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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Oct 29. 2019

신참 공무원이 하는 일 Ⅱ

9급은 정말 여섯 시에 퇴근하는가

업무분장: 공무원의 구체적인 임무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각 부서에서는 부서원 한 명마다 그가 맡아야 할 업무를 할당한다. 이를 업무분장(業務分掌)이라고 한다. 직무 할당이라고도 한다. 각 부서의 업무분장표를 보면, 이 부서 또는 각각의 직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예시로 서울의 동 주민센터의 업무분장을 소개하고, 대략의 업무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일반적으로 동장 아래, 행정팀과 복지팀이 있다. 행정팀에는 민원 창구 직원과 그 외 직원이 있다. 실무에서는 주민등록, 인감, 등․초본, 가족관계 등의 업무를 보는 민원 창구를 ‘앞다이’라고 부르고, 서무, 청소, 광고물, 주차 단속, 민방위, 건축, 주택, 순찰 등의 업무를 보는 자리를 ‘뒷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1 관리자나 고참이 앉게 될 자리는 제외하고 여러분이 실제로 업무를 맡게 될 가능성이 높은 자리를 중심으로 업무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행정팀(뒷다이)

서무의 일을 보자. 여성의 공직 진출이 활발한 이 시점에서 신입 여직원이 주로 이 일을 맡는다. 하는 일은 먼저 문서 접수. 동 주민센터에 오는 문서를 받아 담당자에게 지정해 주는 일을 한다. 예산 집행과 은행 일을 많이 한다. 서무주임을 지원하는 일을 많이 한다. 공지사항 전달 등 전체 직원들이 알아야 할 사항에 대해 안내해 주는 일을 많이 한다. 민원인은 거의 맞이하지 않고, 주로 내부 고객을 많이 맞이한다. 팀장, 동장 등 관리자 의전도 이 자리의 중요한 업무인데, 조직이 민주화되면서 의전 업무 비중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주로 민원 창구 뒤에 앉아 있는 직원들의 일을 보자. 청소, 광고물, 건축, 주택, 도로, 주차, 시설과 관련된 민원 업무가 많다. 쓰레기 무단투기 신고, 광고물 위반사항 신고, 건축 공사 현장 소음 민원, 주택에 불법 구조물 축조 신고, 주차 단속 요청, 도로에 싱크 홀 발생 신고 등을 접수하고, 현장을 확인한 뒤, 이를 법 규정에 따라 처리하거나 필요시 제재를 가하는 일이다. 동 주민센터에서 처리해야 할 일은 직접 처리하고, 구청에서 처리해야 할 일은 구청에 이관하거나 보고한다. 여름에 비가 많이 오고 겨울에 눈이 많이 올 때 비상 대기와 응급조치를 하는 근무자들도 이들이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국민들의 의문사항이나 요구사항에 응하는 일을 한다. 혹시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있을까, 싶어서 간략한 민원 처리 방법도 함께 소개한다.


“쓰레기 내놓은 지 사흘이 지났는데, 아직 안 치워 가고 있어요.”

⇒ 현장 확인. 일반 쓰레기, 재활용 폐기물, 음식물 쓰레기 등 분리 배출이 잘 이루어졌는데, 수거가 안 된 것이라면 즉시 수거. 분리 배출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수거되지 않은 것이라면 행정지도.


“누가 내 집 앞에 쓰레기를 무단투기하고 갔어요. 자주 이러는데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없나요?”

⇒ 현장 확인. 무단투기자를 특정할 수 있는 단서가 있다면 이를 토대로 무단투기자 찾아서 폐기물관리법 위반확인서에 서명 받고 과태료 부과. 단서가 없다면 일단 모두 수거. 근본적인 해결 방법으로는 주민들이 현장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 경고문 부착, CCTV 설치 등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민원인, 상사, 상급기관과 상의.


“음식집 입간판이 도로에 나와 있어서 차가 지나가는 데 방해가 돼요.”

⇒ 현장 확인. 음식집에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옥외광고물법) 위반사항 행정지도. 보통 행정지도만으로도 상인들이 순응하며 철거함. 응하지 않을 경우 옥외광고물법 위반에 따른 강제 철거, 또는 과태료 부과.



