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하는 일
공무원은 무슨 일을 할까. 현직 공무원임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직원을 본 적이 있다. 당황스러웠지만, 나도 막상 ‘공무원은 이런 일을 합니다’라고 쉽게 설명하려니 막연했다.
원론적으로 공무원은 공적인 업무를 수행한다. 특정한 개인이나 특정한 기업의 사익을 위해 일하지 않고 국민과 국가의 공익을 위해 일한다. 그리고 정부의 일을 한다. 중앙정부의 사무는 그 범위가 너무나 방대하고, 다양하다. 이 책에 모두 소개할 수는 없다. 몇 가지 사례만 간략하게 살펴보자. 기획재정부는 경제정책 방향 수립, 국가 발전 전략 수립, 정부 회계, 국가 채무, 거시경제 운용, 조세정책, 예산 편성 등의 업무를 다룬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감염병 예방․관리, 국민의 기초생활 보장, 국민연금, 저출산․고령화 대응 등의 업무를 다룬다. 고용노동부는 취업 촉진, 직업능력 개발, 고용보험, 노동자의 복지후생, 노사 협력 증진, 산업안전보건, 산업재해 등의 업무를 다룬다.
업무의 유사함으로 묶은 공직 분류를 살펴보면, 행정직 외에 세무직, 관세직, 통계직, 교정직, 보호직, 검찰직, 마약수사직, 출입국관리직, 공업직, 농업직, 임업직, 시설직, 전산직 등의 직렬이 있다. 행정직은 일반적으로 모든 부처에 근무할 수 있지만, 그 외 직렬의 경우, 세무직은 국세청, 관세직은 관세청, 교정직․보호직․출입국관리직은 법무부, 검찰직․마약수사직은 검찰청과 같이, 어느 정도 정해진 부처에서 일하게 된다.
9급 공채생은 중앙정부에서 어떤 일을 할까. 앞서 예시한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일에 있어 9급 공채생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국민의 선택을 받아 권한을 위임받은 대통령, 중앙정부 행정기관, 국회가 주요 정책을 공식적으로 결정하고, 공채생은 주로 그 정책을 집행하는 데 업무 역량을 투입하게 된다. 중앙정부 행정기관의 7․9급 공채생은 주로 행정고시 출신 5급 사무관의 업무를 지원하거나 전국 각지에 위치해 있는 해당 부처의 지청(支廳)이나 일선기관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경우, 최저임금 인상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에서 ‘일자리 안정자금’ 사업 시행을 시작한 바 있다. 최저임금이 올라 임금을 지급하는 일이 부담되는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에 노동자 월급의 일정 부분을 정부가 지원해 주는 사업이다. 공채생들은 이러한 정책을 실제 집행하게 된다.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 요건, 지원 금액 같은 안내사항을 정리해서 하급기관이나 기업에 전달하는 공채생도 있을 것이고,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서를 직접 접수받는 공채생도 있을 것이다. 고용안정센터나 지방노동청에서 실업급여 지급 요건을 검토하여 실직자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일을 하는 공채생도 있을 것이고,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 등의 위반 여부를 판단해서 기업이 이를 위반할 경우 제재를 가하는 근로감독관으로 일하는 공채생도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9급 공채생이 지방정부에서 하는 일을 살펴보자. 첫째, 지방정부 공무원은 기본적으로 행정의 최일선에서 국민들의 실생활과 밀접하게 관계되는 업무를 맡게 된다. 쓰레기 수거와 처리, 상․하수도, 도로, 도시계획, 주민등록 등의 업무가 그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업무분장: 공무원의 구체적인 임무’ 부분에서 자세하게 이야기할 것이다. 지방자치법에서는 지방정부의 사무 범위를 다음과 같이 예시하고 있다. 지방정부 구역․조직․행정 관리, 주민의 복지 증진, 농림․상공업 등 산업 진흥, 지역 개발과 주민의 생활환경시설 설치․관리, 교육․체육․문화․예술 진흥, 지역 민방위와 지방 소방. 이러한 일은 지방정부가 경비를 전액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행정학 교재에서는 이를 ‘자치사무’라고 표현한다.
