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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Oct 30. 2019

내부 환경: 갑갑한 조직

9급은 정말 여섯 시에 퇴근하는가

사람들은 신입 9급 공채생을 어떻게 생각할까.

이 질문은 의외로 중요하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어떠한지, 자신이 마주해야 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인식하는 일은 공적 분야, 사적 분야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분석의 필요성이 있는 일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공무원이 해야 하는 업무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업무가 변화한 까닭은 행정을 둘러싼 환경과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나 자신만의 방식대로 사는 일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주변 환경과 주위 사람들을 싹 다 무시하고 살 수도 없는 일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


사람들은 신입 9급 공채생을 어떻게 생각할까. 당연하게도, 사람마다 다르다. 여전히 수험 생활을 이어 가고 있는 공시생들은 여러분을 부러워한다. 오프라인 강의, 온라인 강의, 새벽 특강, 컵밥 식사, 독서실 공부, 이론서 n회독, 기출문제 풀이, 모의고사, 면접 특강, 쪽잠…… 여러분이 겪었던 일―여러분이 두 번 다시 하고 싶어하지 않을 일―을 지금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여러분은 머나먼 별과도 같다. 예비 배우자의 희망 직업 1위가 공무원인 만큼, 예비 사돈댁에서도 여러분을 반긴다. 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자신의 자녀를 여러분이, 또는 여러분의 직업이 안전하게 보호해 줄 수 것이라 판단하는 상대 부모가 여러분을 싫어할 리 없다. 타인을 존중하는 인격, 겸손, 좋은 성격을 중간 수준으로만 갖추고 있어도, 주위 사람들이 여러분을 싫어하는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직접적인 이해(利害) 관계를 갖고 있지 않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고참들은 신입 공채생을 어떻게 생각할까

현재 여러분보다 앞서 공직에 입직한, 기존의 고참 조직원들은 여러분을 어떻게 생각할까.


‘장차 국가와 공직사회의 기둥이 될 인재들을 맞이하니, 마음이 벅차구나. 내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저들이 공직사회에 잘 적응해서, 국가에 기여하고 시민에게 봉사하는 훌륭한 공직자가 되도록 친절한 길잡이가 되어 주리라.’


이런 반응을 기대하는 신입 공채생들은 없으리라 믿고 싶다. 여러분이 소속된 조직의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기대하는 것은 깍듯한 예의, 지시에 토 달지 않는 순종, 그리고 깔끔한 업무 처리다.


첫째, 깍듯한 예의. 고참들은 순하고, 무던하고, 인사 잘하는 신참을 좋아한다. 까다로운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고참의 체면을 깎아내릴 수 있는, 매사에 비판적이고 도전적인 캐릭터 역시 원하지 않는다.


둘째, 지시에 토 달지 않는 순종. 과거보다는 많이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공직사회는 계급제 사회이고, 상명하복(上命下服)의 문화가 강하다. 자신의 지시가 부당한 것이라 해도, 불합리한 것이라 해도, 비효율적인 것이라 해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면전에서 대놓고, “아니, 그게 뭐예요.”라는 하급자의 얘기를 듣고 기뻐하는 상급자는 없다.


셋째, 깔끔한 업무 처리. 독립된 직원 한 명으로서 주어진 임무를 온전히 완수하는 것이다. 주민등록표 등․초본을 발급하는 업무를 예로 들어보자. 손님을 맞이하는 첫 인사, 신분증과 지문을 통한 본인 확인, 수수료 결제와 서류 발급, 손님을 보내는 끝 인사까지. 여기까지가 기본적이고 정형적인 임무 완수다. 채무자의 주소를 확인하기 위해 채권자가 채무자의 주민등록표 초본을 발급받고자 할 때가 있는데, 이 업무는 앞서 제시한 사례보다는 복잡하다. 이러한 복잡한 업무까지 관련 법률, 시행령, 시행규칙, 그리고 상급기관에서 내려 준 지침과 편람에 의거해서 완수할 수 있어야 한다. 친절하게 민원에 응대함으로써, 민원 창구에서 큰소리가 나지 않거나 민원인으로부터 칭찬을 듣는다면 금상첨화다.




무리한 지시까지 해 내기를 원하는 마음

이 정도로도 충분히 훌륭하지만, 조직은 여러분에게 이보다 더한 열정을 요구할 때도 있다. 안타깝게도, 조직에서 요구하는 이 열정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열정보다 상급자를 기쁘게 하는 열정인 경우가 많다. 상급자는 언제 기쁠까. 자신의 상급자가 자신의 업무 처리로 인해 만족감을 표하고, 그로 인해 자신을 예뻐할 때 기뻐한다. 그리고 고참들은 여러분으로 인해 자신의 업무량이 줄어들 때 기뻐한다.



