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라: 상담, 인사고충, 휴직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밝힌 다음에는, 셋째, 고참, 서무주임*1, 팀장, 부서장에게 도움을 청할 것을 권한다. 이 선택지는 아주 좋은 선택지다. 구성원을 살피는 일은 팀장, 부서장이 해야 하는 고유 업무다. 어떤 일이 있을 때 조직의 공식적인 계선(系線), 즉 라인을 밟는 것이 정부 조직에서는 전통인데, 이 전통을 존중하는 일이 여러분에게 피해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고참, 팀장, 부서장은 직장에서 적어도 여러분보다는 실질적인 권력을 갖고 있다. 여러분이 상의할 일이 있어서 이들을 찾는다면, 그것은 그 권력을 인정한다는 신호가 되기 때문에 여러분이 상의하러 오는 것을 고참, 팀장, 부서장은 싫어하지 않는다.
도움을 청한 일이 받아들여진다면, 업무가 일부 경감될 수도 있고, 부서 내에서 자리를 옮길 수도 있다. 부당한 일이 개선될 수도 있다. 여러분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라도 도움을 청한 사실이 축적되기 때문에 향후 행보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어려움에 대해 수 차례 상담하고 도움을 청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명분을 쌓을 수 있게 된다. 자리가 바뀌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변화된다. 새로운 일에 적응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다 보면 과거의 고통을 조금씩 잊을 수도 있다.
넷째, 여러분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존재하는 현행 제도를 적극 활용할 것을 권한다. 정부는 모범적인 고용주로서의 모습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직원들의 업무 환경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 공식적인 제도가 공식적인 법률에 규정되어 있다. 정부 조직에 이런 공식적인 제도가 있다는 점에서, 민간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여러분을 많이 부러워한다는 사실도 이 기회에 알아 두자.
우선 인사고충 심사 청구 제도. 실무자들은 ‘고충을 쓴다’고도 표현한다. ‘일하는 데 있어서 이런 고충이 있으니, 개선해 주세요’ 또는 ‘부서를 옮기게 해 주세요’ 요청하는 제도다. 일반적으로 정부는 1년에 두 번 정기 인사가 있는데, 이 정기 인사 시즌에 인사고충을 접수받는다. 나 역시 앞서 소개한 두 번의 어려웠던 시기에 모두 인사고충을 제출해서 동 주민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던데, 즐길 수 있는 정신력이라면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기 전에 인사고충을 써서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겠다. 고충을 쓰면 꼬리표가 달린다는 말도 있지만, 삶이 피폐해지는 것보다는 고충을 쓰는 것이 낫다. 자신이 말하지 않는 이상, 고충 썼던 사실이 구성원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것 같지도 않다.
만약 건강을 잃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면 휴직원을 제출하라. 신체․정신상의 장애로 장기 요양이 필요할 때 진단서를 첨부하면 관련 규정(국가공무원법 제71조, 지방공무원법 제63조)에 따라 휴직을 신청할 수 있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조직에서 쓰는 인사고충 상담서와 휴직 신청서 서식을 이 책의 끝에 부록으로 남겨 둔다. 이 서식들을 작성해서 총무과에 제출하면 급한 불은 끌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여러분의 고민의 무게가 조금은 줄어들지 않는가?
큰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공식적인 경로를 밟는 것이 두렵다면, 부모님께 문제를 상의해 보라. 여러분의 부모님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지혜로우시다. 소속된 조직의 노동조합 사무실을 찾아가 노조 임원과 상의하는 것도 권할 만하다.
우선은 이러한 방법으로 아주 힘들거나 극단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짐작하고 있겠지만, 부서를 옮긴다고 해서 곧바로 꽃길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퇴직이나 극단적인 선택보다는 이 길이 바람직하다. 만약 퇴직을 결심했다면, 이 책의 마지막 장 ‘공직자로서의 삶과 나 자신으로서의 삶’을 읽어 볼 것을 권한다.