둘째, 앞의 ‘자치사무’와 달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경비를 부담하여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는데, 행정학 교재에서는 이를 ‘단체위임사무’라고 표현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업무를 들 수 있다. 신입 9급 사회복지직 공채생은 생계가 어려운 주민과 상담하고, 관련 법 규정과 중앙정부 지침에 따라 수혜자를 선정하고, 복지 급여를 지급하는 일을 한다. 복지 업무 역시 ‘업무분장: 공무원의 구체적인 임무’에서 보다 자세하게 소개해 두었다. 기초생활보장 외에 보건소, 감염병 예방, 재해 구호, 하천 유지, 국도 유지․보수 등의 사무가 이에 속한다.
셋째, 중앙정부가 모든 경비를 부담하고,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일선행정기관처럼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 행정학 교재에서는 이를 ‘기관위임사무’라고 표현한다. 주로 전국적인 사무가 많은데, 대표적인 예로 선거 업무를 들 수 있다. 선거 업무는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국민들이 많지만, 국민들이 실제로 투표하는 장소인 투표소에서 일하는 이들은 모두 지방정부 공무원들이다.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실제 선거 사무와 관련해서는 전국의 지방정부 공무원들이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처럼 업무를 보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의원, 교육감 등 모든 공직 선거에 지방정부 공무원이 선거사무원으로서 투표소에 투입된다. 선거 외에 가족관계등록, 여권 발급, 외국인 등록 등의 사무가 그러하다.*1
‘자치사무’든 ‘단체위임사무’든 ‘기관위임사무’든 경비 부담 주체가 일부 다르고, 행정학 교재에서 이들의 개념이 구분되어 있을 뿐, 시민들은 이를 굳이 구분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방정부에서 일하는 9급 공채생은 지방정부의 경비 부담 비율을 따지지 말고, 앞서 소개한 모든 일들이 지방정부의 고유 업무라고 생각하고 일하는 것이 당위적하다. 실제로 지방공무원 모두가 그런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단순 업무? 난 단순하지 않다고 봐!
앞서 ‘신입 9급 공채생이 하는 일은, 고등학교 졸업한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 업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본인이 본인의 주민등록표 등․초본을 발급받기 위해 자신의 신분증을 지참하고 동 주민센터에 방문한 경우. 이런 경우라면 일이 복잡해질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업무가 등․초본 업무의 전부가 아니다.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은 경우, 가족이 대신 발급받으러 온 경우, 제3자가 대신 발급받으러 온 경우, 나이는 50세가 넘었지만 외국에서 태어나고 평생 외국에서 자라나서 한국인으로서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되지 않은 경우, 법원 판결을 받은 이후 채권자가 채무자의 주민등록표 초본을 발급받으러 온 경우(실무자들은 이를 ‘이해관계 업무’라고 표현한다)……. 각각의 경우마다 추가 서류가 필요할 수 있고, 서류 발급을 부탁한 위임자의 신분증, 도장, 서명 같은 것이 필요할 수 있으며, 업무 처리 방법도 다르다. 이를 잘 알고 동 주민센터에 방문해서 일을 보는 민원인은 거의 없다. 이에 대해 잘 모르는 민원인이라면 그러한 사항을 객관적으로든, 친절하게든 잘 설명해 드리는 수밖에 없다. 그게 여러분과 나의 일이다.
문제는 어떤 미비점 때문에 민원을 처리해 줄 수 없다는 여러분의 설명을 민원인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형적이고 단순한 업무라 해도 민원인, 즉 사람을 상대하다 보면 오해와 갈등이 발생할 수 있는데, 복잡한 사안이라면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일단 사안이 복잡해지면, 민원인 입장에서는 그 설명을 듣기가 싫어진다. 행정 서비스를 받으러 온 것이지 설명을 들으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사실 안 된다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도 서비스이건만). ‘안 된다는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말하는 민원인도 설명을 잘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원래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한다. 나도 여러분도 다 마찬가지다.