여러분이 첫 근무지에 발령을 받았을 때 부서장과 간부들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열심히 해라.” 이 말은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위해 열심히 하라는 덕담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신입 공채생은 열심히 일하는 것이 자신을 위해 좋다. 그러나 상관들이 여러분에게 열심히 일하라고 하는 덕담 안에는 ‘내가 윗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하라’는 의미도 함께 담겨 있다. ‘내가 관리자로 있는 동안에는 사고 치지 말고 조용히 있다 가라’는 의미도 있다.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마지막으로 날리는 대사인 경우도 많다.


여러분이 소속된 조직의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깍듯한 예의, 지시에 토 달지 않는 순종, 그리고 깔끔한 업무 처리를 기대한다고 했다. 거대 관료제 안에서 기능을 발휘하는 톱니바퀴로서의 인적 자원을 바라는 느낌이다. 개인에게 이처럼 많은 것을 요구하는 조직문화가 바람직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2020년 현 시점에도 대한민국의 공직사회의 현실은 그와 같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예의 바르고, 상급자의 말에 토 달지 않고, 상급자의 무리한 요구에도 최선을 다해 그 임무를 완수하는 사람. 선배들이 원하는 바람직한 후배상은 그런 것이다.




고참들의 보상 심리, 또는 본전 심리

고참들의 이런 생각이 부당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높은 학점, 높은 공인영어시험 점수, 다방면의 자격증, 어학연수 경험, 인턴십 경력, 봉사활동, 공모전 입상…… 단군 이래 최강의 스펙을 갖고 있는 여러분이 보기에, 여러분보다 스펙도 안 좋고 여러분보다 쉽게 취업한 선배들로부터 딱히 존경할 만한 요소를 찾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다만, 여러분을 향한 고참들의 기대는, 인간이라면 지극히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마음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좋을 것 같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회복무요원의 복무를 담당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여러분 역시 인사 잘하고, 말 잘 듣는 요원을 더 선호한다. 지금은 여러분이 사무실에서 하급자라 할지라도 몇 년 후에는 후배를 맞이하게 된다. 여러분 역시 또박또박 말대꾸하는 후배보다는, 부족하게 말해도 완벽하게 알아들어서 모든 일을 무난하게 처리하는 후배를 예뻐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의 선배들은, 수직적 조직문화를 수용하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살아 왔다. 가급적 근무시간 이후에도 사적인 약속을 잡지 않았고, 불꽃 야근을 일삼았으며, 공식적인 1차 삼겹살에 소주 회식, 2차 호프집, 3차 노래방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트래디셔널한 회식 프로세스에 충실했다(이 프로세스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견고한 전통이다). 월요일, 금요일, 그리고 징검다리 휴일에는 가급적 휴가를 쓰지 않았다.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일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다. 상사로부터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업무 지시를 받은 경우에도, 일단 그 자리가 파한 다음에 따로 자리를 만들어서 조용히, 그리고 예의 바르게 반대 의견을 냈다. 조직 안에서 현명하다고 일컬어지는 이들은 그렇게 했다(참 빡세다). 폭압적인 조직문화 때문이든, 자신의 선택 때문이든, 그렇게 열심히―그렇다, 정말 열심이었다―살아 왔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 온 만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들은 ‘보상 심리’ 또는 ‘본전 심리’를 갖고 있다. 내가 사회 초년병 시절에 조직에 희생한 만큼, 타인도 그만큼 희생하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다. 성인, 군자가 아닌 이상,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마음이다.


여러분은 ‘누가 그러라고 했나’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와 달리, 조직을 위해 무조건 희생해야 할 이유―승진, 인정, 평판―가 딱히 마음에 와닿지 않는 여러분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들이 ‘본전 심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그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알게 된다면, 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면,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면, 직장 생활이 조금이나마 여유로워질 것이다. 그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든, 그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든, 그들을 측은하게 바라보든, 그들의 선택에 공감하든, 그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신참들이 알아서 기어 줬으면’ 하는 고참들의 기대가 해를 거듭할수록 옅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후배들이 알아서 기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최근 몇 년 동안 체험했기 때문이다. 최근 공직에 입직하는 신입 공무원들은 이기적인 사람들이라기보다는―정말 이기적인 사람도 있겠지만―개인주의적인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리라고 본다. 왜 알아서 기어야 하는지, 애당초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여러분이 어떻게 알아서 길 수 있을까. 그러나 대한민국 공직사회는 이기적인 성품과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구분할 만한 교양 또는 너그러움을, 아직은 갖추고 있지 않다.


고참들은 이따금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는 기대할 게 없다. 아침 저녁 출퇴근할 때 인사 잘하고, 기본적인 예의만 잘 지키고, 자기 할 일만 잘 처리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 정도 수준도 사실은 탁월한 수준이다. 그리고 신참이 이 정도 수준이 되면 더 높은 수준의 기여와 희생을 요구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고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란 여러분에게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고참들이란 ‘내가 니들 나이 때는 날아다녔어!’라고 생각하는 존재들 아닌가.




첨예한 세대 갈등

이로 인해 현재 정부 조직에서는 ‘세대 갈등’이 존재하고 있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는’ 세대 갈등이라고 표현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눈에 확 띄는’ 갈등이다.