“옆 공사장에서 공사하고 있는데, 소음이 너무 심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 현장 확인. 공사장 현장소장 또는 책임자 만나서 행정지도. 보통은 행정지도만으로도 순응하면서 공사를 일시적으로 중지함. 민원인이 소음이나 진동 측정을 요청할 경우, 구청으로 이관(지방정부마다 다를 수 있음). 구청에서 소음․진동관리법에 따라 처리.


“민방위 교육통지서를 받았는데, 그날은 참석이 어려워요. 다른 날에 교육받을 수는 없는 건가요?”

⇒ 민방위 교육은 전국 어디서든 1년에 한 번만 받으면 그해 교육이 종료됨. 해당 지역의 민방위 교육 일정과 전국의 민방위 교육 일정이 안내되어 있는 경로를 안내.


“집 앞에 누가 연락처도 없이 차를 대놨네요. 주차 단속 좀 해 주세요.”

⇒ 현장 확인. 주차 단속 실시. 도로교통법 위반에 따른 과태료 부과. 보통 동 주민센터에 주차 단속 단말기가 있음.


“***번지 앞에 싱크 홀(sink hole)*2이 생겼어요.”

⇒ 현장 확인. 싱크 홀은 대형 사고로 확대될 수 있으므로 즉시 현장으로 출동해야 함. 규모가 크다면 안전 펜스나 안전띠 등 연장도 챙겨 가야 함. 현장 확인 후 구청 치수과, 도로관리과 등 관계 부서에 긴급 조치 요청. 사고 발생하지 않도록 기동반이 오고 기동반의 임시 복구 작업이 완료될 때까지 현장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함. 임시 조치만 이루어지고 근본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도 상급기관에 공문을 발송하는 등 관리해야 한다.


도시 지역의 업무는 대략 이러하지만, 농촌, 어촌, 산촌 지역은 그 지역의 특색에 맞는 고유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농촌 지역은 농지, 과수, 특작, 기술․기계 보급, 농식품 유통 등의 업무를, 어촌 지역은 해양, 항만, 조선, 어업, 양식 등의 업무를, 산촌 지역은 산불․산사태 예방, 산림 보호, 병해충 방제, 휴양 산림 관리 등의 업무를 맡게 된다. 구제역(口蹄疫)이 발생한 지역에서 지방공무원들은 방역, 그리고 가축의 살처분(殺處分) 업무를 맡게 된다. 이들의 끔찍한 트라우마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행정팀(앞다이)

민원 창구 자리에 앉는 직원의 일을 보자. 주민등록증 발급, 출생, 사망, 전입, 주민등록표 등․초본 발급, 인감 등록․변경, 인감증명서 발급, 가족관계증명서 발급, ‘어디서나 민원’을 통한 각종 서류 발급(대학, 중앙정부, 국세청 등 다른 기관에서 발급하는 서류를 해당 기관으로부터 전달받아 민원인에게 주는 방식) 등의 업무를 본다. 서류 발급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단순한 업무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앞서 소개한 것처럼 주민등록, 출생, 사망은 단순하거나 가벼운 업무가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적과 주민등록의 효력을 발생시키고, 유지하고, 마침내는 효력을 없애는, 중요한 일이다.


전입의 경우, 앞에서 소개한 예시와 같이 전입신고서에 새로운 거주지가 **동 ***번지 102호로 기재되어 있다면, 그 주소로 전입을 처리해야 한다. 신고서에 기재된 주소와 다른 주소로 전입 처리한다면 이 역시 큰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민원인과 담당자 모두에게 말이다.


또한 누군가가 타인의 인감증명서를 허위로 발급받아서 부동산 거래에 첨부서류로 썼다고 가정해 보자. 실제로 이따금 발생하는 일이다. 개인에게 큰 재산상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는데, 대리인 확인과 인감증명서 발급 위임장 서류 검토가 정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 인감증명서를 발급했던 담당자가 그 책임을 일정 부분 부담해야 할 수도 있다. 이 역시 가벼운 업무가 아니다.