충분히 설명을 들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자신의 민원이 거부된다면, 국민들은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이 마음의 상처는 약간의 겸연쩍음, 쑥스러움, 어색함으로부터 비롯되지만, 그 표현은 짜증, 욕설,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때 주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대사는 다음과 같다.
“아니, 뭐가 이렇게 복잡해요?”
“다른 동에서는 해 주는데, 왜 여기서는 안 된다고 그래요? 똑같은 대한민국 법 아니야?(말 짧아짐)”
“안 된다는 규정 좀 가져와 봐요!”
결국 대민 서비스를 수행해야 하는 여러분에게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관련 법 규정을 여러분이 완벽하게 꿰차고 있는 것이다. 둘째, 이를 근거로 민원인에게 쉽고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말로 설명한 후에는, 말이 아닌 텍스트를 보여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기서 말하는 텍스트는 여러분이 미리 인쇄해 둔 관련 법 규정, 행정안전부가 지방정부에 내려보낸 ‘주민등록 사무편람’ 같은 것이다. 텍스트를 보여 드린다 해도 민원인은 여전히 불편한 마음을 표시한다. 민원인 입장에서는 당연히 겸연쩍은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하지만 텍스트를 눈으로 확인한 민원인이 그에 대해 더 길게 이야기하는 경우를 아직까지는 본 적이 없다.
관련 법 규정을 제시할 때에는 객관적으로 또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민원인이 받아들이기에 절대로 ‘얄밉게’ 설명하면 안 된다! 여러분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은 반드시 나에게 돌아온다. 앞서 공무원으로부터 민원을 거절당했다고 느끼는 국민들은 겸연쩍음, 쑥스러움, 어색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여러분이 국민들의 그러한 마음을 이해한다면 보다 부드러운 안내 멘트를 드릴 수 있을 것이다.
텍스트로 제시할 수 있을 만큼 관련 법 규정을 꿰차고 있는 것, 그 규정을 설명하는 데 있어 객관적이거나 친절한 태도. 이 두 가지를 다 갖추게 된다면, 민원을 상대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말이 쉽지, 이 두 가지 덕목을 갖추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갖추는 것도 사실은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동 주민센터에서 주민등록 업무를 보고 있을 때였다. 실제로는 ***번지 101호에 거주하는 가족이 있었는데, 주민등록 서류상으로는 102호에 거주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이것이 잘못되어 있으니, 처리해 달라는 민원이었다. 부부가 왔는데, 매우 격앙되어 있었다. 은행 대출 업무를 보는 중에 발견한 것이었다. 민원인 부부 입장에서는 101호에서 1년 넘게 살았는데, 주민등록 서류상으로는 102호에 1년 넘게 산 것으로 되어 있고, 그로 인해 은행 대출 업무에 지장을 받게 되었으니 얼마나 화가 났겠는가. 부부는 동 주민센터에서 일을 잘못 처리한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적법한 것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관공서에서 잘못 처리했다면―즉, 1년 전 부부가 ***번지 101호로 전입(轉入)*2한다는 내용으로 이상 없이 전입신고서를 제출했는데, 담당자의 착오나 실수로 102호로 전입 처리를 했다면―, 1년 전으로 돌아가 소급해서 잘못된 사항을 치유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런 일이 흔하지는 않은 만큼, 주민등록 정정 신고서, 1년 전에 제출된 전입신고서 등 증빙서류를 첨부해서 팀장, 동장이 검토․결재한 내부결재 문서를 생산한 뒤, 이를 근거로 ‘주민등록 시․군․구 정보 시스템’―실무자들은 이를 ‘주민망’이라고 말한다―에서 주민등록표를 정정(訂正) 처리한다면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역시나 이런 일이 흔하지는 않기 때문에 내부결재 받기 전에 팀장, 동장에게 보고하는 것이 좋겠다. 반면에 부부가 전입신고서에 전입 주소지를 잘못 표기한 것이라면 관공서에서 처리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1년 전에 그 가족이 제출한 전입신고서를 확인했다. 전입신고서에는 전입 주소지가 102호로 기재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 신고서에 따라 102호에 전입을 처리한 담당자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며, 관공서에서 처리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신고서에 기재된 내용이 확실한 만큼, 민원인의 요구대로 주민등록표를 정리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민원인 입장에서 이를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관공서의 잘못이라고 확신하고 왔는데, 자신들이 착오 기재한 건이었음을 알게 됐으니 마음이 얼마나 불편하셨겠는가(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자신들이 잘못 신고한 것을 알고 오는 케이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남편은 왜 자신들의 요구대로 처리할 수 없는지 ‘그 규정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황당했다. 아무리 본인과 관계된 일이라 할지라도 국민의 요구에 따라 현재의 주민등록 주소지를 과거로 소급해서 자신의 임의대로 자유자재로 변경할 수 있다면, 국회에서 의결되어 정부에서 시행되고 있는 주민등록법의 취지가 올바르게 구현될 수 있을까?
