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네 엄마로 살래
네 진심이 내게 닿은 날,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너의 목표는 나를 울리는 거지만
나의 목표는 네가 다치지 않는 거야.
'다시 태어나면~'이라는 주제로 주변 지인들과 종종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럴 때마다 여러 말들을 쏟아냈는데,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대부분 영양가 없는 소리였나 보다. 그런데 결혼하지 않은 노총각, 노처녀의 입장을 대변해서 만큼은 초지일관했던 말이 있다.
"다시 태어나면 나는 결혼 안 해. 능력 갖춰서 혼자 사는 게 장땡이야."
"그래, 뭐 하러 결혼하냐. 그냥 편하게 하고 싶은 거만 하며 사는 게 최고지."
우리는 농담 반 진담 반을 섞어 이런 말을 했지만, 내 안에 진짜 나는 안다. 이것은 새하얀 거짓말이라는 것을! 앞으로는 농담이라도 이런 말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다시 태어나도 반드시 결혼해야 하는 이유.
그것을 깨달은 순간을 떠올려 본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야구선수의 길을 걷고 있는 아들,
그런 아들이 근래에 들어 보기 드문 경기를 펼친 어느 날이었다.
대회 타이틀은 태백시장기. 태백산의 정기를 받아 1차전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바로 다음 날 2차전이 열리는 날이었다. 강팀을 만나 처절하게 깨질 거라 예상하며, 어른들은 경기 마치고 집으로 내려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스코어는 1:1 아이들은 팽팽하게 접전 중이었다.
5회 말이 되자 아들이 투수 베이스를 밟았다. '하필 이런 순간에 올라가다니' 경기의 승패는 내 아이가 던지는 공에 달려있었다. 믿고 보는 투수였으면 좋았겠지만, 사실 아들의 야구 실력은 그리 월등하지 못하다. 하고자 하는 의지와 집념으로 한 계단씩 천천히 올라가는 중이었고, 여전히 깨어짐을 경험하는 과정에 있었다. 부모 입장에서 볼 땐 여기까지 온 것도 대견하지만,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 들어선 이상 결과를 만들어 내야 했기에, 늘 안타깝고 조마조마한 마음을 숨길 수는 없었다.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하며 경기를 지켜보는 데 어찌어찌하여 실점을 막아냈다. 하지만 문제는 6회 말이었다.
6회 말만 무사히 넘기면 되는데, 초반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공을 놓치는 바람에 1, 3루에 주자가 들어섰고 감독님은 최대 강수를 두었다. 고의사구를 내어 만루 상황을 만든 것이다. 게다가 아웃 카운트를 하나도 못 잡은 무사만루...! 어른들은 심장이 쫄깃쫄깃했고, 내 심장은 쪼그라들다 못해 콩알만 해졌다.
프로 선수들도 멘털을 잡기 쉽지 않은 상황이 펼쳐진 것. 여기서 자칫 잘못하면 내 아이는 역적이 되고, 나는 죄인이 된다. 이대로 경기가 종료되면, 부모님들께 뭐라고 말할까? '어휴 내 저럴 줄 알았다.'라며 덤덤한 척 태연하게 농담해야 하나, 아니면 진지하게 사과를 해야 하나. 달달 떨며 대안을 궁리 중이던 못난 엄마와는 달리, 생각 외로 아이는 덤덤해 보였다. 침착하게 공을 던졌고, 내 아이의 공 하나에 어른들은 응원과 염원을 담아 환호성을 질러댔다. 두 번 연속 삼진을 잡아내자, "와~~!!", "이제 됐다!!", "잘한다!!" 여기저기서 큰 목소리가 터져 나오며 응원 열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마지막 공 하나가 공중으로 붕 떴고, 중견수가 깔끔하게 잡아내며 6회 말, 무사 만루를 무실점으로 막아낸 것이다.
선수들, 감독님과 파이팅을 하며 베이스를 내려오던 아이가 문득 내 얼굴을 쳐다본다. 아마도 십 년은 훅 늙어버린 얼굴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주책맞게도 두 눈에 촉촉이 물기가 차오른 상태였다. 추한 내 몰골을 아들이 볼까 봐 황급히 정신을 차려 덤덤히 웃어 보였다. 이어진 연장전에서 우리 팀 선수가 안타를 쳤고, 끝까지 막아내며 경기는 승리로 끝났다. 역대급 경기를 펼친 후 박수 세례를 받는 아이들의 인파 속에서, 아들이 당당히 걸어와 나에게 말을 건넸다.
"엄마, 혹시 울었어?"
"아니."
"거짓말."
"울지는 않았고, 울 뻔했어."
"그럼 실패네"
"???"
자신의 엉뚱한 말에 어리둥절해하자, 얼마 전 중학생 형들의 경기를 보았던 일을 떠올리며, 그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
"중학교 형들 경기 보러 간 날 있잖아. 그날 oo 형이 팀 위기 상황에 홈런을 쳤을 때, 내 옆에 그 형 엄마가 앉아있었거든. 얼굴을 보니 펑펑 울더라고. 그때, 다짐했어. 나도 언젠가 엄마를 펑펑 울리겠다고! 그게 내 목표야."
아들의 그 말에 또 울뻔했다. 갱년기를 의심해 봐야 할 타이밍인가...
겨우 참아내며 나도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멋진 놈. 다시 태어나도 네 엄마 해야겠다.'
'내 입장에서 보면 다시 태어나 또다시 이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건 심각하게 고민해 볼 문제지만, 이런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고 싶었다. 아이는 언젠가 멋진 플레이를 펼쳐서 나를 펑펑 울리는 게 목표라지만, 내 목표는 아이가 큰 부상 없이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운동하는 것이었다. 사춘기다 뭐다 흘려버릴 수 있는 지금 이 구간을 하고 싶은 것에 몰두하며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아주 멋지지 아니한가. 솔직히 말해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 지금 이대로도 꽤 괜찮은 삶이니까.'
내 삶에 대한 평가는
살아 있는 동안만 내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먼 훗날, 또는 긴 역사 속에서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서
내 스스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활동으로
내 삶을 채우는 것이 옳다.
내가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살자.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도 얽매이지 말자.
내 스스로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꼭 그만큼만 내 죽음도 의미를 가질 것이다.
-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