그리고 민원 창구 직원은 민원인들의 폭언과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감정 노동자들이다. 관련 법령도 잘 알고 있어야 하지만, 손님 응대에 능숙해야 한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복지팀

복지팀 실무자의 업무를 보자. 우선 복지 서비스를 받고자 하는 국민들이 동 주민센터를 방문하면 상담에 응한다. 원하는 복지 서비스, 받을 수 있는 복지 서비스,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자격 조건, 현재 내담자가 처한 상황 등이 주된 대화 내용이다.


국민들에게 낯설지 않는 대표적인 복지 서비스를 몇 가지만 열거해 보자. 국민기초생활보장, 차상위, 기초연금, 어르신 교통카드, 장애인 복지, 한부모가족 지원, 양육수당, 아동수당, 긴급복지, 임대주택……. 이들 업무 역시 관계되는 법률, 시행령, 시행규칙에 따라 처리한다. 이와 관계되는 중요한 법률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기초연금법, 노인복지법, 장애인복지법, 장애인연금법,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법률, 장애아동 복지지원법, 한부모가족지원법, 영유아보육법, 아동복지법, 아이돌봄 지원법, 아동수당법, 긴급복지지원법, 공공주택 특별법,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복지 업무의 경우, 세부적인 업무 절차와 방법이 수록된 지침을 매년(!)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내려 준다. 매년 지침을 발간해서 보낸다는 것은 그만큼 복지 업무가 빠르게 변화한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복지 담당자는 이 지침에 의지해서 업무를 처리한다. 책자 제목은 대략 다음과 같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사업안내', '기초연금 사업안내', '사회보장급여 공통업무 안내', '장애인복지사업안내', '장애인연금 사업안내', '장애인활동지원 사업안내', '한부모가족지원 사업안내', '아동수당 사업안내', '긴급지원사업 안내'(이상 보건복지부), '아이돌봄 지원사업 안내'(여성가족부)……. 복지사업을 안내하는 이들 책자는 대부분 법적 근거, 사업의 목적과 내용, 전체적인 업무 처리 프로세스, 서비스 신청, 서비스 수급 자격 조회․조사, 서비스 수혜 결정, 급여 지급(예산 집행), 수혜자 관리 등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실무자들이 말하는 ‘지침’이란 이들 지침서를 말한다. 지침서를 충분히 숙지하면 프로페셔널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복지사업의 경우, 동 주민센터 직원은 대부분 상담, 신청서 접수, 신청서 상급기관 보고의 업무를 수행한다. 구청 복지 부서 직원은 서비스 수급 자격을 조회하기 위해 소득과 재산 상황을 조사하고, 서비스 수혜 여부의 결정사항을 신청인에게 통보한다. 서비스 수혜자 개인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일 역시 구청에서 처리한다.


복지 업무는 확장 추세에 있다. 기초연금은 2014년 7월부터 시작되었고, 아동수당은 2018년 9월부터 시작되었다. 희망키움통장, 내일키움통장, 청년희망키움통장 등 일정한 금액을 저축할 때 정부가 일정한 금액을 추가 지원해 주는 자산 형성 지원 사업, 서울특별시의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 사업 등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복지 사업이 새롭게 시작될 때마다 복지 담당자들은 이에 따른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특이하게도, 확장되는 복지 서비스 추세에 비해, 그리고 ‘국민 여러분, 이제 안심하세요’라고 말하는 복지 당국의 홍보에 비해, 국민들은 정부의 복지 서비스를 크게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이 받는 금액이 기대만큼 크지 않다는 점, 신청서와 관계 서류를 꼼꼼하게 챙겨 행정기관에 제출해야 한다는 점, 소득과 재산 상황을 조사하여 지급 여부와 지급액이 결정되는 선별적 복지 서비스가 대다수라는 점, 이로 인해 자신이 수혜 대상자가 아닐 경우, 서비스를 신청하는 데 들였던 시간, 노력, 번거로움이 일순간 매몰비용이 된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서비스의 수와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정작 국민들은 정부 서비스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고, 서비스 신청을 위해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여야 하는 상황. 이것이 현재 한국 정부의 복지 서비스 현실인 것 같다.*3 이때 “TV 보면 다 해 줄 것처럼 광고하던데, 뭐가 이리 복잡해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해도 복지 담당자라면 정부를 대신해서 슬기롭게 대답해야 한다. “그거 다 그냥 하는 말이에요.”라고 답하는 9급 공채생은 없으리라 믿고 싶다.



