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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Oct 27. 2019

9급, 생각보다 힘들잖아! Ⅰ

9급은 정말 여섯 시에 퇴근하는가

저성장이 새로운 일상이 된 ‘뉴 노멀(new normal)’ 시대에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좋은 일자리’임에 틀림없다. 기업의 활력은 침체되어 있고, 고용은 불안정한 시점이다. 공무원의 보수가 고연봉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기본급에 여러 종류의 수당을 다 추가해서 집계한다면 보수가 낮다고 보기도 어렵다. 게다가 호봉을 거듭할수록 기본급이 높아지고, 그에 따라 연동되는 수당도 함께 높아진다. 만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신분과 공무원연금은 높은 고용 안정성의 꽃과도 같다.


정규직이 아닌, 1년 이하 단기 계약직으로 일자리를 시작한 청년의 비중은 2006년 9%에서 2018년 22%로 크게 상승했다. 대졸 이상 청년 중 구직 단념자로 간주되는, 이른바 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Training)족은 2018년 48만 명에 달했다. 2008년보다 10만 명 정도 증가한 수치다. 추가 취업 희망자, 구직 단념자, 취업 준비자 등을 합친 청년층의 잠재 실업률은 23%에 달해 청년 4명 가운데 한 명이 실질적인 실업 상태에 놓여 있다.*1 여러 사회 현상과 수치를 제시할 필요도 없다. 여러분 대다수가 시험 합격 전까지 실업자 또는 취업 준비생이 아니었던가. 그 시절의 물질적․심리적 불안정은 여러분이 더 잘 알 것이다.


‘오륙도’, ‘사오정’이라는 말을 익히 들어 봤을 것이다. ‘56세까지 회사 다니면 도둑놈’, ‘45세 정년’이라는 뜻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한국의 노동자가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연령은 49세다.*2


이처럼 고용 안정성이 위태로운 이 시점에 공무원은 많은 이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업이다. 정시 퇴근, 사기업보다 낮다고 인식되는 업무 강도와 업무량, 공식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휴가제도와 휴직제도, 절대로 밀리지 않는 월급, 초과근무수당, 자기계발 지원제도, 법률로 보장된 정년, 그리고 노후를 대비할 수 있는 연금까지.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보람, 공익에 기여한다는 자부심 역시 이 직업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겠지만, 짐작하건대 직업 안정성은 여러분이 이 직업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입직 후 3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하는 이들의 숫자가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고 있다. 한국일보가 서울특별시 25개 자치구에 정보 공개를 청구해서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임용 3년 이내에 퇴직하는 공무원의 수는 2013년 32명, 2014년 54명, 2015년 81명, 2016년 138명, 2017년 127명이었다. 5년 사이에 4배가량 증가했다. 기사는 엄격한 상하관계, 경직되고 후진적인 조직문화, 의외로 센 업무 강도, 그로 인한 야근과 휴일 근무, 강경하고 집요하고 감정적인 민원, 낮은 기본급을 그 주된 원인으로 분석했다.*3 현직 공무원으로서 판단해 볼 때, 한국일보 기사의 분석은 매우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퇴직을 넘어, 안타깝게도 극단적인 선택에까지 이르는 공무원도 많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공무원 중 자살자 수가 2013년 73명, 2014년 87명, 2015년 92명으로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일반 시민의 자살자 수는 감소 추세를 보였다.*4


2017년 9월에는 서울특별시 7급 공채 공무원이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입직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은 시기였다. 그가 예산과 발령을 받은 뒤 그의 아버지는 아들로부터 ‘힘들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고 한다. 서울특별시 각 부서의 다음 해 예산을 편성하는 8월부터는 자정 무렵까지 야근을 하는 생활이 한 달 넘게 이어졌다. 새벽 2~3시에 퇴근하는 날에도 정시 출근을 했다고 한다. 마침내 유서도 남기지 않은 채 ‘출근한다’며 현관을 열고 나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5 안타깝다. 무엇이 28세 젊은 공직자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고 갔을까. 업무가 많다는 이유가 전부였을까.


