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킬이 씁니다
사실 adhd 덕분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 어렸을 때부터 ahdh라는 키워드를 들어왔고, 그 뜻이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라는 것을 안 순간부터는 집중력이 떨어지고 급발진하듯 불쑥 나대게 되는 나도 어쩌면 adhd 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왔다. 학부모들이 참관하는 수업에서 당최 집중하지 못하고 결국 혼자 꾸벅꾸벅 존다거나, 성장기에 접어들어 불쑥 길어진 팔다리가 낯설어 급발진하듯 휘둘러 스스로 상처를 입힌다거나, 갑자기 앞에 있는 정체불명의 빨간 버튼을 누르고 싶어 안달을 내다 어쩔 수 없이 눌러 버리곤 긴급 출동한 경찰에게 혼나는 식이었다. 관심 있는 과목과 없는 과목의 점수 차가 크게 났고, 앞에 선 사람의 얘기가 지루해지면 바로 시야가 흐려졌다.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눈알을 굴리고 다리를 떨었고, 계획이 아니라 의식의 흐름대로 생활했다. 하기 싫은 일을 할 땐 시간이 기어가듯 흘렀고, 흥미가 돋는 일을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을 지새웠다.
사춘기를 지나 호르몬 분비가 잠잠해지고 경험의 짬이 쌓이자 이전보다는 내 행동을 통제하기가 수월해졌다. 여기서 행동이라 함은 단순히 손발가락을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부터 어떤 일을 실행하는 것까지의 모든 활동을 뜻한다. 불쑥불쑥 adhd적인 특성이 튀어나왔지만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과 인생에 대한 책임감을 키우는데 집중하는 중이었으므로 일상은 어찌어찌 크게 망가지지 않고 이어졌다. 곧 adhd라는 단어는 뇌리에서 사라졌다.
어느 날 친구들과 알딸딸하게 술을 마시고 있던 중, 순 님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스토리를 보게 되었다. 순 님의 본업은 작곡, 이 외에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함께 있으면 절로 똑똑해지는 느낌이 들게 하는 보이는 라디오 그 자체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adhd를 가지고 있는 것 같으면 답장 주세요!' 술을 마신 상태라 충동성이 더 올라가서 그랬을까, 바로 '저요'하고 답장을 보냈다. 그는 바로 지역구 청년 모임 활동 모집 포스터를 보내왔다. 그는 adhd를 가진 창작자들을 모아 그들이 adhd를 질병이 아닌 개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야기와 글을 나누는 모임을 만들고 싶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나는 adhd 진단도 받지 않았고, 창작자도 아니었지만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의사를 표했다. 곧 나는 모임 단톡방에 초대되었다.
며칠이 지나 우리는 첫 모임을 갖게 되었다. 나를 제외한 5명은 작가, 작곡가, DJ, 사진작가 등 프리랜서로서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탄력 근무를 하고 있긴 했지만 유일하게 시간에 묶인 직장인은 나뿐이었다. 나와 다른 한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가 adhd 진단을 받아 '콘서타'를 처방받고 있었다. 나는 '창작자'와 'adhd'라는 키워드 중 어느 한 곳에도 속해 있지 않았지만, 두 가지 다 알아가고 싶은 영역이었으므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서로 간단한 자기소개를 한 후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Adhd라는 정체성으로 글을 쓰고 가능하다면 독립 출판까지 해보는 것이 순님이 제출한 기획서의 내용이었기 때문에 그날은 주제와 책의 형식을 정해야 했다. 하지만 각자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도 모자라 자꾸 다른 사람의 말을 이어받아 개그로 받아치거나 의식의 흐름대로 댓말을 덧붙여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모이는 바람에 장장 세 시간 동안 그럴듯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팀장 역할을 했던 순 님은 하루에 적어도 두 번씩은 "우리가 adhd를 가지고 있어서 이런 건 아니다"라고 농담을 했다. 드디어 관객 없는 6명의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이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나 싶을 땐 꼭 누군가가 음료, 화장실, 흡연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목적의식을 가진 adhd 인간들은 결국 해내고 만다. 일곱 가지 주제를 정했고, 나머진 다음에 하자며 헤어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모임은 'adhd 모임'이 아니라 '죄송합니다 모임'이 되었다. 모든 이가 매번 제시간에 완성된 글을 제출하지 못했다. 제시간에 모임 장소에 도착하지도 못했다. 이 날은 순 님이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긴 카톡을 모임 장소로 향하는 길 위에서 읽어버린 날이었는데 이미 예상 10분 이상 늦어버린 나는 그의 글을 읽지도 않고 사과의 답장을 보냈고, 헐레벌떡 도착하자마자 과장된 90도 인사와 "늦어서 죄송합니다!"를 박으며 회의실 문을 열었다. 20분 정도 늦은 때였다. 고개를 들었는데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순님이 보낸 장문의 카톡은 그냥 그가 그의 글을 마감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제출한 것이었다. 나는 웃으며 커피를 사러 나왔다.
얼렁뚱땅 모임이 이어졌고, 유야무야 글쓰기도 이어졌다. 처음에는 미친 듯이 글 쓰기에 집착해 잠도 자지 않고 아주 긴 글을 제시간에 제출하던 나였지만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 주제가 이어지면서 점점 글이 밀렸다. 일곱 개의 주제를 선정했지만 마지막에는 다섯 개의 글을 제출하는 것으로 순님이 정했고, 마감일까지 버티고 버티다 끝내 회사 워크숍 자유 시간에 허겁지겁 글을 써냈다. 후에 그중 세 개의 글을 정리해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고, 아래 네 개의 글을 발행할 수 있었다.
https://brunch.co.kr/@hyepari/2
https://brunch.co.kr/@hyepari/4
https://brunch.co.kr/@hyepari/5
https://brunch.co.kr/@hyepari/3
순 님은 아직 진단받지 않은 나에게 "앨리스는 글만 봐도 백 퍼센트니 꼭 병원에서 상담을 받아봐라"며 농담을 하고선 한 번에 여러 가지 생각을 펼쳐 놓고 정신없이 튀어 돌아다니는 문장들이 개성 있으니 꼭 글쓰기를 이어가라고 말해주었다. 덕분에 재미를 느껴버린 adhd 환자는 작은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꾸준히 글을 쌓아서 책을 만들어야지! 나에겐 완벽하게 들어맞았던 모임을 기획하고 이끌어준 그의 의지와 추진력에 한 번 더 감사를 전하고 싶다. 덕분에 내 삶이 조금 더 윤택해졌으므로 그도 조금은 뿌듯하길 바란다. 다음엔 얼마 되진 않았지만 본격적으로 adhd 환자로 각성하게 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