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킬이 씁니다
얼마 전 사랑하는 친구 안이 나에게 신이 존재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신이 있다면 세상이 이렇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생각해 본 적이 없다"라고 답했다. 통화 이후 그가 보내준 유튜브 동영상에서 통찰을 얻어 이 글을 쓴다.
언젠가부터 세상에는 이미 정해진 '운'이 있으며 그것이 착착 들어맞음을 경험해 나가는 것이 생활이자 우주의 규칙이라고 생각했다. 결과에 상관없이 법칙이 일관성 있게 지켜질 때, 신기함을 느낄 때 '운이 좋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고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몇 가지 예시가 있다면 다음과 같다. 신기하게도 나는 96년도 6월에 태어났고, 동생은 98년도 8월에 태어났다. 인간은 태어난 해의 마지막 자릿수와 같은 월에 태어나는 게 틀림없었고, 그 사실을 알아낸 것이 짜릿했다.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 처음으로 좋아했던 남자애의 영어 이름은 내 영어 이름과 같이 A로 시작했고, 덕분에 그와 짝꿍일 수 있어 늘 손을 잡고 다녔다. 가장 먼저 사귄 친구는 나와 키가 비슷해 키 순으로 줄을 서야 할 때마다 공식적으로 붙어 있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보니 대부분 쥐띠였고 나처럼 작고 보잘것없는 동물을 띠로 가진 사람들이 모이게 되어 안심이라 생각했다.
제일 친한 친구는 이름에 나와 같은 글자를 공유하고 있었으며 걸어서 우리 집에서 10분이 채 안 되는 거리에 살아 매일 함께 등교하고 하교할 수 있었다. 꽤 자주 좋아하는 애랑 가까이 앉았고, 가장 좋아했던 담임 선생님은 꼭 나에게 제일 먼저 칭찬받을 기회를 주시는 것 같았다. 찍어 맞춘 문제들 덕에 성적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나는 숫자 7을 가장 좋아했는데 내 이름 석자의 각 획을 세어보면 777이다. 랜덤으로 주어지던 핸드폰 앞자리 숫자들은 얼버무려 읽으면 단어가 되었다. 내 첫 핸드폰 번호 앞자리는 5192였다. 한글로 읽으면 오일구이가 된다. 네 자릿수 이상의 숫자라면 도저히 외우기 힘든 나를 위해 주어진 번호 같았다. 중학교 점심시간 가끔 교정을 탈출했을 때 한 번도 붙잡히지 않았고, 웃기게도 사귀었던 남자애들이 학교 축제 무대에 함께 오른 일이 있어 두고두고 재미난 이야깃거리로 써먹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초등학교 때 친해지고 싶었던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고, 3년 내내 주요 과목 선생님들이 반 담임을 맡았다. 수능 고사장은 현역, 재수 모두 가까운 학교로 배정되었다.
사귀었던 사람들과는 죄다 특별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들은 알기도 전에 같은 학원 같은 반이었고, 우연히 함께 어울리던 친구의 교회 동생이기도 했고, 초등학생 때 같은 반이기도 했으며, 동기의 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서로를 알아차린 이후에도 그럴듯하게만 쓰면 꽤 인기를 끌 드라마 스토리 같은 사연으로 이어졌다. 한 명을 제외하곤 이름들도 모두 특별했다. 쓰고 보니 꽤 많다. 더 나열할 수도 있다. 묘하게 짜인 각본 같은 인생이었고 앞으로도 아마 그럴 것이다.
인간은 종종 신에게 '기적'을 바란다. 운이 좋기를 기도한다. 시험에 합격하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사귈 수 있기를, 취업에 성공할 수 있기를, 사랑하는 이가 아프지 않기를, 큰돈을 벌 수 있기를, 실패가 아닌 성공을 안을 수 있기를 바라고 기도한다. 운명론자로서 나는 한 인간의 시간이란 빈틈없이 짜인 한 폭의 태피스트리에 불과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신에게 기도한다고 바뀌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신이 현존하고 그가 수많은 기도의 일부라도 듣고 있다면 세상엔 이미 기도할 일이 없어졌을 것이다.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0으로 수렴하는 차가운 우주의 균형만이 세상을 지배한다. 기적은 없다. 없던 행운이 생길 순 없다. 운이 더 좋아질 순 없다. 그런데 나는 운이 좋다. 정말 운이 좋은 건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안과 통화하던 나는 어김없이 분노에 차 권선징악을 외치며 세상을 원망하는 지경까지 비관에 파묻혀 악을 쓰고 있었다. 요즘 그와 나는 비슷한 불행 위에 놓여 있는 듯했고, 그래서인지 그와 대화를 나누게 되면 자연스레 자주 현재에 대한 비판과 한탄을 하게 되었다. 듣던 중 안은 나에게 신이 존재하느냐고 물었고 곧 유튜브 링크를 하나 보내주었다.
모든 문장이 의미 있었지만 줄이고 줄여 내용을 요약하자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내용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짜인 운명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도, 딛는 길이 이미 정해진 것이라도, 짜여 있지만 예측하지 못해 좌절스러워도, 결말이 좋고 나쁨을 떠나 운명이, 삶이 주어진 것 자체가 기적이다. 기적 안에 살면 기적처럼, 운이 좋게, 운명적으로 진짜 기적을, 행운을, 운명을 발견하게 된다.
운은 그저 가려고 한 길 옆에 놓인 이름 모를 풀과 비슷하다. 풀의 기능이 어떠하든 그 자리에 그 풀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 어떤 의미를 두고 이름을 주면 그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 되고 때론 업적이 된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는 말도 유사한 맥락이다. 찾으려 하면 보이고 구하려 하면 잡히는 것이 운이고 더 나아가 행운이 된다.
글의 제목은 롤 챔피언 트위스티드 페이트(twisted fate)의 캐릭터의 대사에서 따왔다. "내가 운이 좋다고? 이건 운명이야!" 꼬여버린 인생을 이름으로 가진 자가 할 법한 대사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운이 좋고 나쁨을 정하는 이는 결국 자신임을 안다.
'결과에 상관없이' 법칙이 일관성 있게 지켜질 때, 신기함을 느낄 때 '운이 좋다'라고 생각했다고 썼다. 그 누구에게도 운명적인 실패는 없다. 운명적인 추억만 있다. 위에 나열한, 운명적이라고 생각했던 사건들도 결국은 나의 선택적 기억력에 의거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일들을 멋지게 맞추어 낸 회고록이었다. 지나온 삶이 바로 기적, 앞으로도 영원히.
이 글을 빌어 매번 물 먹은 솜처럼 무력한 기분만 안겨주는 나에게 공감해 주고 위로를 해주는 안의 수고에 감사함을 전한다. 대부분은 그가 듣는 쪽이었던 터라 내가 안고 있는 감정이 무거워 자꾸 그에게 짐을 지웠다. 항상 감사하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