너무나 당연한 내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당황하고 있던 순간, 옆에 있던 전입 담당자가 ‘주민등록 사무편람’에 있는 내용을 찾았고, 이를 민원인 부부에게 보여주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과거 지번의 정정: 현재 거주지에서 정정>
▲ 주민이 과거 지번의 정정을 요구하더라도 주민등록 신고주의 원칙에 의거, 소급 정정은 불가함.
▲ 다만, 법원 판결에 의한 경우에는 판결문을, 행정기관 착오에 의한 경우에는 전입신고서나 색인부 등 관련 공부를 근거로 소급 정정 가능함.*3
부부의 표정이 점차 굳어지면서 분기탱천했던 마음이 푸쉬쉬 소리를 내면서 힘없이 빠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짐작하건대, 겸연쩍은 마음이 남았을 것이고, 이곳 동 주민센터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구나, 이제 은행 대출 일을 어떻게 진행해야 하나, 하는 막연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성인, 군자라면 ‘아, 은행 대출 일에 어려움이 있으실 텐데, 일이 참 안되셨다.’ 이런 생각을 했겠지만, 나는 평범한 9급 공채생이기에 마음 한편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 일이 거의 끝났구나.’ 어느 정도 침묵의 시간을 충분히 가진 뒤에 조심스럽게 말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법원 판결문 같은 추가 서류가 필요하실 것 같습니다.” 이 정도 대사가 마무리 대사로 좋은 것 같다. 마무리 대사와 함께 민원인의 마음에 공감하는 표정을 보인다면 더 좋을 것이다. 공감하는 표정이란 대략 이런 것이다. 왠지 안타까운 표정,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 조심스러운 표정, 아련한 표정…….
어떻게 생각하는가. 앞에 써 놓은 이 일이 단순해 보이는가? 민원인의 설명을 듣고, 어떤 사안인지 판단하고, 이 사안이 민원인의 요구대로 주민등록표를 정정해야 할 사안인지 그렇지 않은 사안인지 의사결정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복잡한 일이다. ‘주민망’에서 마우스를 클릭, 클릭함으로써 주민등록표를 정정하는 일 역시 매우 복잡하다. 자신의 블로그에 자신이 올린 글을 ‘수정’ 버튼 눌러서 고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신참 공무원이 하는 일 Ⅱ에 계속.
*1 지방정부의 자치사무, 단체위임사무, 기관위임사무에 대한 내용은 유민봉(2014) ‘한국행정학(제4판)’과 신용한(2018) ‘2018 신용한 COMPASS 행정학 개론’을 참고했다.
*2 거주지를 이동하는 것. 일상적인 표현으로 이사(移徙)와 같은 말이다. 주민등록법에서는 이를 전입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3 행정자치부. 2017. ‘주민등록 사무편람’. p.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