공직 업무는 앞으로 당분간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다. 국민, 사회, 언론, 정치권 등 모든 환경이 정부기관의 투명함을 원하고 있고, 특히 현재 한국 사회의 경우, 무한 책임과 무한 친절의 서비스를 정부와 공무원에게 요구하고 있다. 각종 수당은 그 수와 금액이 차차 줄어들 것이고, 공무원연금은 다시금 개혁 대상이 될 것이다. 또한 세대 갈등이 심화되어 신참(新參)이 고참(古參)으로부터 실용적인 조언과 따뜻한 위로를 얻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9급 공채생들이 퇴직과 극단적인 선택을 고려하고, 심지어는 실행할 정도로 공무원 근무가 쉽지 않은 이 시점에, 우리 9급 공채생들은 어떤 마음 자세로 이 일을 시작해야 할까?




꽃길은 없다

사람의 심리는 묘하다. 일할 때 ‘거의 다 했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아직도 일이 한참 남았다면 괴롭다. ‘아직 한참 남았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일이 얼마 안 남았다면 기쁘다.


‘힘들게 공부해서 공무원이 됐으니, 이제 정시 퇴근하고 퇴근 후 여가를 즐기면서 꽃길만 걸어야지’ 생각하면, 이 일이 많이 많이 힘들 수 있다. 알고 있겠지만, 꽃길은 없다. 사방이 지뢰밭이다.



처음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해 마음 자세를 잡는 데 있어 의외로 굳은 각오가 필요하다. 군대 다녀온 남자라면 군대에 다시 입대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여자라면 시댁 생활을 미리 겪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실제로 정부 조직 내부에서 나쁜 고참, 때리는 시어미, 말리는 시누이를 다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이 이러한데, 꽃길을 생각하면 나만 힘들어진다. 좋은 사람들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지나치게 수직적이고 경직적인 조직문화여서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일이 수시로 일어나는 조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스스로의 정신 건강에 이익이 될 것이다.


게다가 여러분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일부 시민들은 막무가내로 거칠고 무례하며, 치밀하고 집요하다. 2013년 국정감사에서 보건복지부가 이언주 국회의원에게 제출한 ‘복지 담당 공무원 피해 상황’ 보고서에는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이 당한 폭언․폭행 피해 사례가 총 3,379건 수집되어 있다. 이 가운데, 민원인이 계획적으로 흉기나 가스통을 준비해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에게 위협을 준 사례가 202건이다. 2012년 5월부터 2013년 3월까지 11개월을 기준으로 할 때 피해 사례는 하루 평균 6건이었다.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폭언과 폭행을 당하지만, 고발 조치는 3,379건 가운데 191건(5.7%)에 불과하다.*6


2019년 7월에는 소방서 앞 소방차 전용구역에 자신의 승용차를 주차했다가 과태료가 부과되자 소방대원을 폭행한 50대 시민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사건도 있었다(적반하장도 유분수지).*7 지방정부 공무원보다 위험한 업무에 투입되는 경찰 공무원과 소방 공무원이 업무 중에 접하는 위험은 더 말할 것도 없다.


2012년 서울특별시 어느 구청에서 발행한 자료*8에는 악성 민원인의 구체적인 언행으로 107건의 사례가 수집되어 있다. 여기에 일부 소개한다. 뺨 때리기, 뜨거운 커피 얼굴에 뿌리기, 등․초본 명패로 때릴 듯 위협, 만취 상태로 방문하여 욕설․협박, 자신이 성폭력 범죄 출소자임을 강조하며 협박, 여직원에게 뽀뽀 요구, 핸드백으로 얼굴 가격, 생계비 더 안 주면 자살하겠다고 협박, 너 때문에 자살한다고 유서에 써 놓겠다고 협박, 서류를 무료로 발급해 달라며 욕설, 지문 확인을 요구하자 내가 나인데 이런 게 왜 필요하냐며 욕설, 비 오는 날 가끔 전화해서 3~4분 간 내용 없이 욕만 하다 전화 끊기, 서류 발급에 있어 위임장이 필요하다고 하자 구청장과 잘 아는 사이라며 무조건 발급 요구, “이사하게 남자 두 명만 보내라”, “담뱃불로 지져 버리겠다”, “조폭 아들한테 말해서 칼로 쑤셔 버리겠다”, “접수할 때 전화 받았던 그 계집년을 바꿔”.




