬을까? 그 애와 선생님을 원망하느라 하루종일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엄마한테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엄마는 담임 선생님의 훈육을 매우 존중했고, 왠지 엄마가 내 편이 아니라 담임 선생님의 편을 들어줄 것 같아서 그랬던 것 같다. 반성문을 써야 했는데 일어나지도 않은 도난 사건을 지어낼 수도 없어서 아무튼 죄송하고 반성하고 있다고 썼다. 다른 친구들도 오해할까 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1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고, 여름 방학이 지나고 2학기가 시작되자 마치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 친구랑은 자연스레 멀어졌고 더 이상 쉬는 시간에 담임 선생님께 찾아가지 않았으며 해가 끝날 때까지 엄마한테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후로도 말을 하지 않고, 눈을 피하고, 조용히 방으로 기어들어가는 일이 반복됐다.
인간은 어지러운 감정선과 이해관계로 인해 종종 다른 이와의 믿음과 의리를 저버리며 때론 돌아서기까지 한다.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구조를 가진 플롯과 유사한, 인간관계의 수많은 사건과 용의와 오해, 배반과 복수, 그리고 허탈함은 인간이 복잡하게 생각하고 몇 수 앞까지 예측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에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난다. 마치 자연재해와 같다. 그리고 위험의 본격적인 시작은 '위기'를 담당하고 있는 배반에서 일어난다. '위기'로 진입하면 무슨 짓을 해도 되돌릴 수 없다. 그것들은 대체 언제 생긴 건지 알 수 없는 멍처럼 사소하게 스칠 때도 있고 뼈가 부러지는 것 마냥 선명하게 충격적일 때도 있다.
아홉수 미신이 괜히 생긴 게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올해 여러 종류의 위기들을 집약적으로 겪고 있다. 사실 상담 선생님과 대화를 나눠보기 전까진 그것들의 십중팔구가 배반의 경험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안정적인 관계는 장미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롭다. 그러나 애지중지 잘 말려 간직할 수 있는 장미가 있는가 하면 때론 커다랗고 야생적인 가시를 숨긴 장미도 있다. 타인은 애초에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본인들만의 사정들로 말미암은 크고 작은 배반의 행동들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존재할 것이고 때론 오해일 여지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해가 된다 한들 남겨진 자의 맨손엔 새삼스러울 정도로 생생하게 날카로운 가시를 붙인 장미들이 들린다. 이것들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장밋빛 안정감에 방심하고 주먹을 꽉 쥔다. 그럼 그저 장밋빛 피가 맺히는 작은 구멍 혹은 피가 줄줄 흐르는 쭉 찢어진 상처만 남는다. 이유를 불문한 인간관계에서의 위기는 대부분 흉이 지는 상처를 낸다는 것만 깨달았다. 지금껏 쌓아왔던 타인에 대한 기대와 예측이 또다시 미지의 영역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친다. 나는 한 발자국 더 깊은 동굴로 숨어든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그래도 앞으로 닥칠 위기에 대해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는 걸 배워야 할 텐데 평범한 인간인 나는 분하게도 같은 실수를 거듭할 것이다. 다행히 언젠가는 동굴에서 빛으로 나올 것이나 또다시 핏빛 장비를 손바닥에 꼭 쥐고 그 안에 코를 묻으면서 그 향기에 취하려 애쓰겠지. 노력이 가상하지만 피를 흘리는 일이 당연하다는 것만, 동굴 속에 훨씬 안전하다는 것만 재차 확인하게 될 터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굳은살이 생기고 어둠에 적응하게 되어 조금씩 의연해질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안심시켜 봐도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안타까운 꼴을 더 보게 될 것임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