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무서워도 참아볼게
#52 풍선
어쩌다 이 세상엔 풍선이란게 생긴걸까?
얇은 고무 막에 바람을 불어서 동그랗게 만들고, 그걸 또 묶어서 띄워놓는 것이 대체 무슨 효용이 있단 말인가? 물론 나도 안다. 효용은 존재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을. 공기를 싸고있는 그 고무막을 보고 사람이 재미와 흥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논리적으로만 따진다면 세상에 모든 물건은 존재할 가치가 있을테다. 하지만 나는 다소 비논리적인 이유로 풍선을 싫어한다. 난 풍선이 터지는 게 싫다.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큰 소리를 내며 터져서 재사용조차 불가능한 뭔가로 찢어 흩어지는 것이 싫다.
풍선이 터지는 것을 두 번이나 겪는 날이 있었다. 으레 이벤트라는 것을 준비하다보면 그렇게 된다. 성당에서 크리스마스 행사를 준비하던 때에도 벽에 풍선을 붙이다 보면 종종 풍선이 터졌다. 아니, 풍선에 테이프를 붙이면 바늘로 뚫어도 잘 안터진다더니 이건 대체 왜 살짝 만지기만 해도 터지는 겁니까?ㅠㅠ
결국 오늘은 귀를 한참 막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소리는 하찮게도 작게 터졌다. 폭.
이런 내게도 어린 시절 가장 사랑하던 풍선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라이온킹 심바 풍선.
으레 놀이공원에 가면 은박으로 만들어져서 캐릭터가 프린트된 그 '헬륨풍선' 말이다. 대여섯살 무렵의 나는 그 풍선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집에 가져와서 살펴보고 안아주고 거실에서 같이 뒹굴곤 했다. 질소 풍선이라 주로 거실 천장에 머리를 붙이고 쉬던 심바는, 어느 날 바깥 외출을 함께 나가다가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빨려들어가 사라져버렸다. 바닥에 내려놓을 때 쓰라고 달려있던 작은 쇠조각도 함께.
너무나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순간이어서 몇날 며칠을 심바 풍선을 찾으며 울었다. 풍선을 새로 구해주겠다는 달램도 소용 없었지. 내가 사랑한 심바 풍선은 그 풍선 하나 뿐이었다구요. 그리 허망하게도 좋아하던 것을 잃은 경험이 아마 처음이었을 거다. 그때부터였을까요, 제가 삐뚤어지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풍선 터지는 상황에 대해 공포심을 가지게 된 것은, 나의 심리적인 문제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내가 공포심을 느끼는 뭔가에 대해서 쓰는 것도 조금은 불쾌하다.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에 당당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고 했지. 터지는 풍선은 싫지만 모여있는 풍선을 보면 나도 즐거움을 느낀다. 때론 그런 풍경 자체가 안정감을 주기도 하니까요.
물론 쉽게 터져버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불안함이 완벽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어쩐지 풍선이 모여 어딘가에서 바글거리는 모습을 보면 꽤 귀엽기도 하다. 작년 10월 제주에서 본 어떤 광경처럼.
여행 중 그런 일이 있었다. 해안도로 구경을 갔는데 근처에서 축제를 하더라. 축제를 기념하며 대형 풍선을 잔뜩 날리려는 듯한 상황이었다. 친구들과 멈춰서서 환경오염을 걱정하는 찰나,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여러분, 하낫 둘 셋 하면 풍선을 힘껏 흔드시면 됩니다. 날리는게 아니구요.
요즘 환경오염 때문에 풍선을 이렇게 많이 하늘로 날려보내면 좋지 않습니다.
물론 멀리 날리면 보기에 예쁘겠죠. 그래도 네, 조금은 덜 예쁘지만 힘껏 흔들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그러면, 하나 둘 셋
우린 사회자의 멘트를 듣고 안도했다. 지는 해를 향해 뒤돌아섰는데, 어떤 풍선 하나가 홀로 길을 떠나버렸다. 그 풍선은 자신도 모르게 떠내려 왔는지, 아니면 그 순간에서 도망쳐버린 건지. 파란 하늘의 그림같이 흘러가는 노랑 풍선을 보며 어쩐지 벅찬 마음도 잠시였다. 어휴, 저건 또 어디로 가서 어떻게 치워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