책임져야 할 일은 너무 많다

게다가 공직은 기본적으로 매우 높은 책임성을 요구한다. 책임성을 크게 계급제적 책임성, 법적 책임성, 전문가적 책임성, 정치적 책임성 등 네 가지로 나눈 분류가 있다.*9


이에 따르면, 첫째, 계급제적 책임성. 공무원에게는 상사의 지시에 복종해야 할 책임이 있다. 둘째, 법적 책임성. 법과 규정을 위반하지 않고, 법과 규정에 근거해서 일해야 할 책임이 있다. 셋째, 전문가적 책임성. 전문가적 경험과 지식에 따라 소신을 갖고 일해야 할 책임이 있다. 넷째, 정치적 책임성. 헌법의 가치를 수호하고, 국민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국민 모두에게 봉사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 모든 의무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 결과에 하자가 있다면 제재를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위에서 제시한 책임성이 서로 충돌할 경우에는 일정한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에도 역시나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거짓으로 타인의 서명을 위조하고 싶지 않은데, 상사가 서명 위조를 지시한다면? 직무 경험상, 조례를 새롭게 만드는 일이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하는데, 상사가 조례 입법 절차를 밟을 것을 지시한다면? 영세 상인들의 법 위반 광고물은 모두 남김없이 철거해야 하는가, 아니면 먹고살기 어려운 영세 상인들의 마음을 헤아려 느슨하게 단속해야 하는가?


이따금 ‘내가 다 책임질 테니, 내 말대로 하라’고 말하는 상사가 있다. 여러분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기 위해 휴머니즘으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전적으로 믿지는 않기를 권한다. 좀 더 냉정하게 조언한다면, 그냥 그 말은 믿지 마라. 여러분이 충분히 고민하고 검토해서 내린 결정이 상사의 지시와 일치한다면, 그때는 상사 말대로 해도 되겠지만, ‘내 상식에는 맞지 않는데, 팀장님이 하라고 하니까 괜찮겠지’ 하는 생각으로 일을 쉽게 하는 것은 위험하다.


내가 맡은 업무에 잘못이 있을 때 나 대신 그 문제를 책임져 줄 사람은 없다. 인터넷도 없었고, 전자문서도 없었고, 공권력이 위력을 발휘했던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고참이나 상사가 비공식적으로 실무자를 도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있고, 전자문서가 있고, 공권력이 땅에 떨어진 현 시점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적절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거나, 심리적으로 위로를 주거나, 비공식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을 주는 일은 가능하겠지만, 여러분의 잘못을 공식적으로 치유해 줄 수 있는 고참이나 상사는 없다. 문제 해결을 위해 고참과 상사, 동료와 가족의 지혜를 듣는다 해도 최종 결정은 나 자신이 고독하게 내려야 하고, 그 결과는 나 자신이 온전히 짊어져야 한다. 모든 일에 있어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내려야 한다.




죽을 만큼 힘들다면

혹시 요즘 일이 너무 힘들어서 이 책을 집어 든 신입 9급 공채생이 있다면,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너무나 힘들다면, 그리고 부모님께 죄가 될 만한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고 있다면, 다음과 같은 솔루션을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첫째, ‘이 일을 그만둘 수도 있다’고 마음 깊은 곳에 잠정적으로 결정해 두면, 우선 마음이 안정될 것이다. 이 세상에 직업이 공무원만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저성장과 고용 불안정의 시대에 공무원이 좋은 직업임에는 틀림없지만, 내가 싫다면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다. 젊은 시절에 투입한 몇 년의 세월은 상당 부분 매몰비용이 되겠지만, 그 높은 경쟁률을 뚫고 이 직장에 들어왔다면 체력과 성실함은 어느 정도 검증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저성장 시대에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 체력과 성실함이라면 다른 분야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공직 업무와 조직문화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가끔 이런 얘기를 하기도 한다. “그 편한 공무원 일이 힘들면 다른 일은 어떻게 하냐?” 공무원 일을 시작하기 전에 4년 동안 민간기업에서 일했다.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작은 회사에서 일했기 때문에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공직의 업무량이 더 많고, 업무 강도도 더 강한 것 같다. 민간기업에서 일할 때에는 보수가 높지 않고 그마저 제때 지급되지 않는 것에 대한 고충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공직 업무를 하면서 느끼는 책임감, 시민들의 요구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공직은 사람 만나는 일을 의외로 많이 하고, 사람을 만날 때에도 조심해야 할 것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하고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대한민국에 스펙을 따지지 않고, 외모를 따지지 않고, 경력을 따지지 않으면서, 무엇보다 절대로 월급을 밀리지 않는 조직이 정부 조직밖에 없다는 결론을, 20대 후반의 나이에 내렸기 때문이다(놀랍고 안타까운 것은 이 결론이 10년 이상 지난 현 시점에도 그대로인 것 같다는 것이다).