9급 공채생을 위로해 주는 사람은 없다
신입 9급 공채생이 처한 어려운 상황, 그리고 그만두고 싶을 만큼 힘든 상황에서 우선적으로 벗어나는 방법을 소개하는 것으로 책을 시작했다. 공직 업무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공직자로서의 삶이 가볍지 않다는 것을, 생각보다 진지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조직 내부와 외부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싶었다.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의 출생과 사망을 행정 처리하는 일이 가벼운 일인가?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국민의 최소 생계를 지원하는 데 앞서 신청인이 제출한 서류와 그의 재산 상황을 검토하는 일이 가벼운 일인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소득에 변화가 생겨서 수급자의 수급 자격을 박탈하는 일이 가벼운 일인가? 단언하건대, ‘신입 9급 공채생이 하는 일은, 고등학교 졸업한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 업무’라는 말은 거짓말이다(업무 수행 능력의 기준을 단순하게 학력으로 삼은 것 자체만으로도 어폐가 있다.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능력이 없고 마음 자세가 갖춰져 있지 않으면 9급 공채생 일은 못하는 것이다). 그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높은 수준의 법률 지식과 업무 능력을 갖춰야 하고, 고객 응대와 감정 노동에도 능해야 한다.
보고 들은 것이 많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청년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있어도 신입 9급 공채생의 고통에 공감해 주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국민들은 ‘등․초본 발급하는 공무원 일이 뭐가 어렵냐’고 말하고, 20년, 30년 공무원 일을 한 재직자들은 ‘공직 업무를 만만하게 보지 마라’고 말하면서도 결국은 ‘이 모든 것을 다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창구에서 민원인과 말싸움을 하다가 민원대를 뛰어넘어 몸싸움을 벌였다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그들의 무용담은 2020년의 신입 9급 공채생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이 일했던 시대의 근무 여건과 현재 시대의 근무 여건은 크게 다르다. 여러분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여러분 스스로가 극복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공직 업무의 어떤 점이 힘든지에 대해 공감해 주는 사람들도 없고,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솔루션을 알려 주는 사람도 없다.
인사고충 심사 청구 제도와 휴직 제도가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조직 구성원을 보호하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공식적인 제도가 왜 암호문처럼 숨어 있는가? 왜 이런 정보에 접근하는 경로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가?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상황에 처한 이들이 입 다물고 묵묵히 일하는 것이 조직의 효율성에 도움이 되는가? 행복한 직원이 성과가 높고, 행복한 직원이 행복한 고객을 만든다는 것은 새로운 이론이 아니다.
끝으로 여러분에게 위안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하나 전하는 것으로 1장을 마무리하겠다. 이미 겪어 봐서 어느 정도 알고 있겠지만, 여러분이 속한 정부 조직은 매우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갖고 있다. 따라서 여러분이 3년에서 5년 정도 이 조직에서 버티다 보면, 조금은 숨통이 트일 것이다. 지금은 상상이 잘 안 될 수도 있겠지만, 여러분도 수직적인 조직문화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 나 역시 근무 연차가 늘어날수록, 후배들이 부서에 많이 배치될수록 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싫어했던 고참의 모습을 고스란히 닮아 가서는 안 된다. 선배가 되면 선배로서 해야 할 역할을 짊어져야 하고, 고참이 되어 얻게 되는 메리트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들 것이다).
신입 9급 공채생이 접근하기에는 다소 낯설 수 있는 내용으로 책을 시작했다. 당장에 너무나 힘든 상황이라면 고려해 보기 바란다.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소개한 근무 상황보다는 조금 더 평화로운 시기에 신참 공무원이 하는 일, 그리고 여러분을 둘러싼 내부 환경과 외부 환경을 보다 구체적으로 소개하도록 하겠다.
*1 여기에서 서무주임의 역할은 여러분이 소속된 부서의 인사 담당자 정도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서무주임이 부서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신참 공무원이 하는 일’에 설명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