국민들이 불편을 겪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방정부 복지 담당자 역시 이러한 불편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 중앙정부가 복지 사업마다 매년 별도로 한 권의 책자를 만들어 내려보내야 할 정도로 복잡한 업무 처리 절차를, 그들은 하나 하나 밟아 나간다. 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공단, 은행, 증권사, 금융기관 등 타 기관에서 보내온 정보를 확인해야 하고, 그 정보와 신청인의 소명(疏明)을 토대로 소득과 재산 상황을 직접 조사해야 한다. 미국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엔터 키 한 번으로 개인의 재산 정보가 자동으로 뜨는 시스템이 있는 게 아니다. A.I.가 딥 러닝(deep learning)에 따라 플로 차트(flow chart)를 만든 뒤, 반짝이는 불빛이 흐름도의 라인 위를 움직이면서 Yes와 No, 소득 인정액 초과 여부 등의 마디 마디를 거쳐서 마침내 ‘복지 대상자 선정’ 마디에 불빛이 들어오는 식으로 수혜 여부가 자동으로 결정되는 시스템은, 더더욱 아니다(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이 모든 절차 가운데, 복지 담당자는 신청인이 궁금해 하는 부분을 적절하게 설명해 드려야 한다. 신청인이 서비스 수혜자로 최종 선정되었을 때에도, 그렇지 않았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앞서 대민 서비스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은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첫째는 관련 법 규정을 완벽하게 꿰차는 것이고, 둘째는 이를 근거로 민원인에게 쉽고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복지 담당자는 두 번째 항목에 있어 보다 높은 직업의식 또는 스킬이 필요할 것 같다. 서비스 대상자가 되지 못했을 때 좌절을 느끼는 국민의 마음을 다독여 드려야 하고, 앞서 예시를 든 것처럼 생계비 더 안 주면 자살하겠다, 너 때문에 자살한다고 유서에 써 놓겠다고 말하는 신청인과 마주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 도대체 누가 말했나. 9급 공무원 일이 고등학교 졸업한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 업무라니.



서무주임

마지막으로 이 직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무주임’이라는 직책이다. 그 부서의 인사 담당자이자 살림꾼이다. 관리자가 없을 때 실무자 중에서 누군가가 부서를 대표해야 한다면 서무주임이 바로 그 대표자가 된다. 실무자 중에 서무주임보다 계급이나 호봉이 높은 사람이 있다 해도 관리자가 없을 때의 부서 대표는 서무주임이다. 신참인 여러분이 이 직책을 맡을 일은 없다.


동장과 팀장 의전을 맡는다. 여기서 의전이라 함은 관리자의 지시를 전 직원에게 공지하는 일, 관리자와 직원 사이의 가교 역할, 관리자와 시민들이 만날 때 시민들의 요구사항을 요약하는 일, 그리고 관리자와 함께 밥을 먹는 일, 뭐 그런 것들을 말한다. 힘든 일이다.


관리자와 상의하기 조금 모호한 경우에는 서무주임을 통해 상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러분의 공직 생활과 조직 내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서무주임과 적절하게 가까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회식 도중에 조용히 빠져나와 집에 갈 수 있는 타이밍을 알려 주려 하는데, 이때 반드시 여러분의 편으로 삼아야 할 직원이 서무주임이라는 것을 기억해 두자. 나중에 다시 설명하도록 하겠다.




공채생이 못할 일은 없다

지금까지는 다소 정형적(定型的)인 업무를 소개했다. 정형적인 업무를 처리한다 할지라도, 아주 복잡한 사연을 접할 수도 있고,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칠 수 있음을 또한 함께 소개했다.