'부(富)의 추월차선(The Millionaire Fastlane)'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소프트웨어는 쉽게 복제가 가능하고, 일단 코드를 짜서 생산하면 제품을 한 개든 1만 개든 쉽게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부를 거머쥘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다. 물론 그 소프트웨어가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많이 팔려야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개발자는 소비자가 기꺼이 지갑을 열 수 있을 정도로 소비자에게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개발자가 기울인 노력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도 소프트웨어로 부자가 될 수 있다. 페이스북이나 아이폰 어플리케이션 개발자들은 빠르게 돈을 번다. 아이폰 개발자 니콜라스는 아이폰 게임 하나로 한 달에 60만 달러를 긁어모았다. 대단한 일이다. 한때 안정적인 직장에서 퇴직연금계좌에 몇백 달러씩 부으며 서행차선의 인생을 살아가던 그가 갑자기 추월차선 한가운데를 내달리고 있다니. 물론 니콜라스가 추월차선을 쉽게 탄 것은 아니다. 선마이크로시스템의 엔지니어로 있던 니콜라스는 하루 8시간 근무를 마치고 나서, 한 손에는 한 살배기 아들을 안고 한 손으로 코드를 짜며 어플리케이션을 완성했다. 아이폰 어플리케이션 코드를 짜는 방법은 어떻게 배웠을까? 그는 책을 살 여유가 없어서 인터넷을 뒤져 가며 배웠다고 한다.*10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니콜라스가 참 열심히 살았구나, 생각하는가. 나는 9급 공채생이 하는 노력이 니콜라스가 했던 노력보다 더 적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민원 업무를 보고, 상사가 원하는 계획서와 보고서를 만들고, 상급기관이 요구하는 자료를 작성하고, 일부 강경한 민원인, 상사, 고참의 비위를 맞춰 주고, 아침에는 새마을 청소, 저녁에는 광고물 단속과 캠페인에 동원되고, 눈치 보면서 늦게 퇴근하고, 회식 자리에 참석하고…….


우리가 하는 일은 시장에서 생산되거나 제공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가 정부 조직에서 하고 있는 노력, 업무량, 마음 자세를 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에 투입한다면, 높은 소득을 올릴 수도 있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 반대의 상황도 가능하다. 소비자가 원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지 못하면, 9급 1호봉 기본급보다 더 낮은 소득을 올릴 수도 있고, 빚더미에 앉을 수도 있다. 현실이 녹록하지 않다는 건 여러분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편한 공무원 일이 힘들면 다른 일은 어떻게 하냐?”는 말에 흔들리지 않고, 현 시점에서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상황을 돌아보는 것이다. 나의 성향과 나의 경쟁력, 조직의 성향, 주위 사람들의 성향, 현재 맡고 있는 일의 성향, 정부 조직 바깥 세상의 상황 같은 것 말이다. 다음 두 번째 제안과 연결된다.


둘째, 지금 하고 있는 공무원 일이 왜 이토록 힘든지 깊이 생각해 보고, 백지를 꺼내어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종이에 검은 펜으로 차분하게 써 볼 것을 권한다. 상사와 고참이 날 힘들게 하는가? 동료와 사회복무요원이 날 힘들게 하는가? 민원인이 날 힘들게 하는가? 사람들이 나 보고 싸가지가 없다고 하는가? 일을 못한다고 질책하는가? 모두 다 나를 욕하는 것 같은가? 도움을 청할 사람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가? 조직문화가 답답한가? 업무량이 너무 많은가? 업무 강도가 너무 하드한가? 일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는가? 아니면 이 모두에 다 해당하는가?



공직 생활 가운데 힘들었던 일을 나도 이 기회에 정리해 봤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역시 사람이 힘들었던 시기였다. 천오백 명이 일하고 있는 구청 조직에서 손꼽히는, 악명 높은 분을 팀장으로 모시고 구청 부서에서 일할 때였다. 입직 3년 차였다. “업무만 잘하면 난 다른 건 따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팀장이었지만, 일도 잘해야 하고, 의전도 잘해야 하고, 모든 일을 하나 하나 잘 챙겨 줘야 하는 타입이었다. 심기가 쉽게 불편해지는 타입이어서 심기 경호도 잘 해야 했다. 일하는 과정에서 앞에 한 말과 뒤에 하는 말이 자주 달랐다(“전에 하신 말씀과 다른데요.” 아, 그 시절엔 왜 이 말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을까). 팀장과 담당자가 함께 논의해서 결론을 내려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안 좋으면 담당자를 질책했다. 왜 일을 이렇게 했느냐고(나 원 참). 무엇보다 갑자기 화를 잘 내서 팀원들이 모두 노심초사하며 지냈다. 손으로 팀원들의 목을 치는 일도 가끔 있었다.