과거에는 고참이 도제식 교육으로 신참에게 업무 파악, 문서 기안, 보고서 작성, 엄격한 규정과 완화된 융통성을 알려 주는 일에 이르기까지 업무의 많은 부분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신참이 힘든 일을 겪거나 사무실 분위기가 안 좋으면 저녁에 함께 술 한 잔을 기울이고 업무와 회사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의 사생활과 사적인 시간을 상당 부분 공유하면서 서로를 위로해 주기도 하고, 오해와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다(물론 그렇게 해서 오히려 오해와 스트레스가 더 심화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사생활은 서로 침해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 행정 환경도 크게 변화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새로운 법률이 생겨나고, 기존의 법 규정과 지침은 자주 개정된다. 교양이 부족한 민원인의 일부 민원은 더 강경해지고 있고, 보다 집요해져 가고 있다.


짐작하건대 고참 입장에서는 업무를 배우려는 의지가 부족한 신참을 억지로 불러 앉혀 놓고 트레이닝을 시키는 일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현대 사회의 개인주의 성향과 사생활 존중 기조로 인해 신참을 대하는 일이 상사를 대하는 일 못지않게 어려워지고 있다. 게다가 규정은 수시로 바뀌고 있다. 바뀐 규정을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 내용을 정리해서 신참들에게 알려 주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짐작하건대 신참 입장에서는 고참과 관리자가 벽처럼 느껴질 것 같다. “요즘 많이 힘듭니다.”라고 말할 때 고참이 자신의 어려움에 공감해 줄지, 아니면 “이게 힘들다고? 나 때는 말이야……. 그리고 모름지기 공무원이라면…….”이라고 오히려 질책과 연설을 듣게 될지 걱정이 많은 것 같다. 일장 연설을 들은 후에 “팀장님, 팀장님이 활약하셨던 시절과 지금은 많이 다릅니다.”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내 고민을 털어놓아도 면박을 당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조직문화가 있었다면, 많은 공무원이 극단적인 선택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앞서 한국의 노동자가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연령은 49세라는 통계를 소개했다. 한국에서 50대 후반과 20대가 한 사무실에서 함께 어깨를 부딪히며 근무하는 조직은 아마도 정부 조직밖에 없을 것이다. 2020년 현재 한국의 정부 조직에서 지위와 권력의 정점에 있는 고참과 관리자의 연령대는 대략 1차 베이비 붐 세대(1955~1963년생) 중 끄트머리 세대와 586 세대다. 2020년 현재 한국의 정부 조직에 입직하고 있는 신참은 1990년대생이 주류다. 그 사이에 X 세대, Y 세대, 에코 세대가 분포하고 있다. 사실, 전쟁 직후 태어난 세대와 모바일 네이티브(mobile native)가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데 갈등이 없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다. 한국 사회가 급격한 변혁의 시대를 겪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1차 베이비 붐 세대와 586 세대가 정부 조직을 모두 떠난다고 해서 신참들이 원하는 세상이 올까?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고, 사생활을 침해받지 않고,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세상 말이다. 이에 대한 내 대답은 회의적이다. 조직의 관성과 인간의 행동은 쉽사리 변화되지 않는다. 하물며 정부 조직이야 말해 무엇하랴. 이미 ‘젊은 꼰대’가 조직에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했고, 그 영역을 확장 중에 있다. 안 좋은 건 금방 배워요.




여러분은 고참과 관리자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끝으로 하나 더. 여러분은 일하다가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상급자가 적절한 역할을 해 주길 바랄 것이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관리자는 어떤 사람인가. 왕년에 현장에서 엄청나게 굴러서 실무로 잔뼈가 굵고, 다양한 경험과 체계적인 업무지식을 갖고 있으며, 사소한 감정에 휘둘리기보다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는 사람. 무심한 듯하면서도, 부하 직원들의 애로사항에 귀 기울이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으며, 외부의 부당한 압력에는 의연하게 맞서 하급 실무자의 든든한 방패막이 되어 주는 사람. 이 정도가 아닐까.


여러분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고참은 어떤 사람인가. 아마도 사적 관심을 불필요하게 갖지 않고, 필요한 시점에만 적절하게 개입하고, 업무를 A부터 Z까지 전반적으로 잘 알고 있으며, 어떤 일을 힘써 해야 하고 어떤 일을 설렁설렁 해도 되는지를 아는 사람, 그리고 업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사람. 이 정도가 아닐까.


모두 이상형일 뿐이다. 이런 숭고한 성품을 지니고 있는 상급자가 현실에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희소하다. 현실에서 만나기 어렵다. 세월이 흘러 여러분이 그 자리에 앉게 되면 이런 ‘큰 바위 얼굴’급의 인격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어렵다. 여러분의 선한 성품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기대치가 높다는 말이다(이런 훌륭한 고참과 관리자가 되고자 하는 개인의 노력이 부질없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많은 것을 요구한다. 이 조직에서 가급적이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마라.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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