하지만 공직 업무에 정형적인 업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과거의 사회 문제는 길들여질 수 있는(tame) 것이었지만, 현대의 사회 문제는 그렇지 못하다. 너무나 복잡하고 사악(邪惡․wicked)하다.*4 미세먼지, 기후변화, 저출산․고령화, 청년실업, 고용 불안정, 양극화 현상……. 정부가 법령, 매뉴얼, 지침을 만들고, 강력한 드라이브를 건다고 해서 해결될 만한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9급 공채생에게 미세먼지 문제를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을 가져 오라고 지시하는 상사는 없다. 다만, 여러분에게 익숙하지 않을 수 있는 페이퍼를 요구할 수는 있다. 이때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 막연함을 느끼게 될 수도 있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신참 9급 공채생에게 맥킨지(McKinsey) 보고서*5나 노벨 경제학상을 받을 논문을 기대하는 관리자는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의견을 참고하거나 페이퍼의 틀 또는 초안을 잡기 위해 지시하는 경우가 많다. 계획서․보고서 등 페이퍼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9장 ‘임무 완수가 우선’에서 보다 자세하게 설명해 두었다.


예전에 어떤 고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공채생이 못할 일은 없다.” 그때 들었던 말의 의미를 나는 지금에 와서 이렇게 해석해 본다. “공채생의 능력으로, 법 규정에 의거해서, 국가와 국민, 공익을 위한 대의명분을 갖고 일한다면, 딱히 못할 일은 없다.” 여기에 하나 더, 체력이 출중하다면 더더욱 못할 일이 없을 것 같다.


힘든 일이 많지만, 법 규정과 대의명분은 능히 여러분을 보호해 줄 것이다. 게다가 여러분이 갖고 있는 능력은 여러분의 생각보다 훨씬 출중하다. 그 능력을 승진, 일신의 영달, 상급자에게 사랑받기 같은 무리한 것에 쓰지 않고, 국가와 국민의 이익, 그리고 여러분 스스로의 의미 있는 삶에 쓴다면 여러분에게 행운이 따를 것이라 믿는다.


지금까지 신참 9급 공채생이 하게 될 일을 소개했다. 현대 정부가 하는 일은 너무나 방대하고 복잡하며, 나 역시 모든 정부 조직을 경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책에서 모든 것을 소개할 수는 없다. 신입 9급 공채생은 주로 정책을 집행하는 일에 업무 역량을 투입한다. 정형적인 업무라 해도 구체적인 사안은 복잡할 수 있다. 또한 정책 대상 집단과 민원인은 더 많은 서비스를 요구한다. 따라서 자신이 맡고 있는 법 규정을 완벽하게 꿰차고, 이에 대해 시민들에게 객관적으로 또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따금 여러분에게 익숙하지 않은 페이퍼를 작성하는 일이 주어질 수도 있지만, 너무 많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관리자들이 여러분에게 과한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기 어렵다면 성의를 표시하면 될 것이다. 공채생이 못할 일은 없으니, 너무 많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음 장에서는 여러분을 둘러싼 내부 환경과 외부 환경을 살펴본다.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조직 적응인데, 조직에 적응하기 위해 현재 여러분을 둘러싼 환경을 인식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만하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여러분을 둘러싼 환경이 왜 만만하지 않은지 차분하게 듣다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1 앞다이, 뒷다이는 일본어 ‘다이[臺]’가 포함된 단어로서 표준어가 아니다.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실무자들이 종종 사용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듣는 사람도 그 개념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어서, 용어 그대로 사용했다.

*2 땅이 가라앉아 생긴 구멍. 도시 지역에서 발생하는 싱크 홀은 주로 노후된 하수관로의 균열, 균열로 인한 누수, 누수로 인한 흙의 침식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다. 작은 구멍도 금세 큰 구멍으로 확대될 수 있고, 보행자와 차 모두의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으므로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

*3 김민호. 2019. ‘빈곤 노인의 노동시장 이행에 관한 연구: 한국적 유형화와 질적 분석을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국정전문대학원 박사학위논문. p.209.

*4 Rittel & Webber. 1973. Dilemmas in a General Theory of Planning. Policy Sciences. 4: 155-169.

*5 미국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 회사, 맥킨지 앤드 컴퍼니(McKinsey & Company)에서 작성한 보고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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