이 시기는 개인적으로 신혼 시절이었는데, 다른 일을 알아보면 안 되겠느냐고 아내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아내의 대답은 당연히 “No.”였다(대한민국에 벤처 문화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아내들 때문이라던데). 창업을 생각해 봤지만, 그럴듯한 아이템도, 모아 둔 자본금도 없었다. 예전부터 그림에 관심이 있었기에 일러스트 학원에 가서 일러스트 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원장에게 상담을 받아 보기도 했다. 상담을 받은 이후 다음과 같은 결론에 다다랐다. 최고 수준의 일러스트레이터가 될 자신도 없었고, 관계 업체로부터 일을 많이 받아 올 자신도 없었다. 결국 상담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 힘들었던 시기는 구청 기획예산과에 있을 때였다. 일이 너무 많으면서도 일에서 의미를 찾기 힘들었던 시기였다. 오로지 구청장이 원하는 텍스트를 생산해 내는 것이 내가 있던 팀의 지상과제였다. 팀원들은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불꽃 야근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이었다. 일찍 퇴근하는 것을 선호하는 나와는 달리, 야행성 팀원들이 다수였기에 보조 맞춰 일하기가 많이 힘들었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니, 개인적으로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의 공식 업무 시간에 집중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구청 청사가 감옥처럼 느껴졌다.


그 외에는 전반적으로 조직문화가 답답해서 힘들었던 것 같다. 해당 부서의 직원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고유 업무이건만, 평가를 받기 위해 문서를 따로 만들어 평가 부서에 보내는 일은 참 고역이었다. 구청장에게 사랑받고 예쁨 받기 위해 노력하는 소수가 구청 직원 다수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국민을 위해 일해야 시간을 빼앗는 일 역시 참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사람, 업무, 조직문화가 마음에 맞지 않을 때가 종종 있기는 했지만, 공직 업무가 적성에 안 맞은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민원인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지는 않았겠지만, 다행히도 민원인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극심한 지경에까지 이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퇴직이나 창업 같은 큰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하고, 팀장, 부서장 상담과 인사고충 제출이라는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 다른 부서로 이동하게 되었다. 공식적인 절차를 이어서 소개하도록 하겠다.


9급, 생각보다 힘들잖아! Ⅱ에 계속.




*1 국민일보. 2019. [경제시평-장민] 7포 세대에 희망 주려면.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 2019. 4. 9.

*2 2017년 한국의 55~79세 고령 인구가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연령은 49.1세(남자 51.4세, 여자 47.2세). 통계청. 2017. 2017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 통계청 보도자료. 2017. 7. 24.

*3 한국일보. 2019. 철밥통 깨고 나오는 청춘, 그들은 왜…. 박지연 기자, 김가현 인턴기자. 2019. 2. 23.

*4 서울신문. 2017. 자살률 급증… ‘젊은 도시’ 세종시의 그늘. 박찬구 선임기자. 2017. 3. 29.

*5 서울신문. 2017. 꿈꾸던 공무원 됐는데…왜 삶을 포기했을까. 유대근․김헌주․이범수․홍인기․오세진 기자. 2017. 10. 17.

*6 서울신문. 2013. 폭언·폭행 급증… 떨고 있는 복지공무원. 강국진 기자. 2013. 10. 22.

*7 경기일보. 2019. 소방서 앞에 주차했다 과태료 부과되자 소방대원 폭행한 50대, 집행유예. 김경희 기자. 2019. 7. 14.

*8 서대문구 정책기획담당관. 2012. ‘서대문구 공무원 인권 침해 사례 및 공무원 인권 보호에 대한 내부 인식 조사서’.

*9 Romzek & Dubnick. 1987. Accountability in the Public Sector: Lessons from the Challenger Tragedy. Public Administration Review. 47(3): 227-238.

*10 엠제이 드마코. 2013. ‘부의 추월차선’. 신소영 譯. 토트.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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